γνῶθι σεαυτόν.
너 자신을 알라.
난네코
1. 일곱 편의 이야기
이야기는 서울의 느낌 좋은 카페에서 시작합니다. 만나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고 자기소개를 하고 박수를 치지요. 문학모임으로 만난 7명은 7가지 이야기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여러 인물이 이야기를 낭독하는 액자식 구성으로 유명한 소설은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지요. 첫번째 화자인 김태양은 식량에 대한 과학적 상상이 가득한 이야기를, 두번째 화자는 섬뜩한 적산가옥에서 펼쳐진 이야기를, 세번째 화자는 거식증에 걸린 여자 모델의 이야기를, 네번째 화자는 현실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섯번째 화자는 사람의 죽음보다 아파트 가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태(世態)를 이야기하며, 여섯번째 화자는 망해가는 작은 카페 사장의 시점에서 85퍼센트의 성공하지 못한 자영업자의 이야기를, 일곱번째 화자는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와 자식의 감동적인 가족애가 담긴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저는 여섯번째 화자가 이야기하는 망한 자영업자의 이야기가 크게 기억에 남고 재미있게 읽혔습니다. 여섯번째 화자의 이야기는 작가님께서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계신 생계적인 상황(?)이 투영된 이야기 같았습니다. 자영업에선 성공한 5퍼센트와 현행유지를 하는 10퍼센트와 망하는 85퍼센트가 있다는 구절은 실제로 경험한 사람이 아니라면 쓸 수가 없는 구절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당당하게 5퍼센트의 성공한 자영업자가 되겠노라고 기대하지만, 막상 시작해보면 95퍼센트의 자영업자가 폐업한다는 것은 피부로 와닿는 서술이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생계에 대한 압박이 들어오니, 자영업자를 동경하게 된다는 그 현실이 소름돋을 정도로 독자에게 와닿는 서술입니다. 대단한 성공을 거두기 위한 자영업이 아니라 공단에서 조그만 카페를 운영하는 게 목표였는데, 주변엔 이미 카페가 4군데나 있었습니다.
맛이 특별하지도, 가격이 혁신적이지도 않은 카페라면, 사장이 예쁜 카페가 가장 잘된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되버리지요. 손님들은 커피값이 500원이 오르면 크게 화를 냅니다. 브라질산 원두 가격이 오르면 커피 가격도 올려야 하는데, 그걸 손님들에게 매번 납득시키기가 힘들지요. 그러니, 예쁘게 생긴 알바생을 고용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러나 알바생은 카페 일에는 관심이 없고 커피 레시피를 훔치는 데만 집중을 하던 인간이었습니다. 사장으로서 7일 동안 민폐만 끼친(=사실상 레시피만 빼먹을 목적으로 취직한) 직원을 해고했는데 고용노동청에서 신고가 들어옵니다. 아끼던 컵을 박살내고, 레시피를 훔쳐가고, 손님들에게 불친절하게 굴던 폐급이라도 고용을 했다면 월급을 주어야 맞다고 합니다. 만약, 월급을 지불하지 않으면 형사처벌 가능성도 있다는 고용노동청 직원의 전화를 듣고 울며 겨자 먹기로 월급을 지불합니다.
사실, 카페에 손해만 끼쳤는데도 주인공은 ‘고용주’, ‘사장님’이기 때문에 직원을 뽑으면 월급을 줄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버티다가 버티지 못하여 카페는 폐업을 하게 됩니다. 가게를 정리하면서 에스프레소 머신 정리히야 하는데 비싼 기계를 공짜로 내어줘도 처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카페 테이블, 카페 의자, 선반, 조명 전부 공짜라도 못가져가는 짐이 되어버립니다. 주인공이 처음 카페를 차릴 때만 하더라도 열심히 발품팔아서 마련한 ‘희망’이었지만요. 그렇게 카페를 폐업한 사장님이 술집에서 소주를 마시지만, 손님이었던 아재가 갑자기 청혼하면서 들이댑니다. 주인공은 티비를 보며 노동자들이 시위를 통해 최저임금을 인상하며 ‘노동자의 대한 착취’에 대해서 열렬히 외치는 프로그램을 봅니다.
주인공은 왜 자신이 ‘사장’이라는 이유로 ‘착취’하는 악인이 되는 것일까. 깊이 고민합니다. 하루하루를 버티고 버티며 살았던 인생인데 왜 자신은 ‘약자’가 되지 못하는 것인지 목놓아 울면서 여섯번째 이야기 <자영업자>가 끝납니다. 항상 노동자의 입장에 처해있던 저로선 상당히 충격을 받은 에피소드였습니다. 사회가 만든 ‘나쁜부자’ 프레임에 갇혀있었기 때문에 고용주가 겪는 어려움에 대해선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5퍼센트와 현상유지를 하는 10퍼센트의 자영업자를 제외한 85퍼센트의 자영업자는 ‘을’의 입장에 처한다는 걸 상기할 수 있는 에피소드였습니다.
2. 이야기를 돌아보며
일곱 가지 이야기는 슬픈거북이 작가님이 보여주고 싶은 ‘소설’이면서 ‘작은 서울’이며 ‘SOS+을’입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가진 남녀 7인이 모여서 자기만에 생각이 담긴 문학 이야기를 하는 소모임이지요. 서울에서 주최하는 모임 같은 건 인스타그램만 뒤적거려도 찾기 쉽지요. 소설을 읽다가 가끔 말도 안되는 걸로 다투거나 소설 주제랑 맞지 않는 이야기가 나올 때가 있어서 읽다가 당황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일곱번째 이야기가 이 소설에 등장하는 7인의 이야기는 Save Our Souls(우리의 영혼을 구해달라)를 요청하는 ‘을’의 시점에서 이야기하는 이야기들입니다. 각 7편의 이야기가 사회적 약자성을 띤 주인공들의 풀어내는 상황입니다. 물론 이야기를 실제로 발화하는 화자가 정말로 사회적 약자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냥 작가 지망생이거나 평범한 사회인일 가능성이 높지요. 그러나, 7명의 화자가 이야기하는 이야기속의 주인공들은 결코 사회에서 사회적, 신체적, 또는 특정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주체를 가진 인물로 묘사되지 아니합니다. 7편의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힘, 권력, 재력, 능력 등이 강한 캐릭터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어떤 이야기는 공감을 받고, 어떤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선 논쟁의 중심이 될만한 것들입니다. 저 또한 논쟁이 될만한 소재에 대해서 원작자와 댓글로 전쟁(?)을 벌이기까지 했으니까요. 확실한 것은, 슬픈거북이 작가님의 작문력은 독자를 이야기로 끌어들이는 마법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작품에 대해서 길게 설명을 할 수 있는 경우가 흔하지 않아요.
저는 제 작품에 대해서 길게 말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국공립 도서관이나 작가 레지던시에서 제가 최종탈락한 이유가 어쩌면 ‘자기 작품을 긴 시간 동안 남들에게 제대로 설명할 능력이 되느냐?’라고 생각이 듭니다. 단순 요약본을 원하는 것이라면 챗지피티나 제미나이에 작가 이름이랑 작품 이름을 입력해서 ‘이 작가와 이 작품에 대해서 설명해줘’라고 하면 완성되니까요. 면접관들이 저에게 원했던 건 철학적인 깊이를 원하는 것이었단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문제는 철학적 깊이가 단기간에 완성되는 요인이 아니란 것이지요. 인생의 경험이 누적되어 응축되는 깊이란 말입니다. 연륜이나 사회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철학적 깊이요. 그런 점에선 저는 절대적인 시간면에서도, 상대적인 경험면에서도, 상당히 부족합니다.
그런 면에서, 슬픈거북이 작가님은 저에게 없는 철학적 깊이를 가지고 계십니다. 제 연령대에선 선뜻 꺼내기 어려운 주제들을 가져오셨습니다.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쉽게 꺼내기 어려운 논쟁거리들을 소설에서 꺼내셨습니다. 그리고, 각자 주인공들이 가진 약자성을 다면화합니다. 작품의 제목인 SOSeoul은 ‘소설’이면서 ‘작은 서울’이며 ‘SOS+을’ 뜻하는 다의적 의미라고 슬픈거북이 작가님께서 마지막편 작가의 말로 남기셨습니다. 또한, 작가님께선 타인에게 혐오나 그 어떤 불쾌감, 그리고 프레임을 드러내려고 만든 글이 아닙니다. 중간에 살짝 오해하실만한 대목은 있지만 소설의 주제를 담기 위한 장치일 뿐 그런 의도는 없습니다. 믿어주세요. (어려운 내용도 아니고, 다들 다 아실 거지만 노파심에 말씀올립니다.)라고 리뷰공모에 부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을 반복해서 읽어본 결과, 이 소설은 7명의 남녀가 작은 서울에서 소설을 이야기하는 문학모임을 통해 사회의 또다른 약자들인 ‘을’들을 보여주는 SOS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γνῶθι σεαυτόν.(너 자신을 알라.)는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격언이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저에게도 관통하여 깨달음은 주는 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여섯번째 자영업자 에피소드는 진짜 충격적이었습니다(positive). 항상 슬픈거북이 작가님의 글을 구독해서 읽는 독자로서 리뷰글을 쓸 자격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난네코 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