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돌진 사고를 뉴스로 접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왔을 피해자는 간절히 이루고 싶은 것들과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일상을 보내던 장소에서 자신이 그런 죽음을 맞게 될 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남에겐 안타깝고 무서운 사건일 뿐이지만 그 사람을 잃어버린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평생을 걸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잊을 수 없는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권선율 작가님의 <맞은편에서>는 좋아하는 것이 같다는 공통점으로 같이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이 떠오르는 이야기였다. 꿈을 나누던 모두가 자신의 꿈을 이룬 것은 아니었다. 현실에 치여 꿈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 새로운 꿈을 찾은 사람, 현실에 맞추어 꿈의 크기를 줄여서라도 이루어 가는 사람, 일으켜 주는 다른 사람의 말을 붙잡고 잊고 살던 꿈을 다시 꾸는 사람, 그냥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지 꿈 같은 건 원래부터 없었다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소식이 끊어진 사람도 있었고,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사람도 있다.
재윤은 소윤을, 정아는 소윤을,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소윤의 서점이라는 연결점을 통해 세 사람이 책을 읽으며 같이 시간을 보내던 시기가 있었다.
소윤의 죽음이 아프게 느껴졌던 건,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면서 공부해왔고, 어머니 죽음 이후에는 대출 빚을 갚기 위해 밤낮으로 일했을 소윤이 오랜 시간을 버티면서 겨우 갖게 된 작은 서점에 대한 의미 때문이었다. 어려운 현실을 버티게 해주었던 꿈이자 집이나 다름없는 전부였다. 소윤은 그 공간을 부수며 달려온 자동차에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이유도 모른 채 목숨을 잃는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옛말처럼 성실하고 착하게 살던 사람들은 다 복 받는 인생만을 살다가 평안한 죽음을 맞게 된다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많이 봐와서 더 감정 이입이 되었던 것 같다.
소설은 재현과 정아의 생각이 교차되는 구성으로 전개되고 있다. 두 사람이 계단에서 재회하고, 음악이 흐르고 있는 지하철 안에서 재현이 옆자리에 앉아 있다가 인사도 없이 내리기 전까지의 시간을 다루고 있었다. 아델의 ‘someone like you’는 막바지에 바다 여행에서 소윤과 재현이 들었던 추억의 음악으로, 지하철에서 들려오는 음악으로 등장하지만, 소설이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흐르고 있던 배경 음악이었던 것 같다. 아델의 노래를 들으면서 음악이 가진 분위기와 가사가 소윤, 재현, 정아에게 어떻게 와닿았을지를 생각해 보니 극 중에 ‘한없이 짙은 어둠에 잠긴 풍경 속 어디까지가 바다고 어디서부터 하늘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라는 문장처럼 굉장히 복잡하고 짙은 감정의 여운이 남았다.
정아의 생각은 기억에 근거하고 있었고, 재현의 생각은 과거 회상과 꾸었던 꿈의 일부였다고 생각하면서 읽어나갔다. 정아는 그들과 같이 바다를 갔던 기억이 없다. 하지만 바다에서 찍은 재현과 소윤의 사진을 발견하고, 사진이 찍혀진 날짜가 셋이 자주 만나던 시기라는 것 때문에 그 사진을 찍어준 사람이 당연히 자신이었다고 믿고 있었다.
반면 재현의 과거 회상 속에는 소윤과 재현만 아는 둘만의 시간이 있다. 자신이 모르는 그들만의 시간은 없었을 거라고 단정지어 확신하고 있던 정아는 셋의 첫만남부터 재현과 사귀는 동안에도 소윤과 재현이 왜 그렇게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었는지, 재현이 소윤의 죽음에 큰 슬픔을 느끼는 이유가 무언지, 이해한다 믿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벽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정아의 기억과 재현의 기억이 겹쳐지는 장면에서는 과거에 소윤과 함께했을 때의 비슷한 상황이 떠올라서 재현이 울었을 거란 추측을 할 수 있었다.
비가 더 거세지기 전에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맞은편에서 누군가 올라오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던 정아가 올라오고 있던 재현을 먼저 알아차리며 재회했고, 과거에는 앞만 보던 재현을 소윤이 먼저 알아차리면서 지하철 계단에서 재회했었다. 하지만 재현은 소윤에게 니가 손목을 잡아주는 순간을 기다려 왔으며 자신이 알아보지 못 했다면 우리는 만나지 못 했을 거라 말한다.
재현의 생각들은 과거 회상인지 소설의 일부였는지 한쪽으로만 단정짓기에는 어려운, 미묘하게 읽히는 지점들이 있어서, 정아에게는 끝내 보여주지 않았다던 재현이 쓴 소설이 어떤 내용이었을지를 상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궁금했던 것은 ‘정아의 꿈은 무엇이었을까’였다. 소설가가 꿈이라 말한 재현과 작은 서점의 주인이 꿈이라 말했던 소윤과는 달리 정아는 보건 교사가 되고 싶었다는 내용만 언급될 뿐, 그것이 자신의 꿈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현실적인 이유로 정규직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기간제 교사가 되었고, 과로를 견디지 못해서 휴직 중이다. 아이를 가졌지만 아이를 잃었다. 소윤만을 그리워 하고 있는 재현을 사랑했던 정아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고도 재현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아에게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과 함께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일상을 소소하게 나누는 삶이 그녀가 꾸던 진짜 꿈이 아니었을까? 재현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보여주는 그날을 계속해서 정아는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아는 결국 알 수 없었다. 다만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흐르더라도 재현에게 남은 건 사라지지 않고 그의 안에서 구를 것이며, 그 사실이 이후 불분명한 형태로 정아를 상처입히리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넌 앞을 보지 않으니까. 그러니 내가 발견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우린 만나지 못 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