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형식이 좋은 작품을 만든다 비평

대상작품: 하그리아 왕국 (작가: 난네코, 작품정보)
리뷰어: Izedokia, 2시간 전, 조회 5


 

 

한 작품에 두 개의 리뷰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다. 필자는 이미 〈하그리아 왕국〉에 관한 장황한 감상을 남겼고, 보통은 그만한 수준으로도 작품을 알리는 데 충분하다. 그러나 어떤 강한 충동과 선명한 확신으로 인해, 아무튼 필자는 작가님께 따로 ‘비평’을 쓰겠다고 예고하였고, 질적인 내용의 분석과 별개로 양적 분석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필자의 능력이 부족하여 본래 예상한 기간보다 훨씬 늦게 표집이 끝났고, 이것을 비평문으로 편집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을 소모하였다. 그러므로, 필자는 우선 심심한 사과로 서문을 시작하고자 한다.

 

장황하고 오해 가득한 감상문을 받기 위해 일 년을, 그 뒤에 미덥지 못한 비평문을 위해 또 일 년 가까이 기다려주신 난네코 작가님께 고개 숙여 사죄합니다. 그리고 사력을 다해 쓴 이 비평문을 작가님께 바칩니다.

 


 

이전에 쓴 〈하그리아 왕국〉에 관한 감상문은 그리 많은 회차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었다. ‘군상극’으로서의 특징과 역사‧지리적 연결점을 탐색하는 데는 충분히 노력을 기울였지만, 작품의 전반적인 평가를 하기에는 표본이 작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비평은 그 목적이 ‘형식’의 분석에 있는 바, 지난번과 달리 총 100회차 분량의 표집을 진행하였다. 필자는 〈하그리아 왕국〉을 처음으로 읽을 때, 작품의 문체적 특성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렇게 하는 게 ― 대중적이지 않은 필자의 취향에 근거해 평하는 것보다는 ― 신뢰할만한 내용이 나오겠다고 판단했다. 물론 이 방식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아래에서 후술하겠으나, 적어도 표본의 크기나 준거만큼은 이전 리뷰보다 타당하게 보이도록 노력하였다. 다만, 이것은 텍스트의 유희를 위해 쓰는 게 아닌 만큼, 필자의 다른 글에 비해 다소 지루할 것이다.

 

본문에서는 〈하그리아 왕국〉이 형식적으로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가에 관하여 서술하겠다. 주요 내용은 표집 방식과 규칙을 따로 설명해야 하므로, 우선은 양적 분석과 크게 상관없는 항목부터 시작한다.

 


 

1. 화자 시점과 외부 관찰자 시점의 혼재

 

〈하그리아 왕국〉은 군상극이면서도 일인칭, 삼인칭 시점을 자유롭게 오간다. 이는 각 등장인물의 표리를 다각도로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자칫 서사의 격류 속에 희석되기 쉬운 캐릭터성을 재고하여 이입의 깊이가 저하되지 않게 해준다. 일반적으로, 여러 시점을 사용하는 것은 어려운 과업이므로 널리 추천되는 기법은 아니지만, 〈하그리아 왕국〉은 시점과 거리감을 적절히 통제하여 작품의 강점으로 삼고 있다.

 


 

2. 직위명‧지명의 반복적인 언급

 

본작은 직위나 지역에 관한 명칭이 하나의 패턴처럼 반복된다는 특징이 있다. ‘하그리아 왕국 북부 속령 벨리오사’, ‘하그리아 왕국 남부 속령 키사’, ‘하그리아 왕국 수도 샤흐리아즈’, ‘벨리오사 총독 소흐랍’, ‘살레굽 황궁 대사 아흐메드’, ‘시메야 왕국 왕녀 나시아’ 등이 그 예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명칭은 마치 독자가 그것을 잊을만한 시점을 예비한 듯 빈번히 삽입되어 있고, 그 덕분에 기억 재인의 취약점을 겪지 않고도 작품의 세계관을 선명하게 인지할 수 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앵커 포인트’로, 인물과 세계의 도식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고정점이 되어준다.

 


 

3. 고전적인 문단 구성

 

〈하그리아 왕국〉의 문체는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양상이어서 한 묶음으로 정의할 수는 없으나, 캐릭터를 이용한 소구를 중시하는 최신작과 비교하자면 오히려 전통적인 편이다. 시각적 요소와의 합작을 골자로 하는 현대의 군상극은, 서술과 대사가 혼합된 ‘복합형 문단’보다는 두 역할을 선명히 구분하는 형태로 진화하였다. 그러나 〈하그리아 왕국〉은 14화를 기점으로 시적 특성을 띤 ‘선형 문단’이 추가되며, 회차당 평균 3개에 이를 정도로 ‘대화형 문단’이 적게 나타난다. 즉, 〈하그리아 왕국〉은 ‘복합형 문단’과 ‘선형 문단’이 혼재된 고전적 구성에 가까운 작품이다.

본작은 역사적‧지리적 참조와 캐릭터 빌딩에 있어 그 깊이가 결코 얕지 않으므로, 유연한 서술과 자못 장엄함마저 느껴지는 고전적 구성이 훨씬 조화롭다. 선형 문단은 회차당 평균 11개로, 서술형 문단이 주지 못하는 오묘한 리듬감이 있으며, 때로는 노래가 되고 때로는 편지가 되는 그 형태의 다양성이 인물 이해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 뒤에 따르는 서술형 문단에서는 여러 시점과 서술 패턴을 오고 가므로, 본작은 거의 지루할 틈이 없다. 회차당 분량도 ― 평균과 중앙값 모두 ― 25개로 안정적이고, 선형 문단과의 균형 역시 괜찮은 편이다.

 


 

※ 해석에 앞서

 

상술한 바는 자연어로 요약하기 충분하지만, 다음에 서술할 내용은 규칙을 모르면 지표가 뜻하는 바를 이해할 수 없다. 이제부터는 필자가 〈하그리아 왕국〉의 형식을 어떤 방법으로 분류하여 표본을 추출하였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분석하였는지에 관해 짧게 설명하겠다.

 

모든 문장은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로 잘게 나눌 수 있고, 인간은 문자 조합을 해석할 때 그 구성 요소를 의미 있는 덩어리로 묶어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를 ‘청킹’이라고 명명하며, (학설마다 차이는 있지만,) 뇌의 작업기억이 최소 4개에서 최대 9개까지의 청크를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언젠가부터, 필자는 ‘(형식에서 기인한) 문장‧단락의 독해 난이도’를 조작적으로 정의할 수 없을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지인의 글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위의 ‘청킹’에 착안하여 문장을 청크와 같은 단위를 기준으로 분할한다는 발상에 이르렀고, 간단한 실험 끝에 ‘상관성’을 설명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먼저, 예문을 통해 어떻게 문장을 청크화하는지를 설명하겠다.

 

「이스카는 노래를 굉장히 잘 불렀다.」

 

이 문장은 필자의 분류에 따르면, ‘이스카는 노래를 잘한다’라는 논리값 1을 가지고, 따라서 청크가 1개인 문장이 된다. 이 경우, 문장은 청크 P를 지닌 ‘P문’으로 분류한다.

 

「2왕자와 결혼해서 왕국의 2왕자비가 된 뒤론 누르자한은 누가 권해도 절대로 춤을 추지 않았다.」

 

이 문장은 각각 ‘2왕자와 결혼했다(P)’, ‘2왕자비가 되었다(Q)’, ‘누르자한은 춤을 추지 않았다(R)’로 논리값 3을 가지므로 청크가 3개이다. 그리고 청크 P로 인해 청크 Q가 조건적으로 성립되고, 청크 R이 연언conjunction의 형태로 연결된 구조이므로, ‘P⇒Q’∧R가 된다. 그런데 청크 R은 ‘아니다(not)’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최종적으론 ‘P⇒Q’∧~R의 형태로 분류된다. 이 경우, 청크 P, Q, R을 지닌 ‘PQR문’으로 분류하며, 각각 조건문/문장연언(쉼표로 끊어갈 경우)/부정문으로 매겨진다.

 

예문을 보았으니, 아래에 규칙과 명칭을 나열하겠다.

(주의할 점은, 논리학의 기호를 빌렸다고 하여 완전히 논리학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것은 필자가 표집을 위해 익숙한 형태를 빌려 임의로 정한 규칙이다.)

 

P : 논리값 1

PQ : 논리값 2

PQR : 논리값 3

PQRS : 논리값 4

PQRS+ : 논리값 5 이상(복잡도 계산에서는 6을 초과하지 않음)

Pⁿ : 단순 열거법(명제가 아닌 단어 열거, 복잡도 계산에서 6을 초과하지 않음)

 

명제연언(∩): 부호 없이 명제 간 논리곱으로 접속된 경우

문장연언(∧): 쉼표 등의 부호로 명제 간 논리곱으로 접속된 경우

명제선언(∪): 부호 없이 명제 간 논리합으로 접속된 경우

문장선언(∨): 쉼표 등의 부호로 명제 간 논리합으로 접속된 경우

등치(=): ‘~같은’ 또는 ‘A는 B’ 등의 등치 관계로 접속된 경우(≡보다 입력이 빨라 대체)

부정(~): ‘~아니다’ 또는 ‘~없다’ 등 부정의 관계로 접속된 경우

조건(⇒): 앞의 명제에 의해서만 뒤의 명제가 성립할 수 있는 접속의 경우

비교(<): 두 명제의 가치가 가능성을 비교하는 접속의 경우

의문(¿): 의문문이 포함된 경우

의성어(O): 값이 의성어onomatopoeia인 경우

비문(*): 명제/문장에 논리적/문법적 오류가 있는 경우

 

이와 같은 규칙 하에, 필자는 100회차 분량의 문장을 형식적으로 분류하고 하나의 통계로 만들었다. 그리고 청크의 수와 접속 형태에 비례하는 ‘복잡도’를 도출하여 각 문장과 회차의 난이도를 평가했다. 지표의 등락이 커져 평균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각 접속에는 (다소 주관적일 수도 있는) 가중치를 매겼으며, 청크가 6 이상인 경우 초과분을 합산하지 않도록 식을 조정하였다.

 

규칙을 설명하였으니, 이제부터는 작품의 지표를 근거로 문체를 설명하겠다.

 


 

4. 문장과 청크

 

단락과 문장의 크기는 집필과 퇴고에서도 항상 근간을 이룬다. 아무리 좋은 문장이 많아도 단락의 크기가 지나치게 크면 장황하다고 느끼기 쉽고, 반대로 문장이 너무 적으면 읽기 흐름을 끊기에 십상이다. 또한, 너무 많은 명제를 가진 문장은 한 호흡으로 읽기 버겁고, 적은 명제를 가진 문장은 단조롭고 성급한 느낌을 준다. 모든 글쟁이의 꿈과 야망은 이 둘을 토대로 세워진다. 그렇다면 〈하그리아 왕국〉은 과연 어떤 토대 위에 서 있는 것일까?

 

〈하그리아 왕국〉의 문장 통계는 다음과 같다. (이는 문장 2개 이상의 문단만을 반영한다.)

 

전체 평균 : 159

최댓값 : 293

최솟값 : 42

중앙값 : 151

전반부 : 166

후반부 : 152

1분기 : 126

2분기 : 207

3분기 : 177

4분기 : 127

 

그리고 청크(논리값) 통계는 다음과 같다.

 

전체 평균 : 297

최댓값 : 686

최솟값 : 77

중앙값 : 303

전반부 : 276

후반부 : 317

1분기 : 208

2분기 : 344

3분기 : 381

4분기 : 254

 

피상적으로 생각하면 문장과 청크가 동반 상승할 것 같지만, 전후반부와 2‧3분기를 비교했을 때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후술할 문체의 발전과 그에 따른 복잡도 증가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으므로 지금은 다루지 않겠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한 문단에 평균적으로 문장이 몇 개가 포함되는지, 그리고 한 문장에 평균적으로 청크가 몇 개인지에 대해서다.

 

단락당 문장 평균은 다음과 같다.

 

전체 평균 : 6

최댓값 : 9

최솟값 : 4

중앙값 : 6

전반부 : 6

후반부 : 6

1분기 : 6

2분기 : 6

3분기 : 6

4분기 : 7

 

보이는 대로, 본작의 문단은 평균적으로 6개의 문장을 포함하고 4~9의 범위를 지니고 있다. 평균과 중앙값이 일치할뿐더러, 전후반부와 1‧2‧3분기도 같은 값을 가지며 균일한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문장당 청크 평균은 다음과 같다.

 

전체 평균 : 2

최댓값 : 3

최솟값 : 1

중앙값 : 2

전반부 : 2

후반부 : 2

1분기 : 2

2분기 : 2

3분기 : 2

4분기 : 2

 

분명 2‧3분기에서 총량이 크게 상승했음에도 한 문장에 포함된 청크의 평균은 거의 굴곡이 없다. 이는 논리값이 3 이상인 PQR/PQRS/PQRS+문이 2 이하인 P/PQ문에 비해 꾸준히 적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필자는 읽기 편한 문단을 정의할 때, 평균 5~7개의 문장과 문장 당 2~3개의 청크를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귀납법에는 최소 선결+정의+근거1+근거2+결론이 필요하고, 읽기 호흡으로는 1‧2 / 2‧1 / 1‧1‧1 과 같은 형식이 리듬감을 형성하는 데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작은 문장과 명제의 수를 적절히 통제하고 있으며, 일관된 크기로 독자에게 안정적인 읽기 경험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5. 어려운 문장과 쉬운 문장의 비율

 

어려운 문장과 쉬운 문장의 비율 또한 작품의 성향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읽기 흐름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는 문장 부호의 간격이나 리듬감 같은 것이 주로 꼽히지만, 좀 더 거시적으로 보자면 문장 자체의 완급 조절도 무시할 수 없다.

인간은 이상한 동물이라 너무 쉽거나 너무 어려운 쪽 모두를 오래 견디지 못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 중간지대마저도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벗어나고 만다. 그들은 언제나 코스가 다른 롤러코스터를 타고 싶어하고, 곰과 황소가 각각 나타나 콘크리트 같은 시장을 뒤흔들기를 원한다. 글쟁이들은 자기 자신의 머릿속만큼이나 혼란스러운 프랙탈 패턴을 다양한 흐름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시달릴 운명이다.

 

이번 지표는 〈하그리아 왕국〉의 문체가 연재 중에 어떻게 변했는지를 설명해준다. 우선은 1분기 평균을 살펴보겠다.

 

P : 68

PQ : 41

PQR : 12

PQRS : 4

PQRS+ : 1

Pⁿ : 0.32

 

1분기에서는 논리값 1의 P문이 약 54%의 비중을, 그다음으로 PQ문이 약 33%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1분기의 회차별 청크 평균은 1~2의 범위에 머물고 있었다.

다음은 2분기 평균을 볼 차례다.

 

P : 109

PQ : 69

PQR : 22

PQRS : 6

PQRS+ : 2

Pⁿ : 0.12

 

P문의 수가 압도적으로 늘고, Pⁿ문을 제외한 나머지 역시 동반 상승한 것이 보인다. 논리값 3 이상의 문장이 늘기는 하였으나, 이때까지는 간단한 문장을 연속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더 짙다. 이는 선형 문단이 누적되며 그 사용 방식이 풍부해진 것과도 상관이 있으며, 작품에 조금 더 많은 내용을 담기 시작했다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제 3분기를 살펴볼 차례다.

 

P : 60

PQ : 63

PQR : 34

PQRS : 14

PQRS+ : 7

Pⁿ : 0.24

 

놀랍게도 P문과 PQ문의 비율이 역전되었다. 그리고 P문이 감소한 대신 PQR/PQRS/PQRS+ 등 복잡한 문장의 비중이 커졌다. 3분기는 문단과 청크의 수에서 최댓값을 경신하고, 작품 분량이 가장 많은 이른바 ‘초원편’이 있는 구간이다. 이 지점에서 본작은 기존의 ‘간단한 문장을 연발하는 방식’ 대신 명제연언(∩)을 포함한 다양한 접속과 언술을 사용하며 문장의 압축률을 높였다. 이는 위의 3분기 문장 수 평균이 2분기에 비해 감소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4분기를 보겠다.

 

P : 49

PQ : 45

PQR : 21

PQRS : 8

PQRS+ : 3

Pⁿ : 0.12

 

전체적인 청크 수의 감소와 함께 P문과 PQ문 모두 감소 추세를 보이지만, 논리값 3 이상의 문장들은 비율이 크게 감소하지 않았다. P문과 PQ문은 3분기와 비슷하게 비중이 40%를 넘지 못하고, 나머지는 비중을 보존하며 적은 문장 속에 복잡도를 유지 중이다. 4분기는 전체 평균과 중앙값에 가장 가까운 지점으로, 전체에서 P문이 과대대표되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논리값 2 이상의 문장 비율이 거의 일치한다. 즉, 4분기에 이르러 〈하그리아 왕국〉의 문체는 안정기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일련의 흐름은 〈하그리아 왕국〉의 문체적 변화와 함께, 신규 독자의 읽기 경험을 예측할 수 있는 주요 지표로도 볼 수 있다. 1분기에 해당하는 회차들은 간단한 형식으로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작품의 세계관을 느긋하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산책로가 된다. 그리고 2분기에서는 간단하지만 많은 정보들이 독자를 휩쓸고, 이것이 서사와 문체의 전환점과 겹치며 시너지를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3분기까지의 원행을 함께 한 독자에게, 여기까지 왔는데 도중에 이탈하진 않을 거라는 계산(?)으로 서술의 융단 폭격을 쏟아버린다. 이 모든 과정을 견뎌 4분기에 이르면, 원숙해진 형식 속에 안심마저 느끼며 조용히 깨달을 것이다. ‘아, 과연 나는 〈하그리아 왕국〉의 독자로다.’

〈하그리아 왕국〉은 작품이 여물 때를 아는 좋은 구성을 지니고 있다. 작품이 익숙해질 때까지 독자를 기다려주는 것,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내용을 늘리는 것, 그리고 마침내 안정을 찾고 완성되는 것. 본작의 분기별 변화는 좋은 장편이 충성스러운 독자를 만드는 왕도를 걷고 있다. 이번 단락장에서 논의한 지표는 장편을 기획 중인 작가에게 있어 좋은 본보기가 되어줄 것이다.

 


 

6. 장황해지지 않기

 

필자는 어떤 문장 부호를 어디에 쓸지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하는 편이다. 그런 고민의 결과가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안 그래도 만연해지기 쉬운 필자의 문체를 통제하려면 그런 거라도 해야 한다. 보통은 대조군을 기준으로 해당 문단이 복잡한지 아닌지를 검토하고, 쉼표가 읽기 흐름을 적절히 조율하도록 중간 지점을 찾아 배치한다. 대조군은 다음의 구조를 지닌다.

 

[구조]    [복잡도]

P∧Q∩R   (4.5)

P∧Q         (3)

P             (1)

P             (1)

P∩Q       (2.5)

 

대조군에서는 명제 간 논리곱(∩, 0.5)이 두 번, 문장 간 논리곱(∧, 1)이 두 번 있었다. 즉, 쉼표를 두 번 사용했고 나머지는 부호 없는 접속과 마침표로 문장을 끊었다. 위의 대조군은 청크 하나가 1의 복잡도를 지닌다고 설정한 것이며, 평균 2.4의 복잡도를 보인다.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이 ∧의 절반의 가중치를 지닌 것에 주목했을 것이다. 이는 한국어 문장의 보편 인식에 기반한 것으로, ‘쉼표의 사용이 많아질수록 읽기 답답해진다는 통념’이 참이라는 가정 하에 설정하였다. 실제로 영문과 비교하였을 때도, 한국어로 쓰인 글은 끊지 않고 한 번에 접속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럼 필자는 부호 없는 접속이 문장을 더욱 쉽게 만든다고 주장하고 있는 걸까? 뭐,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가령 이런 형태의 문장이 있다고 가정하자.

 

P∩Q∩R∩S∩etc. (13)

 

이것은 논리값 5와 4개의 접속을 지닌 아주 긴 문장이 되어버릴 것이다. 이런 형식의 문장은 그 어떤 독자라도 그것의 “지루하고 현학적인” 내용을 견딜 수 없다. 여전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난데없이 급상승한 복잡도에 의문을 표할 것이다. 명제연언(∩)의 복잡도는 0.5의 가중치를 지니는 대신 제곱에 비례하도록 설정하였다. 즉, 4회의 명제연언 접속은 ‘0.5×4²=8’의 복잡도를 지닌다. 왜냐하면, ‘쉼표나 줄표 없이 길게 접속된 문장’은 ‘쉼표가 많은 문장’보다 더 끔찍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4회 이상의 접속은 정상적인 작품에서 보기 힘들기 때문에, 이러한 급격한 증가가 평균을 오염시킬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

 

이 긴 설명을 이해했다면, 본론으로 돌아가 〈하그리아 왕국〉의 연언(∩, ∧) 통계를 보도록 하자.

 

               [명제연언(∩)]  [문장연언(∧)]

전체 평균 :        59                28

전반부 :            54                22

후반부 :            65                34

1분기 :             37                20

2분기 :             72                23

3분기 :             86                41

4분기 :             43                26

최댓값 :           180              109

최솟값 :             5                 5

중앙값 :            58                25

 

한눈에 봐도 그 수가 무척 많아 보인다. 그러나 이는 단지 다른 형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접속을 대표하는 것이므로, 복문이 증가하면 연언도 자연스레 같이 증가한다. 그래도 일견 2‧3분기의 증가분과 최댓값의 크기가 걱정된다. 그렇다면 2분기와 3분기의 복잡도는 급격히 증가했을까?

놀랍게도, 2분기와 3분기의 복잡도 평균은 각각 2.3/3.3이고, 중앙값은 1.7/2.89이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 접속과 복잡도는 양의 상관관계가 있지 않은가? 비밀은 위의 5번에서 논한 문장의 비율과 관계가 있다.

앞서 말한 P문과 PQ문의 역전, 그리고 논리값 3 이상 문장의 증가를 다시 살펴보자. 논리값 2 이상의 문장은 반드시 접속이 존재하므로 복잡도 상승에 기여한다. 그런데 2분기와 3분기에서 가장 유의미하게 증가한 것은 PQ문과 PQR문으로, 접속만으로는 복잡도를 2 이상 증가시킬 수 없다. 게다가 PQR문의 2분기 비중은 약 11%, 3분기 비중은 약 19%이므로 최소 30%를 넘기는 P문과 PQ문에 비해 그 수가 적다.

이 시점에서 연언의 최댓값이 있는 62회차(50-3화)를 살펴보겠다.

 

P : 47

PQ : 79

PQR : 72

PQRS : 37

PQRS+ : 22

Pⁿ : 2

명제연언 : 180

문장연언 : 190

복잡도 평균 : 4.3

복잡도 최빈값 : 1

복잡도 중앙값 : 4.5

 

해당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비중이 큰 문장은 PQ문과 PQR문이며, 복잡도 평균과 중앙값 편차는 전체 평균에서 각각 1.5/2.2 정도 떨어져 있다. 요약하자면, 문체가 심화하는 2‧3분기여도 〈하그리아 왕국〉은 문장당 평균 2~3개의 청크의 경향성을 유지하고, 최빈값이 1인 문장의 비중이 높아 전체적인 복잡도가 큰 폭으로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접속이 3 이상인 PQRS/PQRS+문의 비중이 높았다면, 독자는 작품이 전체적으로 장황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압축률을 높이면서도 복잡도가 크게 오르지 않는 ‘적절한 사이즈의 문장’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기에, 〈하그리아 왕국〉의 3분기는 여전히 쉽게 읽힐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구성은 4분기에서 보다 안정적인 형태로 정제되었다. 〈하그리아 왕국〉의 내적 안정성을 나타내는 지표들을 보며, 필자는 아름다움마저 느낄 정도다.

만약 본작을 읽을 때 가독성이 좋고 호흡이 편하다고 느꼈다면, 잠시 작가님의 문체에 감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6.1. 모 아니면 도는 없다

 

〈하그리아 왕국〉의 선언(∪, ∨) 통계는 다음과 같다.

 

               [명제선언(∪)] [문장선언(∨)]

전체 평균 :        0.5              0.5

전반부 :            0.5              0.7

후반부 :            0.5              0.3

1분기 :             0.6              1.4

2분기 :             0.3               0

3분기 :             0.8              0.2

4분기 :             0.2              0.5

최댓값 :             3                9

최솟값 :             0                0

중앙값 :             0                0

 

수가 매우 적다고 느낀다면 제대로 본 것이다. 일반적으로, 작품에서 ‘A 또는 B’ 형식의 문장을 쓸 일은 극히 드물고, 선언 접속을 위주로 단락을 구성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본작에서도 그 비중이 매우 낮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비중을 지니는 것은 ‘비교(<)’로, 본 비평에서 이들은 다루지 않고 넘어가겠다.

 


 

7. 부정을 부정하기

 

〈하그리아 왕국〉의 부정(~) 통계는 다음과 같다.

 

전체 평균 : 27

전반부 : 24

후반부 : 30

1분기 : 15

2분기 : 32

3분기 : 34

4분기 : 25

최댓값 : 70

최솟값 : 4

중앙값 : 26

 

이는 단순 부정을 1로, 이중 부정을 2로 설정하여 집계한 것이다. 부정의 복잡도 가중치는 0.5로 명제연언과 유사하지만, 복잡도 산출 시 제곱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인 문장에서는 삼중 부정의 형식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문장당 부정의 비율’인데, 그 비중이 평균 19%에 머무르며, 전반적으로 30%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많은 작법서가 부정문을 쓰기보다는 같은 진릿값의 긍정문으로 고칠 것을 권유하고, 특히 이중 부정은 죄악시하고 있다. 필자는 자연어에서 긍정과 이중 부정이 1대1로 대응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지만, 반면 부정문이 독해 난이도를 소폭 상승시킨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므로 복잡도의 평가에 있어, 부정문의 비중이 높지 않은 것을 ‘읽기 쉬운 작품’의 특성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하그리아 왕국〉은 7번 항목에서도 해당 정의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인다.

 


 

8. 실수를 최소화하기

 

습작 단계와 전문적 창작 단계를 나누는 가장 선명한 지점은 바로 ‘비문(*)’의 비율일 것이다. 그 어떤 작가도 실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여러 요인에 의해 때때로 말이 안 되는 문장을 만들어낸다. 이점에 있어 〈하그리아 왕국〉도 예외는 아니며, 그 통계는 다음과 같다.

 

전체 평균 : 0.15

전반부 : 0.10

후반부 : 0.20

1분기 : 0.16

2분기 : 0.04

3분기 : 0.20

4분기 : 0.20

최댓값 : 2

최솟값 : 0

중앙값 : 0

 

이는 단순 오기를 제외한 문법‧문맥상의 오류만을 추출한 것이다. 복잡도 가중치는 1로 설정하였다.

비문이 없는 것이 제일 이상적이겠지만, 그러한 바람은 완벽한 구球형의 얼룩소가 마찰 0의 평원에서 뛰노는 걸 기대하는 것보다 조금 더 희망적일 뿐이다. 100회차 표집에서 전체 평균 0.15개의 비문은 충분히 훌륭한 비율이다. 이 비율은 특이사항이 있지 않은 한 창작자의 역량 문제로 비문이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방증한다.

 


 

9. 총평

 

〈하그리아 왕국〉의 복잡도 통계는 다음과 같다.

 

              [평균]  [최빈값]  [중앙값]

전체 평균 :  2.8        1           2

 

전반부 :      2.4        1          1.5

후반부 :      3.1        1           3

 

1분기 :       2.4        1         1.75

2분기 :       2.3        1          1.5

3분기 :       3.3        1           3

4분기 :       3.0        1         2.75

 

최댓값 :      4.3        3          4.5

최솟값 :      1.8        1           1

중앙값 :      2.8        1          2.5

 

본작의 각 문장별 복잡도는 1에서부터 12 이상까지 다양한 분포를 보이지만, 회차당 평균은 항상 2~4 사이의 값으로 수렴하는 양상을 보인다. 내용과 분량의 차이가 큰 3‧4분기에서도 각각 3.3과 3.0의 복잡도를 지녔다는 것은, (작가의 세심한 배려로) 독해 난이도가 잘 통제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일정 지점이 지났을 때 숨겨둔 잠재력을 터뜨리는 전략은 가히 모범적이며, 그 와중에도 (최빈값 통계가 증명하듯) 논리값이 1인 문장의 비중을 지나치게 낮추지 않아 완급에 균형이 있다.

종합하자면, 〈하그리아 왕국〉의 형식은 창작 이론의 교보재로 삼을만하다. ⓐ 단락당 평균 6개의 문장 ⓑ 문장당 평균 2개 명제(청크) ⓒ 논리값 3 이하 문장의 고른 분포 ⓓ 장황하지 않은 수준의 명제 간 접속 ⓔ 적은 부정문 사용 등, 본받을 점을 세자면 열 손가락도 모자라다. 이외에도 등치(=)/조건(⇒) 비율의 통제도 훌륭하지만, 분량이 지나치게 많아져 가볍게 언급하고 끝내겠다.

 

열거한 내용을 근거로 필자는 선언한다. 좋은 형식은 좋은 작품을 만든다. 그리고 〈하그리아 왕국〉은 훌륭한 형식을 지닌, 성공적인 대중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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