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낫한 스님의 말이었던 것 같은데요. 찾아온 손님들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하면, 진지하게 묻는다고 하죠. 진짜 설거지를 할 줄 아느냐고. 대답들은 한결 같습니다.
“당연하죠.”
하지만 스님은 고개를 젓지요.
“내 집에서는 설거지를 할 때, 설거지만 해야 합니다.”
스님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거지를 할 줄 모릅니다. 현대인들 중에 진짜 설거지를 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거지요. 손으로는 설거지를 하지만, 머리로는 다른 일을 합니다. 하지만 그건 진짜 설거지가 아닙니다. 설거지를 할 때는, 진짜 설거지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스님의 집에서 설거지를 하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고통을 잊기 위해, 피곤한 일상에 몸을 파묻는 사람에 관한 짧은 이야기입니다. 그저 하루의 이야기입니다. 그게 다입니다.
개인적으로, 디테일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식자재 업자가 내려준 박스가 몇 개인지,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합니다. 펍에서 가장 빨리 떨어지는 술은 무엇인지, 안주 없이 마시는 단골들이 즐비한 술집에서 그나마 팔리는 요리가 뭔지 궁금합니다. 주인공의 속옷에 관해서도 의문이 남습니다. 무슨 요일에 빨래를 하는 걸까요?
디테일이 더 필요하다고 느낀 이유는, 설거지를 할 때 진짜 설거지를 했는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하루의 모든 시간 속 작은 부분까지 정말로 일에 집중했는지, 그래서 결국 아픈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하루를 성공적으로 버텼는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여동생의 죽음이든 뭐든, 숨겨진 사연은 궁금하지 않습니다. 구질구질한 사연 따위 들어봤자 가슴만 아프겠죠.
느낌상, 시공간적 배경이나 인물들은 정교한 현실에 기반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분량이 짧을수록 현실에 기대는 편이 독자들을 속여서 허구로 끌어들이는데 유리하겠지만, 그러지 않는군요. 대부분의 독자들은 현실이라는 판타지의 세계관에 익숙합니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현실이라는 세계관 안에서 팬픽을 쓰지요. 박경리는 통영을, 디킨즈는 런던을, 코맥 맥카시를 미서부를 그렸지요.
개인적으로, 엽편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엽편을 읽어본 적도 드물고, 써본 적은 아예 없습니다. 짧은 분량 속에 뭔가를 녹여내는 것이 저로서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헤밍웨이의 그 유명한 A급 중고 아기 신발 6단어 소설은 저도 압니다. 하지만 그건 헤밍웨이니까요.
He works to forget his painful life.
이 소설의 앞머리에 등장하는 7단어입니다. 누군가는 이 7개의 단어를 쭉쭉 늘려서 장편소설을 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잔잔한 엽편이 하나 있습니다. 적당히 썼을 수도 있고, 덜 썼을 수도 있고, 너무 썼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도통 감이 없어서요.
다만,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이 결국 실패하기 바랐던 점은 고백합니다. 두 번째 읽다보니, 녀석이 진짜 설거지를 하는 꼴이 샘나더군요. 결국 오늘도 사실은 어느 지점에서 실패하고 말았다는 주인공의 자백을, 그런 깨 냄새가 고소한 소식을 듣는다면 정말로 신이 날텐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