누가누가 나쁜 사람일까.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종로에서 뺨 맞고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노말시티, 17년 10월, 조회 30

개인적으로 선과 악의 경계가 흐릿한 걸 선호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개별적인 행동의 선악 혹은 정의로움과 그렇지 못함은 명백해야 하지만 그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선악이 흐릿하다고 생각해요. 애초에 우리는 결과만 놓고 법의 철퇴를 내리치는 것보다, 전후 사정을 따져 정상을 참작하는 걸 더 인간적이라고 여기지 않나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면 안 되죠. 하지만 작가님이 소개에 적은대로 여기에는 분명한 매커니즘이 있는데요. 뺨을 맞고 그 자리에서 되돌려 주지 못한 사람은, 그걸 자신의 소심함이나 무능함으로 돌리지 않고 사회를 탓하기 마련입니다. 그냥 탓하기만 하면 모르겠는데 그러다 지치면 그런 부조리한 현실을 자신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현실은 현실이고, 그건 사회의 잘못이니 내가 손해 본 만큼은 어딘가에서 메꿔야 공정하다는 거죠. 그래서 괜히 한강에서 눈을 흘기면서도 그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잘못이라고 돌리게 됩니다.

옛날 분들은 그래도 점잖았나 봅니다. 뺨을 맞았는데 눈만 흘기니까요. 그정도면 그래도 그 분노의 악순환은 점점 소멸되어 갑니다. 뺨을 맞은 걸 꼭 뺨을 때리는 걸로 돌려줘야 속이 시원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 대 맞으면 두 대 때려야 하는 사람도 있죠. 괜히 한강에서 아무나 붙잡고요. 그럼 결국 이 세상은 이유없는 분노로 폭발하게 되죠.

 

이 이야기에는 순차적으로 다른 곳에 화풀이를 하는 다섯 명이 나옵니다. 모두 나름의 이유를 열심히 대고 있어요. 이게 과연 리뷰나 감상에 어울리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을 과연 어느 정도로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호진 : 그나마 이해가 됩니다. 무엇보다 아이니까요. 게다가 자신에게 괴로움을 준 사람에게 바로 되갚을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 안 되지만, 그런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잘 가르쳐 주면 되겠죠.

진영 : 아이이기도 하지만, 그걸 떠나서 솔직히 이 아이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자신이 받은 괴롭힘을 바람직한 방법으로 하소연했는데, 그게 어이없는 이유로 막힙니다. 그 뒤 진영이 한 행동은 종로에서 뺨 맞고 종로에서 뺨 때린 거에요. 전 솔직히 이 아이의 행동은 사이다였습니다.

영채 : 제 기준에서 이 사람은 억울한 일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자기 잘못에 자기가 당한 거죠. 비유하자면 종로에서 혼자 넘어지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경우겠네요.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면서,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매커니즘을 주입하려고 해요. 화가 날 정도입니다. 물론 사회를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 포용력은 필요합니다. 종로에서 뺨 맞고 그냥 참아야 할 경우가 있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강에서 눈을 흘기면 안 되죠. 게다가 가르치는 방법도 한참 잘못 되었어요. ‘좋아해서 그러는 거’라니요.

채원 : 채원의 행동은 분명 잘못되었죠. 하지만 어느 정도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한강에서 눈을 흘긴 게 의도적인 악행이 아니라 충동적인 실수라고 볼 수 있는 측면도 정상 참작이 가능하겠네요. 게다가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어요. 영채가 주제넘게 끼어들지만 않았다면요. 물론 그 뒤에 다시 눈을 흘기긴 합니다. 하지만 그건 따지고 보면 종로에서 제대로 눈을 흘긴 거죠.

원호 : 원호의 뺨을 때린 게 채원인지 그의 아내인지는 모르겠네요. 일단은 뭔가 억울해 보이기는 하는데 뺨을 때린 게 누군지는 불분명합니다. 그냥 부조리한 사회일지도요. 그걸 누군가에게 복수하는데요. 그 대상이 대상인지라 잘못이 좀 덜어져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사상은 어쩌면 가장 위험하네요.

별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나한텐 죄가 없어. 나는 그저 녀석과 나 사이에 있는 팔자의 균형을 맞춘 것일 뿐. 죄가 있다면 그건 세상을 이렇게 불공평하게 만든 신한테나 있는 거겠지.

아닙니다. 죄는 잘못한 사람에게 있는 거예요. 뺨을 때린 사람이 잘못이고, 눈을 흘긴 사람이 잘못입니다. 정상 참작을 해 주더라도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에요. 그 단순한 걸 왜곡하기 시작하니까 세상이 부조리해지는 겁니다.

 

이처럼 이 이야기에는 다양한 군상들이 나옵니다. 어찌 보면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분노를 주고 받고 있는 지가 흥미롭게 그려져 있습니다. 읽다보니 저도 모르게 정의감에 불타올라, 감상을 빙자하여 등장인물들의 잘잘못을 평가해 버렸는데요. 여러분도 한 번 읽어보시고 나름의 심판을 내려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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