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불친절한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그림자의 방주 (작가: 이태윤, 작품정보)
리뷰어: 리체르카, 17년 10월, 조회 225

많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글을 읽은 뒤에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아진 시대에서 한 사람이 자살합니다. 처음에는 소개를 보고 N사 웹툰과 같은 저승 이야기인가 했었는데 아니었어요.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합니다. SF라는 장르에 아주 잘 맞는 글이고, 소재입니다.

그런데 단서 없이 일방적으로 쫓기면서 10여회를 넘게 끌어요. 이 글을 읽으며 느낀 건 너무 불친절한 글이라는 점이었죠. 작가가 모든 걸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인물 중 하나를 붙잡고 설명해주셔야 독자가 따라가기 버겁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기한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이상한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남 말 하고 있네.”

“칭찬이지? 어쨌든 저렇게 속을 읽기 어려운 분은 처음이라니까. 뭐, 굳이 알고 싶진 않지만.”

 

인물들 입을 통해 ‘데이’에게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주려고 작중 미래와 샤오진이 나누는 14화 중의 대화입니다. 여기까지 읽고 제가 느낀 감상이요? ‘도대체 알 수 있을 만큼 나온 사람이 누구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자살했는데 시올 시스템과 현실 모두에 존재하는 하루요? 뜬금없이 불려 와서 쫓기게 되고 살해 죄의 다른 이름인 신체 강탈 죄로 쫓기게 되어버린 미래요? 정체도 신원도 이름도 안 나온 무수한 인물들이요? 수상쩍지만 구정물에도 직접 들어가는 등 시간 많아 보이는 젊은 회장님? 폭탄 다루는 게 일이라고 했다가 돌연 킬러처럼 돌변해 사람 한 둘쯤 태연히 죽이는 메리? 회장 측 사람인줄 알았더니 이용당하는 패 같은데 이상하게 버려지지는 않는 송리? 이 글에서 제일 믿음 안 가고 가볍고 수상쩍어 보이는, 제가 미래라면 얼굴 갈기고 절연했을 법한 샤오진..?

이름이 등장하지 않은 요원들이나 거미나 배남 역시도 수상쩍기는 마찬가지이며, 이름이 등장하면 일단 수상하구나 무슨 사정이 있을까 궁금하지만 설명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냥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고요. 인물 기반을 납득할 배경 스토리 없이 일단 다같이 뭔가의 흐름에 휩쓸려 가요.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지칩니다. 정체가 불분명한 채 이야기가 너무 오랫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설마 연재 회차 마지막까지 두루뭉술한 느낌이 그대로 갈 줄은 몰랐습니다.

추측컨대, 작중에는 몇 개의 집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크 컴퍼니 측과 심연이라고 불리는 자들. 그리고 데이를 위시한 정체불명의 무리요. 사실은 셋 다 정체불명이라고 봐야 하지만 그래도 개중 둘은 이름은 있습니다. 이름은요.. 하지만 이름 외에 알려진 건 없습니다. 미래를 노리고 있다는 점 정도? 그를 없던 사람처럼 슥삭 신체 강탈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점 정도?

 

너무 단점만 짚어내려 죄송합니다. 이 글에 단점만 수두룩한 건 아닙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끝까지 읽고 리뷰까지 드릴 리야 있겠어요. 우선은 소재의 매력에 끌렸습니다. 첫 화에 자살한 사람이 멀쩡히 살아 있고, 그는 가상 저승이라는 시스템의 근본적인 기술을 개발했다고 할 수 있는 중요인물이어요. 그는 목 뒤에서 뽑아낸 칩으로 만든 가상 시스템 속 인격으로도 존재하며, 실질적으로도 존재합니다. 죽은 것이 아니었으나 ‘저승’에 존재하니 모순이 되는 셈이고, 이전에도 그런 자가 있어 하루가 그의 손으로 직접 구해냈죠. 그는 자기 손으로 만들어낸 거대한 시스템과 싸우게 되어 버린 셈입니다. 그 문제점을 알게 된 회사요? 이제는 시신이 다시 살아나는 일 없도록 미량의 독약을 주입합니다. 그리하여 시스템은 완전해지는 거죠!

당연히 유토피아는 아닙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죽음을 생각나게 하는 유령들. 그러니까 이 시대에서 목 뒤에 칩 심는 것을 거부하고 그들의 가상 저승에 오지 않기로 한 사람들을 배척합니다. 그들을 보면 죽음이 생각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모순적인 모양새죠. 결국, 궁극적인 죽음과 데이터로 살아가는 삶이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심지어 모두가 알지 못하는 치명적인 결함까지 존재하는 저승은 완전한 저승일 수 있을까요? 결과적으로 그런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 인공 저승에 가려고 할까요? 그런 자들을 통하여 결국 시올이 무너지게 되지는 않을까요.

비약이 과했습니다. 이런 수순도 생각해볼 수 있겠죠. 그러나 극중 흐름상으로는 ‘데이’와 그를 따르는 무리가 아크 컴퍼니의 비밀을 파헤치고 회장과 정면으로 승부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거기에 얼기설기 끼워져 있는 사람들이 무슨 역할을 할지 도통 모르겠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작가님이 흐름을 끊지 않고 이십여 편을 쭉 이어오신 만큼 그 이상의 뭔가를 보여주시면서 뿌려놓은 힌트들을 엮으실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모든 인물과 상황이 설명된 후에야 퍼즐처럼 맞추어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요. 미래가 드디어 자기가 어떤 상황에 ‘정확하게’얽혔는지를 알게 된다거나,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고 자기 선택으로 가상 저승 속 하루나 현실의 ‘데이’를 선택하는 결정을 하게 된다거나. 선택지가 뻗어 나갈 방향이 무궁하므로 추측하는 것이 무용하겠습니다.

보여주시는 것만을 취사선택한다면 시올 시스템은 분명 올바른 선택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굳건히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실은 여러분이 믿어온 것이 모두 거짓이었다고 말하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할 거예요. 미래가 기자인 것은 그런 사실들을 전달할 창구로써 선택된 결과가 아닐는지 생각합니다.

 

제목이 그림자의 방주에요. 어떤 방식으로 제목에 의미를 담아주실지 기대가 됩니다. 방주라 함은 결국 시올 시스템을 도피처 삼아 그것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의미일까요? 이미 죽어 데이터가 된 사람들이야 선택권이 없겠습니다마는, 진짜 죽음을 향해 단체자살하는 무시무시한 의미만 아니라면야 아무렴 어떻습니까! 독자는 그저 작가님이 풀어나갈 이야기를 따라갈 뿐이지요. 다만 조금만 더 명확하고 친절한 설명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상을 누르고 싶은데 공모가 걸려 있네요. 그래도 감상 위주의 리뷰였다는 점을 읽어주신 분들은 아시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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