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다시 ‘을’일 것이다, 늘 그랬듯이” 공모(비평)

대상작품: 시차 (작가: 유권조, 작품정보)
리뷰어: 알렉산더, 17년 9월, 조회 61

시차는 인터스텔라의 골격을 활용했지만, 제 느낌은 SF의 탈을 쓴 사회비판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회비판은 저도 참 좋아합니다. 작가님의 훌륭한 필력을 따라 물 흐르듯 읽을 수 있었던 점도 더욱 좋았습니다.

주인공 주혜경 소령은 우주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우주선의 오작동으로 비상탈출합니다. 사실 큰게자리 알루드라는 태양계에서 3천광년 떨어져 있기 때문에 광속으로 여행하더라도 3천년이 걸리며 그 동안 지구에서의 시간은 90년이 아니라 그 몇배로 늘어나 있었을 겁니다. 그러므로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웜홀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합리적입니다.

웜홀을 이용해 우주를 개척하는 시대에 맨몸으로 우주에 나간 것도 아닐텐데 주 소령이 어쩌다 우주방사능을 얻어맞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녀는 방사능 피폭의 후유증과 어마어마한 관성력을 이겨내야 했던 트라우마를 겪게 됩니다. 담배는 처음인데도 지구에 온지 얼마되지 않아 줄담배를 피우고, 차의 가속력에도 ‘제 몸이 등받이를 뚫고 뒤로 날아갈 것만 같아 이를 꽉 악무는’ 등 현실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트라우마도 트라우마지만, 사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진정한 공포는 ‘평범한 사람이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먼 미래로 보내지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입니다. (이런 공포를 극대화한 작품으로 AD7000이라는 만화가 있습니다. 미래로 추방당하는 형벌을 받고 냉동된 범죄자가 아주 먼 미래에서 눈을 뜨고 생지옥을 겪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은 죽은 지 오래입니다. 몇몇 피붙이가 있긴 하지만, 이미 사실상 남에 가까운 존재들입니다. 묘사되지는 않지만 어지간한 지인들도 이미 다 옛날사람일 것입니다. 재활원에서는 12번이나 (2170년대라는 걸 고려하면, 아무래도 뻥 같지만) 우주여행을 했다는 노인이 그녀를 습격합니다. 그녀가 알고 지냈던 세계 전체가 뒤집혀 버렸습니다. 이 미래 세계에서, 그녀는 완전히 혼자입니다. 그 고독감에 짓눌려, 그녀는 줄담배를 핍니다. 군인이기에 그나마 담담히 버티는 편이지, 아마 다른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자살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군은 이런 그녀의 등을 다시 한번 현역으로 떠밉니다. 거부할 수도 없습니다. 군으로부터 이미 83년동안 봉급을 받았으니까요. 근데 사실, 진급식을 받은 것 자체가 이미 83년의 시간을 활동한 것으로 인정한 것이니 그 후에 전역을 하든 말든 법적으로 문제가 될까 싶긴 합니다. 실제로 재활원에서 침이나 흘리고 있다가 전역하는 사람도 있는 상황에서, 그녀가 현역 활동을 거부한다고 뭐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 해서요.

어쨌든 그녀는 다시 현역에 투입됩니다. 그녀의 몸상태가 어떻든 신경쓰지 않고 투입하는 군의 모습은, 직원의 건강을 무시하고 돈을 주는 만큼 반드시 뽑아내고야 마는 현대의 일부 기업들과도 닮아있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속도 내성이 뛰어난 다른 사람도 있을 텐데 왜 굳이 아픈 사람을 또 보내야 하냐는 질문 (비유하자면, 이미 hp가 다 깎인 사람에게 maximum 피통이 크다고 다시 탱을 시키는 그런 느낌)을 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게다가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는 사실 꼭 사람이 해야 하는 임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품 내에서는 인공지능처럼 섬세한 기계가 블랙홀 주변에서 잔고장을 잘 일으켜서 사람이 직접 해야 한다고 설명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우주개발 역사에서 무인탐사선이 해내지 못한 일을 사람에게 맡긴 적이 없어서 그런지, 아무래도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2170년대에는 블랙홀 주변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비용보다 한 사람의 목숨이 더 저렴해진 것일수도 있겠네요. 다만 그들이 그녀에게 약속한 비용이 적지 않은 것처럼 묘사된 부분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식적인 질문이 먹히는 사회라면 부조리한 사회도 아니겠지요. 그리고 우주방사능 때문에 시한부나 다름없는 주인공의 몸 상태를 고려하면 차라리 한번 더 다녀오고 먼 미래에서 치료를 받는 편이 나을 것 같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돈 없는 ‘을’들은 이래저래 생고생을 하며 몸으로 때워야 한다는 것이 마지막까지 씁쓸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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