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등장하는 소설은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아이가 주인공이라고 하면 이야기의 분위기가 순수할 것 같지만, 오히려 그 순수함에 대한 기대가 배신당하는 맛이 심심찮게 느껴지곤 하는데 <검은 책>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저주’라는 원색적인 소재를 제법 그럴싸하게 그려낸 글이었다
주목 받는 것을 좋아하는 소희는 자신의 성향에 맞게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즐기는 아이였다
타고난 존재감 덕에, 예쁘장한 얼굴과 큰 키 때문에 친구들도 많고 연예인이 꿈이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 서울에서 유리라는 친구가 전학을 오게 되고, 그때부터 소희에게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자기도 모르게 솟아 오르는 질투심을 어찌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초등학생 치고는 유연하게 그러한 마음을 누르고 있던 중에 학예회에서 유리가 백설공주를, 소희가 왕비를 맡으며 사건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사실 어찌 보면 되게 사소한 사항이고, 어른 입장에서 보기엔 그게 뭐 어때서? 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초등학생인, 그것도 큰 노력 없이 남들에게 주목받고 호감을 받아 왔던 소희의 심리가 섬세하게 잘 표현되기 때문인지 이야기는 흥미롭게 술술 읽힌다
그 누구보다도 주인공 같은 백설공주 유리와, 그런 백설공주를 질투하는 왕비 소희
흔하고 친숙한 소재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스며들고 상실감과 패배감에 젖은 소희가 ‘검은 책’을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흡인력을 발휘한다
개인적으론 소재나 전개가 마음에 들었으나 전반적인 길이가 좀 길어서 루즈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같은 내용을 웹툰으로 표현한다면 훨씬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꼭 만화 데스노트가 떠올라서 그랬다기보다는, 아이들의 표정이나 상황 묘사 등을 시각적으로 그려내면 이야기가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 같았기에^^
소희의 저주는, 적어도 소희가 생각하기에는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잡아먹는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저주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소희는 소위 말하는 ‘성장’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러나 역시나 공교롭게도, 작가는 그런 소희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던 듯 거침없이 ‘검은책’을 활용해 나간다
어긋난 타이밍 때문에 글이 더 재미있어지는 이유는, 아마도 이미 시작된 일이 소희의 손을 떠났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