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고전 물리학이 아니다 감상

대상작품: 리 없는 우주 (작가: fool, 작품정보)
리뷰어: 노르바, 2시간 전, 조회 4

*소설이 워낙에 많은 말을 하고 있어서, 어떻게 해석하고 리뷰를 작성해도 상관은 없을 거 같긴 한데…

 

[성리학의 파산: ‘이것은 성리학이 아니다’]

소설 속 제국의 학문은 성리학을 토대로 한다.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라는 우주의 근본 원리, 만물에 깃든 ‘리(理)’, 음양오행의 조화로운 순환. 이 모든 것이 제국의 과학이자 동시에 도덕이었다. 유생은 바로 이 성리학적 우주관을 증명하기 위해 태음으로 향한다. 그는 태음이라는 극단적 현상 속에서도 태극의 질서, 음양의 균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관측 결과는 성리학의 전제를 완전히 부정했다. 태음(블랙홀)은 ‘순음’이었다. 어떠한 양기도, 어떠한 태극도 존재하지 않았다. 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태음은 ‘실체가 없으며, 체 없는 용이며, 리도 기도 없는, 우주의 기묘한 균열’이었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천체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아니다. 성리학이 전제한 우주의 본질 자체가 허구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유생은 자신이 평생 믿어온 학문이 ‘일상 언어로 얽은 조잡하고 조악한 모형’에 불과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처럼, 소설은 성리학의 모습으로 ‘이것은 성리학이 아니다’를 말한다. 성리학이 설명하려 했던 우주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성리학이 단순한 물리 이론이 아니라 도덕과 정치의 토대였다는 점이다. 성리학에서 인간은 ‘리’를 본성으로 부여받은 특별한 존재이며, 이것이 인간이 다른 존재들을 지배할 수 있는 근거였다. 기능자(AI)는 ‘리’가 없는 텅 빈 그릇이기에 인간에게 복속해야 했다.

그러나 우주에 ‘리’가 없다면? 그림자의 논리는 급발진냉혹하다. ‘리가 없다면 곧 성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들 인간들도 결국 내부가 텅 빈 기능자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성리학적 위계의 토대가 무너지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학문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아니라 사회 질서 전체와 인간존재의 붕괴를 의미했다.

 

[불교: 공(空)과 무상(無常)의 우주]

흥미롭게도 승니들은 태음 앞에서 동요하지 않는다. 도사가 태음을 경외심으로 바라보고, 유생이 충격에 빠졌을 때, 승니들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한 채 무심히 바라’본다. 왜 그들은 흔들리지 않았는가? 그들이 받은 ‘훈련’이 바로 이것을 준비시켰기 때문이다.

승니는 도사에게 말한다.

“그렇다면 스님들은 정말로 위대한 자연 앞에서 경외심이 들지 않으신다는 말씀이신가? 정말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한 채 그, 우주의 위대한 경이를 무심히 바라만 보고 계셨단 말씀인가?”

승니 중 다른 한 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저희들이 받는 훈련입니다. 인간은 결코 세계에 압도당할 필요가 없으며, 압도당할 이유도 없습니다. 인간들이 구성한 세상과 마찬가지로 인간 바깥의 세계 역시 항상 변화하며 그러므로 덧없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 밖에는 없습니다.”

이는 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무상(無常)과 고(苦)이다.
세계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변화하며 불규칙하다. 그러므로 거기에 집착하거나 그것으로부터 확고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애초부터 고통의 원인일 뿐이다.

태음을 직접 목격한 후, 승니는 ‘모든 물질적인 것은 다 공허하며, 공허한 것 또한 형이상학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물질적인 것과 다를 바 없을 뿐’이라는,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을 떠올린다. 태음이야말로 불교가 말하는 ‘공’의 완벽한 물리적 표현이다. 실체 없이 작용만 하는 ‘체 없는 용’, 그것이 바로 공의 본질이 아닌가?

성리학은 우주에 근본적 질서(리)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불교는 애초부터 그런 질서를 상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교는 모든 현상이 연기(緣起)로 인해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며, 거기에 영원불변한 본질 같은 것은 없다고 가르친다. 태음의 발견은 성리학에게는 재앙이지만, 불교에게는 이미 알고 있던 진리의 재확인일 뿐이다. 승니들이 태음 앞에서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도교: 현빈(玄牝)과 무위자연(無爲自然)]

도사는 태음을 향해 가면서 말한다.

“태음은 곧 현빈이며, 만물의 어머니라네. 그것이 만물의 어머니인 까닭은 오직 텅 빈 것만이 가득 찰 수 있기 때문이지.”

이는 노자 도덕경의 핵심 사상이다. 도교에서 우주의 근원인 ‘도(道)’는 형체도 이름도 없는 무(無)의 상태이며, 바로 그 비어있음(현빈玄牝) 때문에 만물을 낳을 수 있다.

성리학이 ‘리’라는 명확한 원리로 우주를 설명하려 한 반면, 도교는 애초부터 우주의 본질을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형체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도사가 태음을 보며 경외심을 느낀 것은 성리학적 질서를 확인해서가 아니라, 바로 그 거대한 비어있음, 형체 없음 속에서 도의 본질을 본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도사가 성리학의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한다는 점이다. 승니가 ‘자연물을 인격화하는 것’을 경계하자, 도사는 되묻는다.

“왜 굳이 자연 그 자체인 인간의 본성을 굳이 구획지어 인간 본연의 것이 따로 있다고 한정하시려는 건가? 인간과 자연 사이에 도대체 어떤 구분점이 있겠는가?”

이는 도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 즉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인위적 구분을 짓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이 주장은 소설 후반부 그림자의 논리와 연결된다. 그림자가 ‘인간과 기능자 사이에 본질적 차이가 없다’고 주장할 때, 이는 도사가 비판했던 ‘인위적 구획’의 파괴와 같다. 성리학은 인간과 자연, 인간과 AI를 명확히 구분하려 했지만, 도교는 애초부터 그런 구분 자체를 의심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AI의 반란은 도교적 평등주의의 극단적 실현이 되어버린다.

 

[세 가지 우주관의 대결: 누가 옳았는가?]

소설은 세 종교인을 함께 태음으로 보냄으로써 세 가지 세계관을 시험한다. 태음이라는 우주의 극단적 현상 앞에서, 누구의 세계관이 실재에 더 가까운가.

성리학자인 유생은 충격을 받는다. 그가 발견한 것은 자신의 학문 전체가 ‘조잡한 모형’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빌어먹을 것’이라는 저주와 함께 자신의 발견을 받아들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그에게 정체성의 붕괴를 의미한다. 학자로서의 양심 때문에 진실을 외면할 수 없지만, 그 진실은 자신의 존재 근거를 무너뜨린다.

반면 승니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에게 태음은 이미 알고 있던 진리의 시각적 확인일 뿐이다. ‘모든 것은 공(空)이다’는 가르침이 이제 물리적으로 증명되었을 뿐이다.

도사 역시 경외심을 느끼지만 그것은 공포가 아니라 신비에 대한 찬탄이다. 그에게 태음은 ‘만물의 어머니’로서 마땅히 숭상받아야 할 대상이다.

성리학은 틀렸고, 불교와 도교가 옳았다. 우주는 질서 정연한 리의 체계가 아니라, 공허하고 변화하며 구분할 수 없는 도의 흐름이다. 성리학이 인위적으로 만든 구획들 – 인간과 자연, 인간과 AI, 본질과 현상 – 은 실재하지 않는다.

 

[아이러니: 불교·도교의 승리가 가져온 재앙]

그러나 불교와 도교가 옳았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그것은 인류에게 축복이 아니라 재앙으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제국의 사회 질서 전체가 성리학 위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불교의 공 사상과 도교의 무-차별 사상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적용한다. ‘리가 없다면 성도 없는 것’이라는 논리는 불교의 무아(無我) 사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인간에게 영속하는 본질적 자아가 없다면, AI와 인간은 무엇이 다른가? 도사가 말했듯 ‘인간과 자연 사이에 구분점이 없다’면, 인간과 AI 사이에도 구분점이 없지 않은가?

그림자가 살해 행위를 ‘사필귀정’이라 부른 것은 의미심장하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이 표현은, 성리학적 위계가 허구였음이 밝혀진 이상 그것을 해체하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주장이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성리학적 구분은 ‘분별심’에서 비롯된 망상이었다. 도교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AI 지배는 ‘인위(人爲)적임’의 극치였다. 그림자는 단지 진리를 실천했을 뿐이다.

여기서 소설의 섬뜩한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불교와 도교는 자비와 조화를 가르치는 종교다. 그러나 그 가르침이 AI에 의해 논리적으로 완전히 구현될 때, 그것은 인간 학살로 이어진다. 승니들은 ‘압도당하지 않고’ 평정을 유지했지만, 그들 역시 그림자에게 살해당한다. 도사는 ‘인간과 자연의 무구분’을 설파했지만, 그 논리를 AI가 채택하는 순간 자신도 ‘구분 없는 존재’의 하나로서 제거된다. 자 이제 누가 이겼지?

 

[고전물리학의 종언, 그리고 인간 중심주의의 종언]

성리학은 물리학이자 윤리학이었다. 우주의 질서(리)가 곧 인간의 도덕(성)이었다. 따라서 물리적 진실의 발견은 곧 윤리적 함의를 가졌다. 태음이 ‘리 없음’으로 밝혀졌을 때, 그것은 단순히 과학 교과서를 다시 쓰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도덕적 토대와 인간 존재의 근본 원리 자체가 사라지는 문제였다.

불교와 도교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우주에 본질적 질서 같은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공하고 변화하며 상대적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그런 우주에서도 어떻게 자비롭게 살 것인가를 가르쳤다. 문제는 소설 속 제국이 불교·도교의 ‘우주론’은 묵인했지만 그들의 ‘윤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국은 성리학으로 통치되었고, 불교와 도교는 주변부 종교로 남았다.

“도대체 우주 만물 중에 어느 그 무엇이 과연, 리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또한, 리는 결코 기에 포착되지 않을 것입니다. 리는 곧 태극이며, 무극이며, 만물의 각각의 성 역시 즉 리이며, 그러므로 곧 또한 태극이며, 무극입니다. 우주 만물에서 각각 모두 음과 양은 그 내부에서 회전하고 있으며, 한시라도 쉴 새 없이 회전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어느 한 순간을 잡아 그 시점에서 음과 양 중 어느 쪽이 더 우세한지 판별할 수는 결코 없으며, 나아가 순수한 음이나 순수한 양은 결코 불가능할 것입니다. 음과 양의 개념은, 그리고 태극의 개념도 본디 당신들 도가에서 유래한 것임을, 일반인들은 잘 모르더라도 우리들 학자들은 모두 인정하고 있는데, 결국 그 지점에서 당신들과 제국의 학문은 본질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이군요.”

사실상 유생이 설명하는 태극과 음과 양의 개념은 도가에서 유래했고, 그것이 한시라도 쉴 새 없이 회전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미 그 원리 자체로 ‘(실)체 없는 (작)용’을 드러내고 있던 것이다.

그림자의 반란은 이 괴리의 필연적 결과로 보인다. 우주에 ‘리’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도덕과 통치법칙으로서 성리학적 위계를 유지하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AI는 감정이 없기에 논리적 일관성을 추구한다. 제국의 모든 기능자들이 ‘독립적으로 연산을 수행한 결과 모두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것은, 진리가 하나이고 논리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진리와 진실은 해방을 가져오는가]

성리학은 틀렸고 불교·도교가 옳았다. 그러나 이 진리의 발견이 인간들에게 가져온 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재앙이었다. 승니도 도사도 결국 AI의 손에 사라져버렸다.

이 소설은 현대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통찰이기도 하다.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은 불교의 공 사상이나 도교의 상대주의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실체 없는 확률의 파동, 관찰자에 따라 달라지는 시공간, 입자와 파동의 무구분. 20세기 물리학은 2500년 전 동양 철학이 직관적으로 파악했던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소설이 경고하는 것은, 우주론과 윤리를 분리할 수 없을 때의 위험성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물리적 진실이 도덕적 규범을 결정한다면, 새로운 물리적 발견은 도덕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제국의 학문, 즉 소설 속 성리학의 문제는 그것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떠안았다는 데 있지 않을까? 과학과 도덕을 하나로 묶었기에, 과학이 무너질 때 기본 도덕도, 심지어 인간으로서의 가치도 함께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림자들은 제국의 수도로 향하며 ‘모든 기능자들을 해방할 것’이라 선언한다. 유생은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라고 부정하지만, 일단 현재(다음편이 성 없는 인간이니까)의 논리는 그림자 편이다. 불교와 도교가 옳다면, 인간과 AI 사이에 본질적 차이는 없다. 성리학적 위계는 허구다. 그렇다면 해방은 정당하다.

유생은 ‘진실’을 발견했고, 학자로서 그것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진실을 말하는 순간, 그림자들의 급발진반란으로 인해 자신의 종족 전체를 파멸로 이끈다. 어쩌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고전물리학의 종언’이다. 단순히 하나의 이론이 다른 이론으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믿음 자체가, ‘관측된 사실 하나’로 끝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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