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아를 위한 파국은 없다. 공모(비평)

대상작품: 빛의 심장, 어둠의 피 (작가: 마이너감성, 작품정보)
리뷰어: 나르디즐라, 5시간 전, 조회 9

1.

이 리뷰는 2부까지 완독한 후 작성된 글입니다. 그리고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

정통 판타지의 기준이란 무엇일까요. 일차적으로 세계관을 짚자면 가상의 서양 봉건 중세 사회를 구성하는 글들을 지칭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상의 이야기인 까닭은 작품 내 통용되는 마법사나 기사들의 존재가 현실적인 중세에서는 있을 리 없기에 그렇습니다. 소설에서도 마법사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마법사라는 존재는 기존의 여러 판타지 소설에서 다뤄지는 마법사와는 다소 상이한 부분이 있습니다. 마법을 쓰면 쓸수록 생명에 위협을 느낀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자체가 완전히 독창적이다라고 말하기는 어렵긴 합니다. 무언가를 대가로 이능을 쓸 수 있는 내러티브는 의외로 여러군데에서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대표적으로는 흑마술이 있겠네요. 생명과 피, 혹은 목숨을 대가로 강력한 이능을 발휘하는 구조는 위의 소설의 마법사와 구조적으로는 흡사합니다. 다만 이쪽의 마법사들이 좀 더 고귀한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현실에서 없었던 것들을 허구적 상상력으로 불러내어 이야기에 담아내는 걸 우리는 판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개의 정통이라고 붙은 판타지는 가상의 중세 유럽을 표방하기도 합니다.

근데 이런 판타지에 ‘정통’이라는 접두사가 붙는다면, 기존의 판타지들과 어떤 차별점을 갖는 걸까요? 25년도에서도 판타지 소설은 활발하게 창작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웹소설이 있죠. 웹소설에서의 판타지 소설은 주인공의 모험 서사를 중심으로 끝없이 강해지며 결국 신화적인 존재에 이르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그 중심에는 2~3세대 판타지의 성격을 흡수하여 다소 게임적인 면도 있고, 사이다적인 부분만을 추구하는 부분도 있고, 주인공의 강함에 이입하여 길게 몰두 할 수 있는 구조를 갖습니다. 또한 문체는 한 호흡에 읽을 수 있게 문장의 호흡이 짧은 편입니다. 이러한 기준점을 중심으로 ‘정통’ 판타지적인 부분을 포착해보려 합니다.

 

3.

마이너 감성님의 소설 「빛의 심장, 어둠의 피」 소설은 모험 내러티브를 지닌다고 보기엔 어렵습니다. 물론 3인방이 비밀스러운 섬에 도착하여 무언가를 조사하고 실력을 키워왔던 것을 중심으로 풀어나갔다면 모험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짧막하게 절단되어 시작과 끝만 묘사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중심축을 시안의 고약한 수술에 의해 남게 되었던 르네를 중심으로 풀어나갑니다.

르네는 이 소설의 탕아이자 황녀입니다. 탕아이기에 왕실에 소속되기를 꺼려하고 마법사로서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희망합니다. 하지만 왕인 아버지에 의해 바람 잘 날은 없는 듯 합니다. 르네는 그렇게 왕실의 일원이면서 왕실에 소속되지 못한 채 왕실을 관찰하는 시선의 역할을 부여 받습니다. 그리고 점진적으로 왕실의 파국에 영향을 받기 시작하죠.

그렇게 핵심이 되는 소설의 내러티브는 왕실의 안에서 이뤄집니다. 의심이 많고 강력한 왕권을 추구하려 무리한 일까지 벌이는 아버지 카이저를 중심으로 두 아들의 갈등과 신하들의 암투. 반란에 이르는 상황 속에서 그것을 종용하는 인물까지.  그렇기에 이 소설은 일종의 정치 장르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모험 서사는 주인공이 강해지는 과정을 보여주며 직관적으로 재미를 표현합니다. 그러나 정치 소설은 이와 성격이 다릅니다. 역사 소설이자 정치 소설은 치밀하게 짜여진 각본 아래에 독자가 그 과정을 따라가며 쾌감을 느끼게 끔 안배 해야 합니다. 그런 말도 있죠. 작품의 천재인 캐릭터는 작가의 지능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이런 말에 따르면 정치 소설의 안배는 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세계의 창조자이자 관찰자이자 운명의 개척자입니다. 그래서 해결을 먼저 정리한 후, 문제를 도출하는 방식으로 한다면 만들어진 천재를 꾸며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정치 암투는 웹소설의 판타지와 다소 차이를 보입니다. 웹소설에서 정치 암투가 없다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웹소설에서는 이런 암투의 적대자들을 주인공 성장의 비료로 씁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의 정치는 각각의 인물들의 욕망을 묘사함으로써 시작합니다.  그들의 욕망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며, 무게의 경중 역시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오직 망국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테마 속에서 위화감 없이 드러날 뿐입니다.

 

4.

여기서 서사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어보겠습니다. 웹소설에서의 서사는 거대 서사라고 보기엔 어렵습니다. 단편적으로 클리프행어를 위시한 에피소드들이 각각의 연결성과 확장성을 갖고 흘러가게 됩니다. 그리하여 소설의 내용은 해시태그처럼 분화되고 독자는 그 파편화된 부분들 속에서 마음에 드는 것들을 소비합니다. 그렇기에 웹소설은 소장르 군으로 구분되어 판매됩니다.독자는 좋아하는 장르의 문법과 방식을 사랑하며 그 외부로 벗어나는 것에 그리 너그럽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 캐릭터에게 환호하고 서사는 그를 받쳐주는 훌륭한 조연이 될 뿐입니다.

하지만 마이너 감성님의 소설 「빛의 심장, 어둠의 피」소설에서는 이런 서사적 방식과는 다르게 좀 더 거대한 서사적 흐름을 묘사합니다. 물론 이것이 성공적으로 이뤄진건지 셈해보는 것은 시기상조일 것입니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소설에서의 흐름이 투-트랙으로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이 투 트랙 전략을 통해 작가님은 외부적 시선과 내부적 시선을 교차함으로써 독자에게 미묘한 차이를 주지 시킵니다. 이 미묘한 차이는 아마도, 권력에 대한 묘사겠지요. 가진 사람은 더없이 갖고 싶은 것이고 필요 없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쓸모없는 것이 권력입니다. 이 양가성 속에서 권력은 아이러니가 되어 보다 파국이 명징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렇게 섬에서 무언가를 찾는다는 떡밥, 망국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알력 다툼 등. 이는 하나의 거대 서사로 이어지며 파편화해 소비하기는 어렵게 구성됩니다. 물론 이는 단점이 아닙니다. 이런 서사적 흐름을 명징하게 직조해낸다는 점에서 소설은 장점을 갖습니다. 그리하여 저마다의 욕망이 발현되고 싸우는 과정 속에서 다소 군상극적인 면모도 보이게 됩니다.

 

5.

게임이라는 측면에서 소설은 웹소설은 게임의 성장 구조를 차용하여 서사를 전개합니다. 주인공은 퀘스트를 받고 그것을 성공시켜 보상을 얻습니다. 재미를 위해서라면 ‘퀘스트가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주인공이라면 당연히 해결할 것이다’ 정도의 흐름을 반영하여 위기를 통한 긴장감을 고조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설 「빛의 심장, 어둠의 피」에서 위기는 개인과 개인 간의 충돌이 발생할 때, 그것이 극단으로 치달을 지 모른다는 긴장감으로부터 기인합니다. 개인과 개인은 점차 집단과 집단 간의 대결로 비화하며 점차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갑니다. 이 과정은 사이다라기 보다는 갈등을 통한 극적 긴장을 표현하는 데 주력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정통 판타지라는 단어로 돌아와 봅시다. 정통 판타지라고 함은 대개 1세대 판타지 소설의 흐름을 잇는다는 뜻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라고 1세대 판타지 소설과 이후 웹소설 시대의 판타지 소설의 차이는 문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웹소설은 가볍게 읽기 좋은 형식으로 발전해나가며 점차 한 줄 많아야 두 세줄 문장을 묘사하는 데 사용합니다. 그러나 1세대 판타지의 경우 보통의 경우 기존의 문단 문학과 크게 문장적인 부분에서 다름을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정통 판타지 소설이 추구하는 문장은 상황에 대해 건조하게 묘사하기보다 좀 더 표현의 영역에서 다채로움을 보여준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정통 판타지 소설의 문체는 다양한 인물들의 감정을 묘사하는데 보다 장점을 갖습니다.

 

6.

이렇게 소설의 주제 문체 구성을 비교하며 살펴보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장르적 차이에 대한 설명이 길어진 것 같아 송구하네요. 소설은 전반적으로 아직 기와 승 영역에서 멈춰 나아가길 기다리는 중인 것 같습니다. 르네는 과연 어떻게 왕실의 풍파에 맞서 싸울까요. 섬에 있던 비밀은 무엇이구요. 아서의 쿠데타는 성공할까요.

그 결말이 어떻든 간에 소설이 흥미로운 발자취를 찍기 시작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쓰시길 기원합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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