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목이 아무것도 아닌 소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 의미였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답니다. 무녀, 하면 보통은 종교적이고 신앙적인 무엇이라고 여기는 것이 통념적인 관점이기 때문이지요. 소녀는 어느 날 사람들에게서 사라지고 만답니다. 그렇다고 그녀의 존재가 아주 부정되어버리느냐, 하면 그건 아니어요. 가족도 있고, 그녀만이 인식할 수 있는 어떤 존재도 있고. 처음에는 신인 것처럼 나오다가 나중에는 소년으로 통칭되는 그것은 작중 가장 수상쩍은 모종의 존재입니다.
글을 읽으며 느낀 것은 작가님이 뭘 보여주고 싶은 지를 본인도 잘 모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서 존재감을 잃고 만 소녀에 관해 쓰시는 건지, 아니면 조금 이상한 탓에 가족들에게서 외면 받는 그 애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으신 건지, 모두에게 잊혔으나 소녀에게만은 발견되어 기뻐하고 집착하는 소년을 쓰고 싶으신 건지요. 셋 모두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작품 소개에도 그들 이야기가 모두 적혀 있기도 하고요. 다만 정체된 분위기가 너무 오래 간다고 할지, 속도가 더디다고 해야 할지요.
편수는 19편이나 쌓여 있지만 내용은 그다지 쌓인 것이 없습니다. 소녀가 아무것도 아닌 소녀가 되어버린 원인도 알 수 없고, 그 애가 특별해지고 싶은 이유도 알 수 없고, 타인에게는 인식되지도 않는 존재와 친해지는 것이 어떻게 그녀를 특별하게 만든다는 것인지도 이해하기 어렵고, 소년이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어요. (개인적으로는 소년이 소녀와 같은 무존재로 서서히 변하다가 정말로 존재가 잊혀지고 만 무엇일까 추측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말로 근거도 논리도 없는 추측이라서..) 이 때문에 이런 잔잔함을 꺼리는 분들은 손이 가지 않는 글일 수 있습니다. 사건이 없다는 건 정말 치명적이에요. 사건이 나오지만 그건 사건이라기보다 일상에 가까운 무엇이고요. 이 분위기를 이대로 끌고 가시지는 않겠지만, 인물들의 행동이 이러한 이유와 근거를 독자에게 납득시키지 않는다면 뒤가 궁금할 독자가 많지는 않을 것 같아요.
소설 제목이 무녀라고 해서 정말로 소녀와 소설 속에 아무것도 없어서는 안 됩니다. 속도를 붙이실 필요가 있겠어요. 그러지 않고는 독자가 지치고 맙니다. 쓰실 때도 버거울 거여요. 부표처럼 떠가는 글을 밀고 나가는 것은 정말이지 힘겨운 일이니까요.
오지랖이 과했습니다. 글이 진행됨에 따라 어떤 방식의 이야기가 전개될지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아는 건 작가님 혼자뿐이어요. 나만 아는 이야기를 적는 것은 일기장입니다. 주요 화자들이 세상과 유리되어 있는데 독자마저 따돌려서는 안 될 일이에요. 소녀는 왜 존재감을 잃었을까. 그래서 어떻게 될까?가 기본적으로 이 글 독자가 궁금해하는 첫 번째 요소일 것이며, 그 애는 왜 가족에게까지 백안시 당할까. 왜 다른 것들을 조소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나. 왜 그런 사람이 소녀에게 관심을 가질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게 단순히 중2병 스러운 사춘기 증상에 불과할까? 의문은 많은데 답은 없지요. 글이 좀 더 속도감 있게 해답을 내어놓았으면 좋겠습니다. 소년과 소녀의 둘만 아는 대담은 이제 그만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글이 나가려는 방향에 힘을 실어주기를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