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무들이 빼곡한 숲과 바위, 질척한 안개를 지나야만 도착하는 마을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매일 밤 공포에 떤다. 벌써 여덟 명 째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소녀인 아밀과 또래인 친구들도 벌써 여러 명 사라졌다. 금발 머리를 붉은 색 망토로 감싸고 빵을 구워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아밀을 사람들은 ‘보송보송한 뺨의 나이팅게일’이라 부르며 고마워했다. 보름달이 뜨는 밤마다 나타타 아이들을 데려가는 푸른 괴물은 늑대인간의 변종이라고 한다. 괴물을 잡으려면 또 다른 괴물이 필요했지만, 먼 도시의 흡혈귀들조차 마을에 도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운의 그림자로 가측 찬 마을에서 사람들에게 빵을 나눠주고 홀로 돌아가는 길에, 아밀은 숲 속을 헤맨다.
<빨간 망토>, <미녀와 야수>, <푸른 수염> 등 여러 동화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빵 굽는 소녀, 아밀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섬세한 묘사와 디테일로 아주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읽는 이를 매혹시킨다. 숲속을 헤매던 소녀는 낡은 이끼가 가득한 고성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수척한 얼굴과 눈부신 은발을 한 창백하고 황홀한 백작을 만나게 된다. 소녀는 그가 쓸쓸한 존재라는 걸 알아채고, 그의 눈에 서린 욕망을 알아챈다. 다정으로 위장하는 간사한 그가 품은 열망은 소녀의 마음을 건드린다. 아밀은 매일 아름답게 치장하고서 그의 성을 찾기 시작하고, 직접 구운 둥근 빵을 건넨다. 그가 절대로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사한 낯빛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서로에게 빛과 그림자처럼 끌리는 소녀와 백작. 눈부시게 아름답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와 비천하고, 끔찍하고, 외로운 존재는 사실 보이는 것과 달랐다. 자신이 추하다고 말하는 이는 스스로를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이는 사실 스스로를 끔찍하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서로에게 전염병 같았던 그들은 결국 어떻게 될까. 아밀은 그가 숨긴 그림을 목격하고 그의 정체를 파악하게 되지만, 사실 아밀에게도 치명적인 비밀이 있었다. 소녀의 고백을 기점으로 이야기는 점점 핏빛으로 물들게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잔혹해질 수록 더 눈부시게 아름다워지는 것은 이 작품이 가진 특별한 점이다.
대체 이렇게 짧은 분량의 이야기로 이렇게 강렬한 임팩트를 줄 수 있다니 감탄하며 작가 이력을 살펴 보았더니.. <괴물장미>, <불온한 파랑>의 정이담 작가였다.. 이런 작품을 쓰시는 작가님이셨구나… 싶어 출간된 종이책들을 찾아서 읽기 시작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