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시아의 마법사] 리뷰 – 멸망한 나라에서 희망을 부르다.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메르시아의 마법사 (작가: 김성일, 작품정보)
리뷰어: 애스디, 17년 8월, 조회 224

개인적인 감상 위주의 리뷰입니다.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돼 있습니다.

 

1. 담백하고 묵직한 이야기

[메르시아의 마법사]는 독특한 판타지 소설입니다. 솔직히 취향을 많이 탈 거라고 봐요. 일단 대중적으로 정형화된 판타지 장르의 클리셰에 기대지 않습니다. 작가가 구상한 환상세계의 흥미로운 면면을 과시하지도 않고요. 간결한 하드보일드 문체도 담백한 인상을 더해줍니다. 국내에선 비슷한 작가나 소설이 떠오르지 않고요. 굳이 꼽자면 [어스시의 마법사]나 [끝 없는 이야기]에 가까운 인상인데, 그렇게 동화풍이거나 추상적인 것만도 아닙니다. 독특해요.

대중적인 모험소설이나 영웅담으로서 판타지 소설을 찾는다면, 그 기대와는 어긋나는 작품입니다. 전작 [메르시아의 별]은 아를란드의 공주 로란을 위시해 영웅에 가까운 주인공에 활극도 이어지고 결말도 하이 판타지에 가까운 편입니다. 하지만 [메르시아의 별]이 희망과 미래를 노래했다면, [메르시아의 마법사]는 좀더 과거와 회한, 비극에 관한 이야기에요. 이런 무거운 분위기도 [메르시아의 마법사]의 독특한 매력이자 진입장벽(?)일 것 같습니다.

 

2. 주인공들

이런 무거운 분위기는 시점인물인 아리엔, 유마, 에메르에게서도 드러납니다. 이야기의 중심을 끌어가는 것은 메르시아의 과거이고 그 주인공은 유마입니다. 대초원을 떠도는 오록스 몰이꾼들, 가죽과 나무로 지어진 도시 단라스, 이 나라를 사령술의 공포로 지배하는 검은 왕 엘드레드 같이 가장 이미지가 생생한 것도 유마의 이야기이고요. 단라스의 목주로서 검은 왕의 압제에 맞서 싸우고 결단을 내리지만 결국 비극을 맞는다는 점에서 전작의 로란과 대비되는 ‘왕’으로 보았어요.

한편, 아리엔과 에메르는 메르시아의 별과 운명회로의 비밀을 파헤치는 관찰자에 가까운 듯 합니다. 이 둘이 겪는 고난은 전작 [메르시아의 별]처럼 상황을 진전시키는 액션이 아니라 막막하고 힘겨운 느낌을 더해줍니다. 특히 에메르는 로란이란 과거의 영웅상에 매달리는 평면적인 모습이 두드러집니다. 그만큼 나이 들고 지친 투사란 이미지는 뚜렷하지만, 주동인물로선 아쉬운 점이 있네요.

아리엔이 메르시아의 폐허에서 펼치는 모험도 인상 깊지만, 역시 엘드레드와 함께 할 때(?)만큼의 재미와 긴장감은 없네요. 그나마 감초 캐릭터 노암이 등장해 생동감을 유지했던 것 같고요. 그래도 44회 아리엔의 결말은 모든 주인공들의 고난을 단번에 갚고도 남을 만큼 짜릿합니다.

 

3. 마법

[메르시아의 마법사]란 제목대로 특별한 마법들이 등장합니다. 마음 속의 공간을 만들고 활용하는 아리엔의 마법이 특히 인상 깊고요. 아리엔은 검은 왕 엘드레드에게 이 마법을 배웠는데, 사실 전작을 보면 둘의 마법은 차이가 있다고 하지요. 엘드레드의 마법은 ‘기억’을 바탕으로 삼는데 반해, 아리엔은 ‘상상’을 이용하거든요. 엘드레드의 마법은 죽은 것들을 다시 일으키는 과거의 마법인 반면, 아리엔의 마법은 가능성을 낳는 미래의 마법이란 점에서 대비됩니다.

한편 마법으로 만들어진 마음 속 공간이란 소재는 운명회로와도 중요하게 이어집니다. 운명회로는 검은 왕의 마법을 바탕으로 자아를 갖게 되고, 꿈의 공간 속에서 케인과 에메르를 부르고 유혹하기도 하지요. 이 운명회로와 맞싸우는 케인의 모습은 사이버스페이스와 데커를 연상케 하기도 합니다.

 

4. TRPG 설정집 [메르시아의 별]

[메르시아의 별]은 원래 TRPG용 배경세계 자료집으로 먼저 나왔습니다. 저는 TRPG 팬으로서 소설 [메르시아의 별]과 [메르시아의 마법사]을 그 확장판으로 접한 셈이죠.

이번 [메르시아의 마법사]는 한 나라를 멸망시켰다는 병기 ‘메르시아의 별’의 비밀을 밝혀주는데요. 사실 RPG 책을 읽고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라서 놀랐습니다. 에메르 편의 결말이 RPG 설정집의 다른 핵심 설정이랑 이어지긴 하지만요. 이런 설정이 가능성의 하나로라도 RPG 설정집에 실려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소설판 집필 과정에서 확정된 내용인지도 모르겠지만요.

전체적으로 보면 소설 [메르시아의 마법사]도 배경을 속시원하게 풀어주기보다 독자가 상상하게 채울 여백을 많이 남겨두었다는 느낌입니다. 예를 들어 과거 ‘메르시아의 별’이 퍼뜨린 독기에 대해서도 묘사는 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로 서술되는 경향이 있고요. 인물들의 내면도 조금씩 생각할 구석이 남아있는 듯 해요. 이런 ‘의도된 공백’은 RPG 설정집 [메르시아의 별]이나 [GURPS 실피에나]에서도 느낀 점이고요. 작가의 특색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5. 맺음말

[메르시아의 마법사]는 잔재주 없이 묵직한 울림을 전하는 소설입니다. 다소 무거운 진행이 힘겹더라도, 옛 메르시아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리며 읽어가다 보면 44화의 가슴 벅찬 결말로 마무리할 수 있을 거에요.

한편 독립된 작품이지만 역시 전작 [메르시아의 별] 후속편 성격이 짙네요. 마법사 아리엔을 중심으로 전작에서 이어지는 떡밥도 많고요. 아무래도 전작 [메르시아의 별]이 좀더 판타지 영웅담에 가깝고 극적이고 경쾌한 전개라, 대중성이나 읽는 재미는 더할 듯 합니다. 안 보신 분은 공개된 챕터까지라도 꼭 한번 읽어보세요.

브릿G를 통해 좋은 작품 접해서 즐거웠고요. 후속작을 기대해보겠습니다. 꼭 메르시아 시리즈가 아니더라도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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