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자를 믿지 못하겠다, 그런데 나는 다 읽었다! 그것도 재밌게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사라진 시간 (작가: 이태호,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23년 1월, 조회 45

글을 읽는 독자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를 따라간다. ‘화자’가 1인칭시점이라면 더하다. 그 혹은 그녀가 느끼는 대로, 보는 대로, 감각하는 대로 소설 속의 세상에 파고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 속 화자는 ‘신뢰할 수 없는 화자’다. 소설을 많이 읽던 시절에는 가끔 이러한 화자를 만난 적 있다. 독자 입장에선 혼란스럽다.

“화자를 신뢰할 수 없다”라는 것의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 그 소설 세계 전체를 믿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바로 그렇기에 매혹적이다. 수없이 헷갈리게 하는, 스스로도 뭐가 뭔지 모르는 화자를 따라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기존의 소설을 읽을 때와는 다른 감상이 남아서다. 이 소설 <사라진 시간>의 화자가 바로 그러하다.

소설의 주인공은 저녁 8시와 10시 사이의 ‘믿을 수 없는 간격’ 탓에 고통 받는다. 퇴근해서 밥을 다 먹고 나면 8시여야 맞는데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 10시가 되어 있다는 ‘의문’에서 시작하여 주인공은 점차 미쳐가고 종국에는 스스로를 믿지 못해 ‘타인’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 데 이른다. 문제는 이 주인공이 말하는 ‘선생님(정신과 의사보다 신뢰하며 온 마음을 다해 믿는 사람)’이 실존하는 사람인지조차 의문스럽다는 데 있다.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순수하게 궁금했다. 그 2시간 차이가 뭐 어쨌다는 건가. 서서히 읽어갈수록 소설 속에 빠져들고 있는 나를 느꼈다. 주인공이 미쳐가고 있는데 소설에서 멀어지는 게 아니라 더 깊이 파고들었다는 것은, 이 소설을 쓴 사람이 얼마나 성실하게 잘 썼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미치광이’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정상적인 사고’와 ‘일반적인 세계관’을 회복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장면을 디테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외려 주인공을 연민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미친다. 허나 이 미쳐가는 사람을 왜 봐야하는가 의문은 들지 않는다. 빠져들 뿐이다. 아마 ‘나’와 비슷한 지점이 있어서일 거다. 우리는 누구나 퇴근 이후 시간의 속도에 놀란다. 회사에선 그리도 가지 않던 시간이 혼자만의 공간으로 들어오면 너무도 빨리 가고, 놀랍게도 무언가를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바로 그 ‘일상’에서 시작하여 마지막까지 끌고 나간 작가의 문장력과 힘에 박수를 보낸다. 다만, 하나 아쉬웠던 건 분량이 짧아서 이 정도 선상으로 끝냈지만 조금 더 ‘장면화된 사건’이나 ‘에피소드’가 있으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만약 분량을 늘리게 된다면 그 측면도 고려해줬으면 한다. 더불어,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영화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엣 원스>가 아닌가 생각하며 읽었다. 나 역시 간만에 아주 즐겁게, 재미있게 봤던 영화기도 해서 반가웠다. 지금의 리뷰도 어쩌면 상당히 두서없게 읽힐지도 모르겠다. 그렇대도, 아니래도 이 소설을 함께 읽기를 다수에게 권한다. 분량 59매여서 수루룩 읽을 수 있는데 읽고 난 뒤에는 우리가 ‘지각’하고 있던 ‘일상’이란 세상이 어쩐지 비틀리는 듯한 기분에 빠져들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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