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라는 소재를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 감상

대상작품: 아내의 좀비 (작가: 천변풍경, 작품정보)
리뷰어: 아나르코, 17년 9월, 조회 51

어떤 글을 읽다가 뜬금없이 ‘좀비’가 떠올랐다. 그 글 속에서 그리는 어떤 집단은 분명 인간인데도 좀비가 떠올랐다는 사실이 좀 서글프기도 했고, 그런 서글픔이 그 글 속에서만 한정되지 않는 것 같은 오늘날의 현실에 좀 더 슬퍼졌다. <아내의 좀비>는 그런 슬픔(?!)을 달랠 겸 해서 좀비 관련 글들을 검색해서 찾아보다가 발견한 작품이다. 물론 이미 읽었던 글이었고, 심지어 리뷰까지 썼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가 그냥 지나쳤나보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면서 이번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몇 글자 끼적여보려고 한다.

 

아내를 침대에 꽁꽁 묶어 놓은 남자가 있다. 그 아내의 입에 쉰 김치 한 조각을 올린 밥 한 숟갈을 들이민다. 아내는 풀어달라고 말하지만, 남자는 그 말을 무시한 채 수저를 들이민다. 아내는 남편에게 계속해서 죽여 달라고 말한다. 남편은 아내를 죽음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꽁꽁 묶어 둔다. 아내는 남편을 증오하고 저주한다. 그 시간이 조금씩 더해질수록 남편도 아내를 지켜주고 싶은 생각과 죽여주고 싶다는 생각 사이에서 번민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작품 소개를 보면,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 서로를 사랑하고 증오하는 한 부부의 이야기, 라고 되어있다. 그렇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에서 아픈 아내는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며 고통 속에서 죽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상황인 것이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지키기 위해 침대에 묶어 둘 수밖에 없는 것이고 말이다. 작품 소개 그대로의 배경에서 서로 사랑하고 증오하는 부부의 이야기가 펼쳐지게 된다.

 

사실 더 많이 이야기를 정리해서 여기에서 풀어낼 수도 있겠지만, 자칫 스포가 될 것 같으니 내용은 이만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조금의 힌트를 주자면 제목에서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정도가 될까?! 이미 제목에서 전부를 말하고 있었는데 나는 마지막까지 눈치 채지 못했다. 처음부터 <아내의 좀비>라는 제목을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어느 정도 짐작도 할 수 있을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는 사실은, 다 읽고 모든 것을 파악한 지금에서야 슬쩍 말해본다. 물론 내용의 짐작은 그저 재미로만 그칠 이야기니까 넘어가고…….

 

좋은 글, 재미있는 글은 많이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리뷰를 남길 수 있는 글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아내의 좀비>을 두고 이렇게 끼적이는 이유는 단순히 이 작품이 좋았다는 사실 이상으로, 여전히 좀비라는 소재를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써내려 갈 수 있구나 싶은 생각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통 좀비를 주제로 이야기를 써내려간다면, 누구나 기존과는 색다른 좀비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좀비라는 존재의 특징도 기존과는 조금 다르게 바꿔보고 싶을 것이고, 작품 속 상황 설정에 있어서도 보통과는 다른 특별한 순간을 떠올리려고 할 것이다. <아내의 좀비>도 역시 기존의 작품과는 차별되도록 좀비의 특징부터 조금 다르게 설정한다. 좀비와 인간을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외형적 특징을 좀비들의 붉은 눈동자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 외의 특징은 불완전한 지성과 지독한 폭력성 정도로 나타내며, 경우에 따라서 인간과 별 차이가 없는 경우도 있다고 밝힌다. 게다가 남편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설정을 통해서 기존의 그것들과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 모든 것들이 전체적으로 참 잘 짜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소설을 읽으면서 왜 이럴까, 꼭 이래야 할까, 싶은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있고, 그런 의문들은 보통 제대로 해소되지도 않은 채 뭔가 찝찝하게 끝나버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아내의 좀비>는 그런 찝찝함이 남지 않는 깔끔함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결말을 알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본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좀비 같은 인간의 모습에 서글펐던 마음은 이런 좀비의 모습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면서 마음까지 어느 정도 달랠 수 있었던 시간들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단순히 마음을 달랬다기보다는 나름 재미있는 이야기로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해야 할까?! 작가가 글을 올린 지 시간이 좀 지났지만 괜히 뒤로 점점 밀려나고 그냥 잊히는 게 아쉽게만 느껴진다. 더군다나 단순히 독자 입장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발견하기도 쉽지 않은 그런 작품을, 그 쉽지 않은 일을 또 해내는 작품을 만난 건 그저 행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 행운을 만났으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한 번 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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