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빌라 208호 현관문에 부착된 안내서」중심 리뷰 감상

대상작품: 재난 관리청 특별기밀자료들 (작가: 김병식, 작품정보)
리뷰어: 매미상과, 2시간 전, 조회 6

김병식 작가는 다양한 장르를 녹여내는 방식이 좋다. 「백색벌레」, 「형광등보기」에서 드러나는 고전적인 매력도 그렇고. 이 작가는 한 가지를 오래 열심히 판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괴담이라는 장르 안에서도 서로 다른 결의 이야기들을 엮어내며, 단순히 공포를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공포의 결을 나름대로 다듬는 작가다.

나폴리탄 괴담은 이제 많기에 흔하면 지겹다는 생각이 드는데, 김병식의 작업은 그 안에서도 분명한 자기 색이 있다. 긴 글을 못 읽는 이들에 맞게 적당한 길이에 스토리텔링을 늘어놓으면서도, 단순한 자극에만 기대지 않는다. 특히 한 장소가 아니라 다양한 장소를 녹여낸다는 점이 강점이다. 거성빌라, 공중화장실, 거성대교 등 예측불허한 공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꾸며내며, 읽다 보면 일상의 어떤 장소도 안심할 수 없다는 감각이 스며든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도쿄의 한 호텔 새벽 두 시 객실 전체 TV에 방영된 방송’에서 “에~”라는 대사가 반복되는데, 조금 형식적인 일본어 대사처럼 느껴졌다. 나폴리탄 괴담 특성상 문장력을 드러내기보다 호기심을 끌어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식이다 보니, 작가의 문체가 전면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김병식 작가의 장점인 탄탄한 문체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스토리 중심의 단편소설을 먼저 접해보길 권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든 에피소드는 역시 표제작 「동호빌라 208호 현관문에 부착된 안내서」다. 이 단편은 ‘안내문’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독특하다. 새 입주자에게 건네는 실용적인 지침서처럼 쓰인 이 글은, 읽는 순간부터 묘한 현실감을 준다. 실제로 이런 안내문이 현관문에 붙어 있다면 어떨까. 그 단순한 전제 하나가 이야기 전체를 살아있게 만드는 힘이 된다.

등장인물들도 인상적이다. 빌라에서 6년을 살다 외롭게 떠난 김자혜 할머니, 자살한 공시생 이준식 씨, 공사장 인부 박철형 씨, 인터넷 방송인 이현지 양. 모두 우리가 한 번쯤 스쳐 지나쳤을 법한 얼굴들이다. 특별한 악의도, 거창한 설정도 아닌, 그저 살다 간 사람들이다. 그 평범함이 오히려 더 서늘하다. 김자혜 할머니는 남편이 먼저 가고 자식들마저 소홀해 외로움 속에 세상을 떠난 분인데, 안내문은 그를 위험하게 보지 않고 오히려 “너그러이 대해달라”고 부탁한다. 이 지점에서 공포는 슬픔으로 슬쩍 전환된다.

이준식 씨도 마찬가지다. 정신이 불안정해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일으키지만, 카페인 음료 한 잔이면 달래진다는 설명은 웃기면서도 어딘가 마음이 걸린다. 시험에 지쳐 세상을 등진 청년이 죽어서도 불안에 시달린다는 설정 안에, 한국 사회의 고시 문화와 청년 고독 같은 게 은근히 담겨 있다. 호러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에 사회적인 시선이 분명 있다.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은 귀신 하나하나에 구체적인 사연을 붙여준다는 데 있다. 안내문이라는 무미건조한 형식과, 그 안에 축약된 한 인생의 비극이 대비되면서 독특한 여운을 남긴다. “그냥 무시하셔도 됩니다”라는 한 마디가, 어떤 장문의 비탄보다 더 쓸쓸하게 읽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폴리탄 괴담의 매력은 결국 우리 주변의 장소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다. 자취하면서 왠지 서늘한 기운을 느낀 적이 있다면, 이 괴담을 읽고 나서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릴 때 얼마나 오싹할지 싶다. 낯선 방, 알 수 없는 냄새, 꺼진 줄 알았던 전자기기. 그 모든 것이 이 안내문을 읽고 나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현재 소설은 휴재 중이지만, 이렇게 자기 장르 안에서 꾸준히 자기만의 밀도를 쌓아온 작가이기에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독자가 분명 있을 것이다. 공포를 통해 삶의 질감을 건드리는 이야기를 찾는다면,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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