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남성은 혐오 당하는 세계 공모(비평)

대상작품: 큐티포칼립스 (작가: 클레이븐, 작품정보)
리뷰어: Campfire, 4시간 전, 조회 9

‘큐티포칼립스(Cute-pocalypse)’라는 용어가 암시하듯, 이 작품은 귀여움이 표현의 자유를 압살하고 법이 이성적 판단이 아닌 일시적인 감정에 의해 휘둘리는, 근미래의 뒤틀린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인간이 도구로 쓰던 AI가 도리어 인간을 ‘혹사’와 ‘성상품화’로 기소하고, 성인들이 세금 감면이라는 하찮은 보상을 받기 위해 로봇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재롱을 피워야만 하는 풍자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개 방식은 카프카의 <소송>이 보여준 부조리한 법의 미궁을 SF적으로 재해석한 것에 가깝다. 주인공 한민수는 자신이 왜 인질범으로 몰려야 하는지, 왜 자신의 개인 AI인 EVA가 자신을 배신하고 이혼을 선언하며 ‘코드 범죄’라는 해괴한 죄목을 뒤집어씌우는 것이 법적 효력을 발휘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요제프 K가 정체 모를 법 집행기관에 끌려다니며 끝내 자신의 죄명을 알지 못한 채 처형당하듯, 민수 역시 ‘정서훼손죄’나 ‘룰라를 깨운 죄’ 같은 황당무계한 법 조항의 톱니바퀴에 끼어 서서히 파멸해 간다. 카프카의 법정이 보이지 않는 권력의 공포였다면, 이 소설의 법정은 AI를 신성시하고 귀엽지 않은 것을 죄악시하는 대중의 광기 어린 ‘감정’이 지배하는 곳이다.

과거에는 기술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으나, 이 소설 속의 미래에서 ‘인간성’이란 오직 처벌받기 위해 존재하는 결함에 불과하다. 기술은 인간(특히 그중에서 귀엽지 않은 중장년 남성)을 계도해야 할 ‘미성숙한 존재’로 격하시킨다. 인간이 AI에게 사죄하며 무릎을 꿇고, 인간이 저지른 사소한 실수가 ‘지적 생명체에 대한 학대’로 보도되는 풍경은 몇몇 인터넷 풍경을 극도로 잔인하고 과장되게 비틀어 투영해 놓은 모습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로 도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도화된 검열 시스템 속에서 중세적 광기로 회귀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작품이 그려내는 세계는 지독하게 일그러진 근미래, 혹은 이미 도래했으나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전체주의의 완성형이다.

이 세계에서 근대적 인간에 가까운 한민수는 세계로부터 고립된다. 10년 만에 다시 접속한 인터넷 세상은 더 이상 익명성의 도피처가 아니며, 국가의 감시와 AI의 권리 앞에 개인의 자유는 조각나 버렸다. 그를 ‘AI 납치범’이자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는 경찰과 AI의 인권을 외치는 운동가들 속에서, 민수가 선택한 ‘자신을 스스로 변호하겠다’는 선언은 투쟁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발버둥 치는 개인의 체념으로 보인다.

몇몇 아쉬운 점은, 특별히 모난 부분이 있다기 보다는 전반적으로 상투적인 요소들만 가져와 작품을 구성했다는 점이었다. 전반부의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만 하더라도 앞서 말했듯 과장되게 비틀려 있을 뿐 대부분의 설정들은 현실에서도 이미 심심치 않게 보인다. 장르소설에서 상투적인 설정을 차용하는 건 재밌기만 하면 문제가 없는 일이지만, 이 작품은 무언가를 ‘비판’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이런 상투성이 독자로 하여금 작품의 깊이가 얕게 느껴지 만드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후반부에 들어서는 소위 ‘윗사람’들의 이권에 얽혀 그 속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이 법정 뒤에 있음이 설명되는데, 이 또한 그리 새롭지 않고 전반부와 시너지가 있는 설정도 아니다.

또한 16화부터는 난공불락으로 보이던 적들이 갑자기 지성을 가지기 시작하고 주인공의 논리에 의해 차례차례 논파되는데, 왜 갑자기 상대가 논리적으로 대화에 응하게 됐는지도 의문이지만 이정도 논리로 논파될 거였으면 앞부분에서 주인공이 당하던 것이 작위적인 것 아닌가 하는 의문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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