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투어는 끝나지 않고 의뢰(감상)

대상작품: 붉은 라벤더 (작가: 이선생, 작품정보)
리뷰어: 청새치, 8월 2일, 조회 29

제가 홋카이도에 관해 아는 건 아이누족이 원주민인 지역이라는 것과, 겨울이 되면 눈이 몹시 많이 내린다는 것, 그리고 굉장히 풍요로운 자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관광 명소인 걸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그래서 장르와 태그를 보고서도 조금은 관광버스를 타러 온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실제 장소의 구글 지도 링크도 있어서 정말 관광버스에 앉아 카톡을 받는 것 같기도 했고요. 비쩍 마른 데다가 이곳을 영 좋아하지 않는 가이드는 좀 미덥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이 아니라 외관 때문에 수군거림을 듣는다면 실력은 나쁘지 않다는 얘기고, 무엇보다 연쇄 살인이 일어나면 관광이 문제가 아니게 되니까요.

이런 주인공이 상대해야 할 연쇄 살인마는 ‘사카이 겐지’라는 이름을 쓰는, 전형적인 쾌락 살인마 같은 인물입니다. 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진행되는 작품에서 유일하게 일인칭으로 심정이 나오는데, 어린 시절에 겪은 가정 폭력과 혼혈로 인한 사회적 시선을 알아도 그간 저지른 게 있으니 거드럭거리는 독백이 아니꼽기만 하더라고요. 일단 주인공인 챈짱부터가 같은 혼혈인 데다가 내키지 않는 가이드 업무에서 일류를 자부하고 있잖아요? 멀쩡하다 못해 튼튼한 몸으로 자기 기분 하나 좋자고 더 어리고 힘없는 사람을 해코지하는 인물에게 호감을 느끼기는 어려웠습니다. 거기다 자꾸 평범한 사람들을 깔보는 게 어지간히 밉상이라, 겐지가 말하는 쾌감을 이해하고 싶지 않기도 했고요. 그래서일까요? 겐지의 숨이 끊어졌을 때는 해냈다는 성취감보단 지긋지긋했다는 감상이 가장 강하게 들었습니다. 괜히 잘 지내는 챈짱 손에 피나 묻히게 하고 말이에요….

신선했던 건 겐지가 자기에게 유리한 여론을 만들기 위해 여러 사람 앞에서 울었다는 것과, 챈짱 외에도 이 살인마를 막으려 노력한 인물이 등장하는 거였습니다. 아무래도 57화 동안 단둘이서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승객들을 이끌고 이야기를 진행하긴 어렵겠지요…. 정훈의 이탈은 답답하고 아쉬웠지만 현실적이었습니다. 가족을 잃고 분노한 김 선생의 활약으로 챈짱은 목숨을 구한 뒤, 말 그대로 각성하여 겐지를 쓰러뜨리는 부분은 태그처럼 속도감 있었습니다. 초반에 투어 여행을 다니며 계속 공지하던 시간의 간격이 훅 줄어드는 게 느껴질 만큼요! 그 이후의 기적 같은 준수의 생존과 유가족의 원망 없는 감사 인사까지 매끄럽기 그지없다가 겐지의 신상이 밝혀지면서는 한일 외교관계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이 작품에서 그런 건 중요하지 않겠지요.

그로부터 겨우 1년 뒤, 챈짱이 사건과 관련된 곳에서 자영업을 하는 게 놀라웠습니다. 한번 실패했던 경험이 있어설까요? 김 선생의 희생을 매일 아침 곱씹어서일까요? 그래선지 어린 손님에게 희망이 담긴 말을 해 줄 때는 참 훈훈했는데, 겐지의 후계자 같은 익명 카톡이 등장하며 분위기를 깬 것이 제게는 아쉬웠습니다. 1년 동안 계속 몸을 단련하며 다시 모습을 드러낼 악을 기다려 왔다면 숨은 영웅으로 활약할 챈짱의 뒷모습에 설렜겠지만, 김 선생이 바란 건 평온한 일상이지 악을 처단하는 게 아니었잖아요? 하지만 영화의 가장 마지막 장면에서 깜짝 놀라게 하는 용도의, 예를 들어 다 죽은 줄 알았던 좀비 중 하나가 움직이는 것 정도라고 생각하면 특색 있는 마침표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만 더 아쉬웠던 점을 말하자면 오타가 종종 보였습니다. 띄어쓰기는 틀려도 크게 티가 안 나지만, 오타는 작품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전개가 느린 초반에 특히 신경 쓰였거든요…. 후반에는 차가 구르고 피가 콸콸 나오고 겐지는 사정없이 사람 속을 긁어대니 정신이 없어서 오타가 있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지만요!

스릴러 작품을 볼 때마다 기초 체력은 정말 중요하구나 절절히 실감하곤 하는데, 「붉은 라벤더」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산악자전거를 탈 만큼은 못 돼도 달려가는 김 선생을 뒤쫓을 만큼은 되어야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거겠죠! 험난한 홋카이도 생활을 이어갈 챈짱에게 애도를 표하며, 저는 안전한 곳에서 체력을 기르기로 결심하게 되는 결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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