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사이코 패스라면 모두가 다 연쇄 살인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무슨 무식한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서 사이코 패스에 대한 이야기를 주워듣게 되면서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뿐, 실제로 주위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이코 패스가 존재한다고 한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모든 사이코 패스가 연쇄 살인마는 아니다. 연쇄 살인마의 대부분이 사이코 패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사이코 패스가 연쇄 살인마는 아닌 것이다. (놀랍게도 많은 이들이 존경하는 CEO의 대부분이 사이코 패스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사이코 패스도 결국에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다만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공감 능력이 결여된 상태에 있다는 것이 그들의 특징인 것이다.
<나를 바다로 데려가 줘.>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지만 공감 능력이 결여된 ‘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공감 능력이 결여되었기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들, 그 시작과 끝, 그리고 현재를 그려낸다.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해버리니까 참 별 것 없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겠다. 단언컨대 <나를 바다로 데려가 줘.>는 지금 내가 쓰는 이런 허접한 리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멋지고 놀라운 글이다.
평소라면 결코 생각해보지 않았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새롭고도 참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이 공감 능력이 없는, 소위 말하는 사이코패스가 가지고 있는 -하지만 결코 상상해본 적이 없는- 고통과 좌절에 관한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 새로운 경험이 어느 샌가 공감으로 서서히 바뀌게 되었다는 사실은 지금도 놀랍게만 느껴진다. 공감을 하지 못하는 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공감을 하게 되는 조금은 아이러니한 상황이랄까?! 색다르면서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결코 생각도 경험도 해보지 못할 고통들을 너무나도 담담하게 풀어내는 모습이 놀랍게만 느껴졌다. 때로는 긴 호흡으로 때로는 짧은 호흡으로 페이스를 조절해가는 모습 또한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단 몇 줄의 글로 삶을 정리하는 대목에서는 뭔가 폭발하는 듯한 힘까지 느껴져 정말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토록 멋진 글을 이끌어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나를 바다로 데려가 줘.>를 읽고 난 후 어설프게나마 그 느낌을 간단히 표현하자면 노트에 연필로 글자를 꾹꾹 눌러쓴 글, 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것들을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 담아낸 느낌이다. 밀도가 높다는 표현이라면 좀 더 쉽게 받아들여질까?! 한 문장 한 문장 그 속에 글자 하나하나에 많은 생각들과 다양한 감정들을 눌러 담은 느낌이다. 허투루 쓰인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지게만 느껴졌다. 이렇게 작가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마는 것인가… 흠!
지금까지 제 3자의 입장에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이코 패스를 바라만 봤지, 그들이 겪을 어떤 고통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떻게 보면 그들을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생각했기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리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정도 공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 공감하거나 이해한다기보다는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표현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할 수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평소 자주 해왔다. 단순히 사이코패스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으로 그 범위를 확장시켜서 이런 인정을 할 수 있다면, 간절히 바다에 가기를 원했고 그래서 갔지만 결국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우리네 삶에 자리하고 있는 무기력함과 맞서 싸울 커다란 무기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를 바다로 데려가 줘.>는 많지 않은 분량임에도 그 안에 담겨있는 것은 왠지 모르게 풍부하게만 느껴진다. 그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 더 있었는데 쉽사리 이 글로 풀어내지 못하는 나의 부족한 글 솜씨를 탓하며, 부디 많은 독자들이 직접 이 글을 읽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만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