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토리
주인공 세현은 신문사 문화부 출판 담당 기자입니다.
그는 책을 소개하는 일을 하지만, 실제로는 책을 거의 읽지 않습니다. 출판사에서 보내온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겨 지면을 채우고, 책의 내용이나 의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세현은 보도자료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제목과 내용이 뒤바뀐 기사를 내보냅니다. 편집장은 그에게 “책도 안 읽고 자료도 확인하지 않으면 이 지면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지적합니다.
그 말은 이상하게 세현에게 남습니다. 세현은 “아 읽으면 되잖아요”라고 말한 뒤 회사를 나가고, 이후 연차를 내고 집에 틀어박힙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던 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누군가가 세현의 반지하 방 문을 두드립니다. 문 앞의 낯선 사람은 젖은 종이 뭉치를 내밀며 말합니다.
“어느 작가의 미발표 원고입니다. 꼭 읽어주셔야 합니다.”
세현은 이유도 모른 채 원고를 받아듭니다. 처음에는 평범하고 꽤 좋은 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읽을수록 원고 속 내용은 강박, 집착, 범죄, 살인, 사디즘적 폭력으로 기울어집니다.
세현은 불쾌함과 혐오감을 느끼지만, 이상하게도 원고에서 손을 뗄 수 없습니다. 원고를 덮으려 해도 손이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저절로 다음 장을 넘기게 됩니다.
페이지 사이에는 이전 독자들이 남긴 듯한 메모가 있습니다.
“읽지 마시오.” “전달하지 마.” “미안하다.”
서로 다른 필체로 남겨진 문장들은, 이 원고가 이미 여러 사람을 거쳐왔으며 그들 모두가 멈추려 했지만 실패했음을 보여줍니다.
세현은 끝내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습니다. 원고를 다 읽은 뒤, 그는 내용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원고가 남긴 감각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무언가가 그의 안에 남고, 동시에 그는 다음에 이 원고를 읽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결국 세현은 원고를 챙겨 밖으로 나갑니다. 비 내리는 밤, 그는 자신이 알게 된 주소로 향합니다. 처음에 누군가가 세현에게 원고를 건넸던 것처럼, 이제는 세현이 다음 사람에게 원고를 전달하러 갑니다.
이야기는 세현이 독자에서 전달자로 바뀌는 순간 끝납니다.
2. 해석 (자의적)
그냥 읽으면 이 소설은 공포물처럼 보입니다.
행운의 편지, 혹은 [링] 의 저주받은 비디오처럼, 누군가에게 전달해야만 하는 저주받은 원고 이야기처럼 읽힙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단순히 그런 구조만을 가진 공포물인지는 조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태그를 보면 장르 호러, 흙 묻은 원고, 소일장, 바이럴 마케팅, 책 읽지 않는 사회, 메타픽션 같은 말들이 붙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있는 대로 다 때려박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역시 ADHD-! 농담입니다. ^^;;;)
하지만 읽고 나면 이 태그들이 꽤 정확하게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 소설이 “오늘날 책 대신 통용되고 전달되는 것은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다”라고 말하고 있다고 읽었습니다.
세현은 책을 다루는 사람이지만 책을 읽지 않습니다. 지면은 채우지만 의미는 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세현이 끝까지 읽게 되는 것은 좋은 책도, 필요한 지식도, 깊이 있는 문학도 아닙니다.
그가 끝까지 읽게 되는 것은 사디즘적 폭력과 불쾌한 자극으로 가득한 원고입니다.
여기서 이 소설의 무서움이 생깁니다. 사람들은 책은 읽지 않지만, 자극적인 것은 끝까지 봅니다. 싫다고 하면서도 봅니다. 불쾌하다고 하면서도 멈추지 못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합니다.
이 구조는 현대사회 전반에 통용되는 자극의 전염 구조처럼 보입니다.
작게는 쇼츠 중독일 수도 있습니다. 태그에 적힌 바이럴 마케팅일 수도 있습니다. 더 어둡게 보면 음지에서 통용되는 포르노그래피, 다크웹의 고어 콘텐츠,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자극들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싫어한다고 말하면서도 쉽게 클릭하고, 혐오한다고 말하면서도 공유하고, 보고 나면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감각만은 몸 안에 남습니다.
이 소설의 원고도 그렇습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감각은 남습니다.
읽은 사람은 사라지지 않고, 전달자가 됩니다.
수많은 텍스트들이 있지만 책은 읽히지 않습니다. 대신 자극이 읽힙니다. 그리고 그 자극은 사람을 통해 계속 이동합니다.
3. 감상
해석만 남기기엔 너무 삭막합니다.
워낙 선명하고 깔끔하게 쓰인 글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더 말하면 사족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모처럼 보기 힘든 노르바님의 리뷰공모이니, 아쉬움에 조금 더 주접을 떨어보겠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소설을 보고 느낀 점(개인적 감상)을 말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제가 이 소설에서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원고 속에 담긴 사디즘에 가까운, 아니 그 이상의 잔혹함이었습니다.
괴롭힘이나 폭력에 노출되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겁니다. 피해를 받은 사람이 그것을 학습하고, 때로는 얼마나 능숙하게 가해의 방식을 익히게 되는지를 말입니다.
말해서 뭐하겠습니까. 군대나 학교폭력 같은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살면서 크고 작은 폭력에 한 번쯤은 노출됩니다.
그리고 그 폭력은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다.
많은 격투기 선수들의 훈련 동기가 학교폭력 피해 경험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는 흔합니다. 왕따나 괴롭힘을 극복한 이들 중 일부는 강한 권력지향성을 갖게 되거나, 타인의 약함과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나는 극복했는데, 너는 왜 못하냐”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것을 폭력의 부작용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폭력의 전염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피해자가 가장 무서운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은 피해자를 탓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폭력이 그만큼 인간을 망가뜨린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제대로 된 폭력은 인간의 기본 구조, 그러니까 인성 자체를 변질시킵니다. (보통은 공감 능력이 사라집니다.)
이 소설에서 원고를 읽은 사람들은 원고를 원하지 않습니다. 경고문도 남깁니다. 읽지 말라고 말하고, 전달하지 말라고 말하고, 미안하다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다음 사람에게 원고를 넘깁니다.
그 지점이 가장 무서웠습니다.
이 소설의 공포는 저주받은 원고 자체가 아닙니다. 원고를 읽은 사람이 결국 다음 사람의 문 앞에 선다는 사실입니다.
폭력은 소비로 끝나지 않습니다. 폭력은 경험으로도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 안에 남아 있다가, 어느 순간 다른 사람에게 전달됩니다.
그래서 [미발표 원고] 의 원고는 단순한 저주받은 물건이라기보다, 폭력이 인간을 통과하는 방식 그 자체처럼 보였습니다.
폭력에 관해 이상하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이 남지만(크크크크크…) 여기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4. 저주
이 리뷰는 브릿G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년에 한바퀴를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 옮겨진 이 리뷰는 4일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이 리뷰를 포함해서 7통을 행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 주셔야 합니다. 복사를 해도 좋습니다. 혹 미신이라 하실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브릿G에서 노르바라는 사람은 2026년에 이 리뷰를 보았습니다. 그는 AI비서에게 복사해서 보내라고 했습니다. 며칠 뒤에 편집부 추천에 당첨되어 황금드래곤상 본심을 받았습니다. 어떤 이는 이 리뷰를 받았으나 96시간 이내 자신의 손에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그의 소설은 곧 가루가 되도록 비판받았습니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고 7통의 리뷰를 보냈는데 다시 좋은 평가를 얻었습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이 리뷰를 보았지만 그냥 버렸습니다. 결국 9일 후 그는 암살당했습니다. 기억해 주세요. 이 리뷰를 보내면 7년의 행운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3년의 불행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리뷰를 못 본 척하거나 댓글을 남기지 않아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7통입니다. 이 리뷰를 추천한 사람은 행운이 깃들 것입니다. 힘들겠지만 좋은 게 좋다고 생각하세요. 7년의 행운을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