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의 정체 공모(비평)

대상작품: 그것 (작가: 루카 윤, 작품정보)
리뷰어: 미스킴, 2시간 전, 조회 7

그것이 설계한 거대한 함정
120장으로 구성되어있지만 각 장마다 짧은 내용으로 담겨있어 읽기에 큰 부담이 되진 않았다. 종로의 탐정 사무소, 실종된 개 한마리를 찾는 일상적인 탐정물인 줄 알았다가 작가가 설계한 ‘서사의 확장성’에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은 지극히 건조하게 시작한다. 하진우의 일상은 우리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그가 정체불명의 금속조각을 발견하기 시작하면서 소설의 장르는 급변한다. 작가는 소리를 단순히 효과음으로 쓰지 않는다. 그것은 일종의 ‘우주적 이정표’다. 오직 선택된 감각을 가진 자만이 들을 수 있는 이 소리는, 나를 종로 골목에서 이집트의 뜨거운 사막을 거쳐, 남극의 종착지로 끌어 당겼다.

피라미드 내부의 숨 막하는 공명과 빛의 활용
이 소설은 이집트와 남극의 에피소드로 나뉜다. 그 중 진정한 백미는 단연 이집트 에피소드다. 나는 많은 고고학 스릴러를 봐왔지만, 이토록 독창적으로 시각과 청각을 활용한 묘사는 거의 없었다. 작가는 대피라미드를 단순한 유적이 아닌, ‘거대한 공명 장치’로 재해석한다. 시리우스와 오리온의 정렬, 그리고 대회랑과 전실을 거치는 그 경로를 따라 피라미드 내부 ‘왕의 방’에서 터져 나오는 주파수의 묘사는 압도적이다. 그 뒤로 빛의 통로를 지난 주인공 일행이 어둠 속에서 마주한 것은 고대의 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가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될,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작동하고 있었던 ‘지구적 규모의 시스템’이었다. 어떤 결말일지 궁금해하며 남극 에피소드까지 달려가며 마지막장을 읽었지만, 결말은 그곳에 없었다. 그리고 이 소설이 3부작으로 기획된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하진우와 같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고대 예언과 현대 과학의 기묘한 동거
작가는 한국의 ‘격암유록’과 이집트의 별자리 체계를 아주 영리하게 엮어낸다. 동양의 예언서와 서양의 고대 문명이 결국 하나의 ‘좌표’를 향하고 있다는 설정은, 이 소설이 단순한 공상과학이 아닌 ‘인류사적 미스터리’임을 입증한다. 1부에서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다. 인류의 역사 곳곳에 이 ‘그것’의 흔적이 암호처럼 새겨져 있다는 것. 작가는 글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 암호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며 나를 지적 유희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남극의 문, “밀어라”라는 단 하나의 명령
이집트에서의 사투(?) 끝에 일행이 도달한 최종 목적지, 남극의 얼음벽. 120장의 마지막에서 하진우의 귀에 들리는 “밀어라”라는 명령은, 이 소설이 가진 가장 강력한 클리프행어다. 이제 막 문이 열렸는데 1부가 끝났다. 작가는 나에게 ‘그것’의 정체에 대해 단 한 마디의 설명도 친절하게 내놓지 않는다. 다만 그 문 너머에 인류의 상상을 초월하는 무언가가 있음을 확신시키며 펜을 놓는다.

작가는 나에게 묻는다.
피라미드와 남극 안에서 당신이 들은 것은 신의 목소리인가, 아니면 거대 시스템의 구동음인가? 나에게 1부는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2부가 나온다면 나는 가장 먼저 그것을 읽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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