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보선 작가의 《별과하늘의 오케스트라》
이 작품은 《별과하늘》 시리즈 3부로서, 1부 ‘붉은하늘의 칸타빌레’ 2부 ‘잿빛 심포니’에 이은 대단원이다.
원래 이 작품을 대한 건 ‘잿빛 심포니’부터이다. 사실… 기대는 없었다. 그냥 ‘제목이 시적이네, 내게 없는 감각적이고 섬세한 표현들이 있을까?’ 하는 정도의 궁금증. 그렇게 시작했던 것이 2부를 읽고 나니 1부를 읽었고, 그리고 3부도 읽게 됐다. 웹소설이 재미없으면 더 이상 읽지 않는 게 룰인데 이 소설은 무언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강보선 작가만의 힘이 있다. 가끔 나오는 시적인 표현들이 있긴 하지만, 분위기를 확 시적으로 몰고 가진 않는다. 어찌 보면 단답형의 명료한 설명, 형용사의 최소화. 처음 기대했던 섬섬옥수 같은 터치와 감성은 아니다. 그런데 이 작가만의 특별한, 톡톡 튀는, 개성 넘치는 이야기 전개가 있다. ‘왜? 이게 그리로 가?’ 하면서 앞장을 넘겨봐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데 그 행위가 불편한 행위가 아닌, 이 작품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즐거움이 된다.
1부 붉은하늘의 칸타빌레
1부의 부제인 ‘칸타빌레’는 음악 용어로 “노래하듯이, 선율적으로”라는 뜻을 지닌다. (검색했다. 지식이 늘어났다. 칸타타는 알아도 칸타빌레라니.) 1부의 서사는 아직 거대한 교향곡으로 통합되지 못한 인물들이 각자의 고립된 시공간(1996년, 1999년, 멸망한 미래)에서 자신의 파편화된 비극적 선율을 노래하는 과정이다. 진실은 짙게 은폐되어 있고, 인물들은 서로의 과거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날카로운 불협화음을 낸다. 한소영의 정체는 무엇인가, 강천길은 왜 두 인격처럼 행동하는가, 가면남의 정체는 무엇인가, 세계는 왜 삭제되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이 산발적으로 던져지며 1부는 끝이 아닌 구조적 덫을 완성하고 2부로 넘어가는 뒤틀린 출구를 열어젖힌다.
2부 잿빛 심포니
이지현과 남궁천이 갇힌 ‘거짓된 행복’의 폐쇄 회로는 이 서사가 독자에게 던지는 가장 예리한 철학적 질문을 담고 있다. 아무도 소리 지르지 않고, 어떠한 물건도 깨지지 않으며, 갈등이 완벽히 소거된 조용한 세계의 평화 속에서, 이지현은 오히려 진짜 평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자각하게 된다. 과거 병아리 앞치마를 입고 당당히 서 있던 세스 아저씨의 시끄러웠던 집, 소영 언니와 천길 오빠가 찌개가 죽인지 소스인지를 두고 진심으로 투덕거리던 소박한 갈등, 엄마가 계란말이에 썰어 넣은 파를 골라내다 등짝을 맞던 소소한 마찰력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생동하게 만드는 진짜 ‘평화’였음을 깨닫는다. 이들이 거짓된 행복을 깨부수고 현실로 귀환하기 위해 취하는 전략은 “행복을 무작정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의 웃음을 버리지 않고 진실로 긍정하는 것”이다. 이는 도피주의적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고통과 갈등을 수반하는 인간의 실존을 적극적으로 껴안는 인지적 비약을 보여준다.
내면의 기억 조작과 시스템의 톱니바퀴 내부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교향곡(심포니)으로 텍스트의 두께를 한층 더한다. (개인적으로 2부가 가장 많이 생각하며 읽게 됐었다. 그리고 작가의 개성도 제일 많이 녹아있다. 그리고 2부부터 읽는 것도 추천한다. ㅋ)
3부 별과하늘의 오케스트라
작품의 세계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사람에게서 이름을 빼앗고 번호를 붙인 뒤, 그 사람이 존재했다는 기억까지 지워 버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미래정부와 시간전쟁, 안드로메다 같은 거대한 설정이 눈에 들어오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 주는 작은 행동이었다. 1999년의 서울과 미래의 흐린세계, 인물들의 과거를 오가며 진행된다. ‘화·막·장·인터미션’으로 구분된 구성도 처음에는 다소 복잡하게 느껴졌다. 사건이 시간순으로 설명되지 않고 인물과 시대가 계속 바뀌기 때문에 초반에는 누가 누구이며 지금 보고 있는 세계가 어느 시간대인지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다. (이건 내가 할 말은 아니다. 내가 쓰는 작품은 수천 년을 표시도 없이 왔다 갔다 한다. 반성.) 하지만 이야기가 쌓이면서 흩어진 장면들이 하나의 연주처럼 연결된다. 제목에 사용된 음악 용어도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각자 다른 과거와 목소리를 가진 인물들이 마지막에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작품의 구조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미래정부와 싸우는 시간전쟁 이야기인 동시에, 한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이야기다. 체제는 이름을 번호로 바꾸고 기록을 삭제할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가 그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 주는 것까지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마지막까지 읽고 나면 세스와 윤정은, 아이들, 그리고 사라진 사람들의 이름이 남는다. 주제를 끝까지 놓치지 않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사람은 기억되는 동안 사라지지 않는다”는 명제를 이 작품만의 시간전쟁과 오케스트라 구조로 들려준다.
이 작품은 기억과 존재론에 관한 탐구다. 시스템이 무자비하게 세계를 삭제하고 공적 기록을 통제하더라도, 타인의 결핍을 직관적으로 인지하고 그 부재를 애도하려는 인간의 ‘감정적 잔여물’은 결코 인위적으로 지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가슴팍의 명찰이 떨어진 허전한 빈자리를 어루만지며 누군가의 존재를 역으로 증명해 내는 결말의 도달점은, 폭력적인 세계 속에서도 인간을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남게 하는 것은 효율성이 아니라 바로 ‘상실을 기억하고 슬퍼할 줄 아는 연대의 능력’임을 속삭인다.
브릿G에 내가 좋아하는 글쟁이 다섯이 있다.
이분들은 한 분 한 분 남들이 가지기 힘든 장점과 개성이 있다. 그리고 그 개성이 처음 이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눈을 멈추게 했고, 계속 읽게 했다.
그런데 한두분은 안타까운 점도 있다. 그 장점들이 글이 누적되면서 조금씩 흐려진다는 것이다. 물론, 녹아있다. 그런데 처음보단 선명해지진 않는다. 어쩌면 글을 쓰면서 자기 장점이 작아 보여서 자꾸 감추는 것이 아닌지..
별작가님도 톡톡 튀는 사고의 개성과 그것을 글로 표현하며 재미있게 이해시키는 능력, 끝까지 지키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이 작풉 1.2.3부를 다 읽고 리뷰를 쓸만큼 특별하고 재미있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