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리뷰는 비평가 흉내를 내 봤습니다. 저 나름대로 작법 이론을 공부했는데, 감걸족을 보고 어떤 깨달음이 있어 글로 남기고자 합니다. 이 리뷰는 단순해 보이지만, 리뷰의 대상이 되는 감걸족 외에
과 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젠체하며 쓰여있기 때문에 역할 수 있겠네요. 이런 긴 경고문과 주절거림에도 불구하고 괜찮겠다 싶으면 자 스크롤을 내려주세요.
엽편과 단편을 어떻게 구분할까요? 역시 분량이겠죠. 단편은 원고지 80~100매, 엽편은 30~50매 정도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소설은 왜 80매가 필요한 걸까요? 구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구조 이야기를 해 봅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극이 3막으로 이뤄져 있다고 말했죠.
1막에서 사건이 등장하고, 2막에서 전개가 돼서 3막에서 결론이 나오는 거죠.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사건이’ ‘이렇게’ ‘해결된다’
이걸 좀 더 분화하면 기승전결이나 5막 구조입니다.
‘사건이’ ‘이렇게 돼서’ ‘위험해졌어’ ‘뭔가 해버렸더니’ ‘결과가 이래’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이게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입니다.
물론 모든 단편이 이런 구조에 딱딱 맞아떨어지진 않습니다. 하지만 비교적 맞아떨어지는 단편이 있어 예시로 들고자 합니다.
단편이죠. 일단 분량부터가 228매니까요. 그럼 검은책의 구조를 볼까요?
검은책은 발달,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핵심 갈등은 이인자의 질투죠. 이 핵심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저주의 매뉴얼인 검은책을 손에 넣은 것이죠.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1막에서 2막으로 넘어가는 부분이죠. 저주한 후에는 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그렇지만 저주를 한 후에는 순조롭죠. 저주를 퍼붓고, 성과를 얻고의 반복. 저주 내용은 적당히 그럴싸합니다. 작가님은 자유게시판을 통해 적당히 짜깁기한 결과물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지만, 충분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전개 부분이고, 주인공이 이런 행위를 통해 본인의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걸 보여주는 게 목표니까요.
그리고 드디어 위기가 발생합니다. 바로 3회차 저주죠. 1, 2회차 저주와 3회차 저주의 결정적인 차이는 뭘까요? 바로 ‘지연’ 입니다. 전개 부분에서는 저주-효과, 저주-효과가 바로 일어납니다. 그렇지만 3회차는 위기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저주-‘지연’-그리고 결정적인 효과가 나오죠. 저주의 효과 또한 크지만, 지연이 있기에 그 효과는 더욱 크게 와닿습니다. 그리고 지연이 있다는 건 순조롭지 않다는 의미죠. 때문에 이 씬은 ‘위기’가 됩니다. 위기를 지난 다음에는 주인공 소희는 어떻게든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죠.
이제 절정 부분이죠. 모든 것을 후회하고 책을 태웁니다. 어설프게 사과도 하고요. 이 행위를 했기 때문에 정말로 돌이킬 수 없습니다. 3막이죠. 결말로 직행해야 합니다. 물론 검은책은 장르가 호러고, 우리는 이런 주인공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잘 알고 있죠. 이렇게 후회하지만 본인의 행동을 진정으로 뉘우치지 않기 때문에 처참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자유게시판에 검은책을 추천할 때 오소독스한 호러라고 짧게 평했습니다. 구조가 뚜렷하고, 소재 또한 전통적입니다. 갈등에 요소인 이인자의 질투도 흔한 소재고, 저주의 내용도 참신하기 보다는 축시의 인형에 못 박기 같은 평범한 것들이고, 결말에 치명적인 파국을 맞이할 거란것도 예측 가능하죠. 이렇게 파국을 맞을줄 몰랐을 뿐입니다. 이게 작가의 개성이겠죠. 기존에 것에서 한 발자국, 아니 반 발자국 정도의 변주.
호러에 익숙한 분이라면 더한 혹평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흔한 게 나쁜 건 아닙니다. 먹히던 것들의 조합이니까 잘 먹히죠. 깔끔하고 묵직합니다.
그러면 감걸족은요?
감걸족의 핵심 갈등은 뭔가요? ‘어떻게든 피드백이 받고 싶다’ 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건이 발생하죠. 서점에 책을 가져다 놓습니다. 그리고요? 바로 결과가 나와요. 리뷰를 받죠.
그렇기 때문에 감걸족은 엽편에서 그칩니다. 맨 처음으로 돌아갑시다.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는가. 이게 3막구조라고 말씀드렸죠. 감결족은 2막이에요. 사건이-해결됩니다. 리뷰를 받고 싶어서-리뷰를 받았죠. 더 할 이야기가 있을까요? 글쎄요. 어떤 이야기를 더 붙여도 사족처럼 느껴질 거 같습니다. 하지만 해결이 되었으니 완성된 이야기고요 분량이 더 나갈수 없으니 이건 엽편이죠.
감걸족에는 정련된 구조에서 나오는 카타르시스는 없습니다. 카타르시스는 위기와 절정 사이에 있는 그 낙차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구조에서 나오는 카타르시스가 없지만 감걸족이 나쁜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감걸족에 있는 건 바로 통찰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을 떠올려 보세요. 자신의 행위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싶다는 욕망은 보편적이고, 특히 저를 포함해 브릿G에 있는 분들은 더더욱 공감할 수 있는 소재죠. 따라서 주인공에게 깊게 공감할 수 있고, 그렇기에 ‘통찰’이 있는 엽편입니다.
자 그럼 다른 작가분 작품이지만,
를 보고 왜 저는 이걸 엽편이나 단편이 아니라 프롤로그라고 했을까요? 단순히 분량 때문에? 아닙니다. 구조 때문이에요. 감결족에는 최소한 해결이 있습니다. 여기에선 리뷰를 받고 싶어하는 어느 무명 작가의 고민이 있고, 리뷰를 받았지만 그건 진실된 리뷰가 아닐거라는 해결이 있죠. 반면 여기에는 사건만 있고 해결이 없어요.
물론 완성된 씬입니다. 이걸 엽편이 아니라고 할 이유는 없겠죠. 이 씬에서 해결은 딱 하나 있습니다. 비가 그친 거죠. 이게 핵심 갈등과 관련된 해결일까요? 이 이야기의 핵심 갈등이 정말 비 때문에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이 또한 좋은 엽편입니다. 그렇지만 너무 사건 의뢰를 받는 클리세였고 독자의 기대가 너무 커졌죠. 그렇기에 이건 좋은 프롤로그입니다. 엽편이 아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