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브샤브는 살 안쪄.
샤브샤브는 최근 나와 친구들 사이의 붐이다. 날씨도 쌀쌀해지는 이런 때에 뜨거운 국물이 뱃속에 들어가면 몸이 훈훈해진다. 한껏 끓인 맑은 채소 육수에 또 채소를 넣어 익혀 후후 불어가며 먹는다. 고기도 빼놓을 수 없다. 살짝 익힌 얇은 고기는 담백하다. 뜨거운 국물에 담갔던 야채와 고기가 슴슴한 간이 되어 접시위에 놓이면 양념을 살짝 찍었다가 그대로 입에 넣고 씹는다. 부드럽고 슴슴한 맛. 왠지 건강할 것만 같다. 그리고 속으로는 생각한다. 야채만 먹든 고기까지 먹든 복합탄수화물이 들어간 건 아니니까 살은 안찔 것 같다. 마지막에 칼국수와 죽만 끓이지 않는다면 말이지만…
그러나 누군가가 또 진실의 말을 해버리고 만다. 샤브샤브는 살이 안찌지. 먹는 내가 찌는 거지. 모두들 웃음을 터트린다. 먹으면 찐다는 당연한 이야기와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는 사실 사이는 이제 너무 간극이 벌어져 버렸다. 우리는 이제 대개 즐거움을 위해 먹는다. 그렇지만 먹으면 살이 찐다. 살이 찌는 것은 우리의 사회적 삶을 위태롭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샤브샤브가 어울리는 계절 <샤브샤브 학살극>은 우리를 샤브샤브가 살이 안찔 뿐만 아니라 빠지게 만들며 그보다 더해서 삶을 끊어놓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로 우리를 손짓한다.
실종사건들은 섬찟하지만 사람은 돌아온다. 샤브샤브는 엄청 맛있다. 사람들은 황홀한 얼굴로 샤브샤브를 먹고 여름에 대한 기대를 담아 셀카를 찍는다. 여기서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샤브샤브를 파는 사장이 “윈윈”을 외칠 때 사장의 생각을 되짚어보게도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그렇게 해서까지 살을 빼고 싶은 사람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저가에 고기를 공급받고 싶어한다. 사람고기는 맛있다. 구역질을 느끼려면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사실만 모르면 된다. 법을 몇 개 어기고 생명의 위기는 넘겨야 하지만 원하는 것을 모두가 얻었잖아? 사람을 고기로 생각할 수만 있으면 된다. 그램단위로 팔 고기로만 볼 수 있다면, 빼야 하는 살덩이가 자기자신이 아니라 그저 덜어내야 할 물질로만 여겨진다면 그 것이 나라는 인식만 없다면 이 구역질나는 공모는 성공으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먹는 것은 삶이고 삶을 이어지게 하는 것은 식사이며 우리는 감사의 마음을 식사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 무섭고 풍진 세상을 살려면 먹어야지. 그러면 나도 모르게 소설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 오늘은 두부랑 야채만 먹어도 될까? 적극적으로 이 세상에 반항할 수는 없지만 학살극은 막을 수 있고 샤브샤브는 여전히 먹을만하다. 여차하면 은행동 경찰서로 뛰어가지 뭐.. 샤브샤브의 계절 <샤브샤브 학살극>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