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 날 눈 딱 감고 낙하 공모(비평)

대상작품: 어린 기계(Le Petit machine) (작가: 장다겸, 작품정보)
리뷰어: 나르디즐라, 28분 전, 조회 3

1.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믿어 날 눈 딱 감고 낙하. (이 문장은 악동 뮤지션님의 낙하에서 차용했음을 알립니다.)

 

2.

우주 조난을 당해 술이나 퍼먹던 우리 주인공은 우연히 우주에 떠다니는 기계를 자신의 우주선에 들입니다. 그리고 기계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주인공에게 총구를 겨눕니다. 충분한 대화 후 오해는 풀렸지만, 기계의 말처럼 미개발 우주 구역에 침범한 상태라, 지구로 돌아가기는 요원해 보입니다. 그렇게 기계에게 도움을 구하자, 기계는 망가진 우주선을 수리하거나 운전하는 대신, 우-주해-적(이하 우적)을 불러들입니다.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이에 기계는 자신의 판단 실수를 인정하며 총으로 우적들을 무장해제 시키며 둘은 선장실로 향합니다. 그리고 선장은 최후의 선택으로 선장실을 날려버리고요.

탈출선 격납고로 가 살아남은 둘은 기계와 인간의 인간성에 대해 고민하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에 기계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꺼내게 되는데요. 과거 등대지기로 살았던 기계는 우연히 파도에 밀려온 장미를 구해주게 됩니다. 그리고 장미의 아름다움에 반해 사랑에 빠지게 되죠. 그러나 사랑도 잠시 장미의 ‘부탁’에 질려버린 기계는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고자 장미를 버리고 떠납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둘은 사건을 반추하면서 현재를 후회하지 않는 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탈출선을 기계의 도움으로 운전해 지구로 돌아와 잃어버렸던 파일럿의 꿈을 다시금 꾸게 됩니다.

 

3.

추락하는 것에게는 날개가 없다, 라고 하던가요. 주인공의 상황 역시 그러합니다. 기계의 도움으로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만 합니다. 술에 취한 채로 죽는 게 나을 정도로요. 우주선이 파손되어 돌아갈 길이 요원하고, 기계에게 죽을 뻔하고, 우적들에게 선물(?)되기까지 합니다. 그야말로, 끝 모를 추락입니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기계의 도움으로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는 자신을 반추합니다. 기계와 인간성. 인간과 기계성. 둘 사이를 고민하며 기계와 주인공의 고민은 깊어집니다.

추락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추락을 온전히 감내하기 위한, 자신에 대한 믿음이요. 그렇지만 추락에 앞서 자신을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가사로 차용한 제목의 원곡, 악동 뮤지션님의 낙하에서는 내가 아닌 ‘나’를 믿으라고, 너를 놓지 않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서로가 망가지지 않기 위해요. 이 믿음에 대한 부분은 주인공과 기계 둘에게 반영됩니다.

장미와 기계의 관계는, 말하자면 서로 상처 받는 관계였습니다. 장미는 공격적인 허례허식으로 자신을 꾸미지만 그것이 들통나 버려질까 두려워 했습니다. 기계는 그런 장미의 공격적인 부탁에 감정이 마모되어 갈 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종국엔 기계는 장미를 버리고 떠납니다. 상처 뿐인 마음으로 상처 같은 말을 내뱉고 나서요. 그리고 기계는 후회합니다.

이는 이를테면 끝없이 낙하하는 상황일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확신 없이 너에게만 의존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관계인 것은 맞습니다. 그렇게 파국에 이른 것은 널 놓지 않을 ‘나’를, 나를 놓지 않은 ‘너’를, 서로가 믿지 못한 채인 결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숨기고 알아주기만을 바란 관계의 말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계가 이야기를 털어놓고 난 후, 주인공은 말합니다. 가르쳐 줬어야 했다고. 그러나 자신을 자책하고 후회하지 말라고. 틀린 것을 올바른 것, 옳은 것으로 바꾸려 계속 배우고 이해하려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이죠. 그것은 광활한 세계에서 우연히 만난 서로를 길들여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너’가 될 수 있게, 그리하여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기 위한 인내일테죠.

그 관계성에서 기계는 주인공의 잃어버린 파일럿의 꿈을 일깨웁니다. 기계인 자신의 서포트를 믿고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게, 내가 아닌 ‘나’를 믿으라고 말이죠. 그렇게 지구로 돌아간 둘은 헤어지나, 이후에 다시금 재회합니다. 그리고 기계의 인간성, 인간의 기계성따위 의미 없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서로가 가진 길들임이 중요한 것일 테니까요.

 

4.

소설의 템포와 정서는, 위기감이 지속됨에 불구하고 경쾌한 템포를 유지합니다. 이는 희극의 구조를 취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희극의 구조는 발단 – 전개 – 상승 – 하강 – 대단원의 구조를 띕니다. 이는 흔히 아는 5막 구성으로 치환하면 발단 – 전개 – 위기- 절정- 결말입니다. 전개에 있어 사건이 벌어지고 전개와 상승에 걸쳐 사태는 악화됩니다. 그리고 하강에 이르러 반전이 이뤄지고 대단원에서 긍정적인 결말로 마무리 됩니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우주에 난파된 상태에서 기계에게 죽을 뻔하고, 그리고 우적들에게 피랍된 상태로 전개됩니다. 이 연속된 위기 속에서 독자는 긴장감을 느끼지만 실제 위기는 기계의 도움으로 해쳐나가며 둘의 유대감을 잘 보여주고 있고요.

이 유대감으로 말미암아, 인물들의 성장이 하강으로 기능합니다. 즉 사건의 전복과 반전으로 이뤄지는 하강의 기능이 인물의 성장을 통해 구현되면서, 자신에 매몰된 기존과 다른 ‘나’와 ‘너’의 관계성을 보다 강조하는 성격을 갖게 됩니다. 이 부분은 어린 왕자의 변주를 주인공과 기계의 관계로 치환하면서 보다 낭만적인 분위기가 연출 됩니다. 그리하여 소설은 위험천만한 모험 속에 있지만, 낭만적인 위기감의 분위기를 통해 희극의 성격을 강하게 발산합니다.

 

5.

결론적으로 어린 기계는 희극의 구조를 띈 소설이자, 어린 왕자를 SF로 변주하면서 너와 나의 관계성에 보다 집중하는 형식을 지닙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관계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서로의 낙하를 받아줄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린 왕자와 여우의 길들임처럼, 그것은 천천히 물들이는 것처럼 이뤄지는 일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런 존재이긴 합니다. 혼자선 살아갈 수 없기에 서로가 서로를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그 속에서 너에게 나를 알려주고 가르쳐주며 서로를 받아들이는 작업이 이뤄져야 할 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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