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란 무엇인가-신에게 마저도 손을 내미는 존재 감상

대상작품: 뒤돌지 말라 했음에도 (작가: 하늘소금, 작품정보)
리뷰어: 노르바, 1시간 전, 조회 13

나는 기사도문학, 영웅서사를 좋아한다. 아주 틀에 박힌 듯한 영웅 이야기를 너무 좋아한다. 왜냐하면 언제나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아니면 평범한 인간인 나로서는 누군가 이렇게 손을 내밀어 주길 바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르페우스 신화 이래로 ‘뒤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는 숱한 이야기에서 반복되어 왔다. 그리고 그 클리셰에서 우리는 언제나 같은 교훈을 배워왔다. 뒤돌아보는 자는 실패하고, 참아내는 자만이 보상을 얻는다고.

그런데 이 짧은 소설은 그 오래된 공식을 완전히 뒤집는다. 여기서 진짜 영웅은 뒤돌아보지 않는 자가 아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드시 뒤돌아보는 자다.

 

이 소설 속 영웅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저주와 영생의 신이 내리는 시련 앞에서, 그는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다. 매번 기억을 잃고,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매번 똑같은 자리에서 뒤를 돈다. 신조차 이 반복에 지쳐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연극인가”라고 한탄할 정도다.

보통의 이야기라면 이 반복은 결핍이나 실패의 상징일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반복을 뒤집어 영웅성의 증거로 제시한다. 영웅이 뒤돌아보는 이유는 나약해서가 아니다. 마을에서 죽어가는 노인의 목소리, 구하지 못한 이들의 비명, 그리고 마침내는 홀로 어둠 속에 갇힌 신의 목소리까지. 그 모든 부름에 응답하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는 힘보다 돌아보는 마음을 선택한 사람이다.

 

동굴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목소리’는 이 작품의 핵심 장치다. 그것은 단순한 유혹이나 환상이 아니라, 영웅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조건 같은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본질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매번 실패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이 시련은 애초부터 영웅을 통과시키기 위한 관문이 아니라, 그를 배제하기 위한 장치였다고 볼 수 있다. 신이 이 시련을 통해 걸러내고자 한 것은 능력이 부족한 자가 아니라, 타인의 부름에 반응하지 않을 만큼 무정한 자였던 셈이다. 영웅은 그 기준에서 완벽하게 ‘부적격’이었고, 그 부적격함이야말로 그를 다른 신적 존재들, 신이 되고자 했던 자들과 구분 짓는 유일한 표식이었다.

영웅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명확하다. 앞만 보고 걸으면 무한한 힘과 영생을 얻는다. 뒤를 돌면 모든 것을 잃는다. 세속적인 기준에서 이것은 선택지라 부를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명백하고 단순한 답이다. 그러나 영웅은 일반적인 선택을 거부한다. 그가 신을 찾아온 이유는 오직 죽어가는 노인이 자식들과 작별할 며칠을 벌기 위해서였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영웅의 정의를 다시 쓴다. 영웅이란 초월적 힘을 얻어낸 자가 아니라, ‘애초에 그런 힘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 자’다. 시련을 통과해 신적 존재가 된 다른 이들이 하나같이 “극단적으로 잔인하거나 삼라만상에 무관심”해졌다는 서술은 이 대비를 더욱 극명하게 만든다. 앞만 보고 달려 힘을 얻은 자들은 인간성을 잃었고, 매번 실패해 아무것도 얻지 못한 영웅만이 끝까지 인간으로 남았다는.

 

이 소설의 결정적인 전환은 결말부에서 이루어진다. 영웅은 단순히 실패를 반복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반복을 통해 조금씩 ‘준비’를 해온 존재였음이 드러난다. 그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에 걸쳐 자신의 생명력을 조금씩 소모하여 동굴과 지상을 잇는 경로를 만들어냈다.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홀로 영원히 갇혀 있는 신을 구하기 위해서.

이 지점에서 서사의 중심은 완전히 전도된다. 인간이 신에게 시험받는 구조에서, 인간이 신을 구원하는 구조로. 시련을 내리는 자와 시련을 받는 자, 힘을 가진 자와 힘을 구걸하는 자의 구도는 사실 처음부터 반대였던 것이다.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힘을 가진 신이야말로 진짜로 구원이 필요한 존재였다. 그는 스스로 만든 규칙에 갇혀, 스스로 판 동굴 밑바닥에서 아무도 자신을 동정할 수 없다고 믿으며 홀로 늙어가고 있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영웅의 동기가 힘의 위계가 아니라 동정과 연민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그는 신의 권능이나 위대함을 보지 않는다. 대신 ‘홀로 남겨진 존재’로서의 신을 인식한다. “당신이 홀로 남지 않습니까”라는 영웅의 한마디는, 힘의 크기가 아니라 고립과 고통이라는 지극히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연민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과 인간이라는 위계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외로운 존재’와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 존재’라는 훨씬 근본적인 구도가 들어선다.

“당신을 구하러 왔어요.”

이 한마디로 이야기는 완전히 뒤집힌다. 구원은 힘을 얻는 데서 오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돌아보는 것, 그 자체가 구원이었다.

 

문체는 비교적 간결하며, 반복과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한다. 신과 영웅의 대화는 철학적 질문을 드러내면서도 무겁거나 너무 직접적이지 않다. 다만 일부 표현에서는 문장을 조금 더 다듬을 여지가 보이고, 오타가 살짝 있다. 감정의 전환이 다소 급격하게 느껴지는 대목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담고 있는 핵심 주제와 완성도는 이러한 사소한 단점을 충분히 상쇄한다.

 

이 소설이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하다. 앞만 보고 걷는 것은 쉽다. 규칙을 지키는 것도, 시련을 통과하는 것도, 결국은 자신만을 위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는 것, 그것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때로는 그 이상을 걸어야 하는 선택이다. 영웅은 그 선택을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했다. 그리고 그 반복이야말로 그를 진짜 영웅으로 만든다.

뒤돌지 말라 했음에도 뒤돌아보는 존재.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다시 돌아서는 존재. 혹자는 미련하다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존재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이것이 영웅이다.

 

힘을 얻기 위해 앞만 보고 걷는 자가 아니라, 누군가를 홀로 두지 않기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잃는 자.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도 같은 선택을 지켜낸 의지, 그리고 그 의지가 만들어낸 예상 밖의 결과가 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진정한 영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이 작품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한다. 돌아보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반드시 돌아보는 존재. 신마저 구원해내고야 마는 그 마음이야말로, 이 소설이 그려낸 가장 인간적이고도 위대한 영웅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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