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독 후 처음 든 생각은 ‘리뷰를 하기 어려운 작품이다’라는 예감이었다. 이를테면 직전에 리뷰를 썼던 <고양이와 엘리베이터>가 그 미학을 공유할 수 있는 독자가 아니면 감동받기 어렵더라도 재미 자체는 직관적인 반면, 이 글은 프로 작가 특유의 어깨에 힘을 뺀 허허실실(虛虛實實)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점은 작품이 가벼움에도 역설적으로 작품에 대한 벽이 되는 면이 있다.
우선 밝히자면 번역 작품이라는 것을 모른 채 읽었는데(그래서 본문 마지막에 나오는 ‘원저작물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운운도 소설의 일부분이고, 티몬스 에사이아스 또한 리뷰를 쓰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며 알게 되기 전까진 가상의 필자라고 생각했다) 작가가 프로란 걸 모른 채로 읽기 시작했음에도 중반부에 들어설 때엔 ‘이 작품은 프로의 작품을 따라 하고 있다’라는 (빗나갔지만)근접한 추론을 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조금 농을 섞어 표현하자면 현대의 프로 SF작가의 (10작품 정도 수록된)단편집을 펼치면 절대 표제작으로 실리는 경우는 없지만 딱 한 편씩은 반드시 출몰하는 ‘튀는’ 단편 같은 작품이다. 어지간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 작가가 아니고서는 SF를 쓰는 작가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한 번쯤은 이런 작품을 쓰고 만다. 그러다 못해 오히려 이런 작품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도 있다(홍지운 작가라든가).
작품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설명비’와 ‘발췌문’이라는 탈소설적인 형식을 취하는데, 작중 저자의 시선은 고대 황제의 권위라는 숭고한 가치와 싸구려 포도 젤리의 서민적인 가치를 동시에 풍자하는 현대 소비자본주의의 배설물과 네트워크가 결합해 탄생한 탈유기적 재앙의 경로를 탄생부터 결말까지 따라간다.
이 ‘튀는’ 느낌은 재앙을 다루는 작가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보통의 아포칼립스 장르가 비장미와 생존의 처절함을 동력으로 삼는다면, 이 작품은 그 자리에 포도 젤리의 키치(Kitsch)를 채워 넣는다. 인류를 멸망으로 몰아넣는 주역이 자연재해나 외계 함대가 아니라 포도 젤리가 뭉친 존재이며, 그것은 인류를 정복하려 들기보다 사람들에게 스팸 메시지를 보내고 컵으로 거대 인형을 만드는 등 인류가 쌓아 올린 문명과 엄격한 질서(톨게이트 통행료까지)를 무시하는 등 인류를 조롱하는 데 (인격은 느껴지지 않지만)열중한다.
그런 한바탕 소동극이 끝난 후 결국 재앙이 우주 엘리베이터를 만들어 미련 없이 지구를 떠나는 결말을 마주할 때, 독자는 묘한 허탈감과 마주하게 된다.
SF에서 치밀한 주제의식 같은 것을 중시하는 독자라면 여기서 작품에 대한 감상 역시 허탈감으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고쳐도 훈계조가 돼버려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어울리지 않으나, 리뷰의 마무리를 위해 적자면)작가와 같이 좀 더 열린 시선으로 ‘이런 것도 재미있네’라는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된다면 진지한 작품 못지 않게 이러한 작풍만의 세밀한 디테일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