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사적인 tmi로 시작합니다. 딱히 스포일러는 아니지만 리뷰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읽는 분들께 방해되지 않도록 스포일러 기능으로 가려두고 시작하겠습니다.)
리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굉장히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 주신 기록관리인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쓴 이야기의 뒷부분을 다른 작가님이 이어서 쓰신다니 상상도 못 해봤어요. 물론 브릿G에 스레드 소설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결말 지었다고 생각하고 쓴 글이었고, 후일담이 붙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거든요. 그 이야기가 거기서 끊기는 게 읽는 분들께는 아쉬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럼에도 거기서 끊는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뒷 부분은 읽는 분들 마음대로 상상하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나름 열린 결말(?)을 추구했던거 같아요.
그랬기에 기록관리인 작가님께서 뒷부분을 쓰겠다고 하셨을 때 놀라기도 했지만 흥미롭고 감사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다른 분들은 그 둘의 이야기를 어떻게 상상했을까 궁금할 때가 있었거든요. 그런점에서 작가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야기는 한 스님의 법명으로 시작합니다. 그가 왜 스님이 되었는지와 또 다른 주인공의 현재 감정과 상태가 어떠한지가 나오죠. 첫 몇줄에 지난 사연을 함축적으로 담아내시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어 좀 더 자세한 둘의 사연이 나옵니다. 그들을 둘러싼 상황들이 바뀌고 그 사이에서 스님은 갈등하죠. 결국 둘의 관계는 새롭게 정립될 기회를 맞고 말미엔 (온전히 상대에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작은 반전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포근하고 따뜻한 분위기로 글이 마무리됩니다.
이야기 속에서 상황을 변화시키고 뭔가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쪽은 여자입니다. (제가 썼던 앞부분에서) 저는 둘 다를 매우 수동적인 인물로 생각했어요. 그건 타고났다기 보다 환경에 의한 거라고 생각했고요. 가난의 가장 나쁜 점은 ‘기회’를 박탈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둘은 실패하거나 망가졌을 때 회복할 경제적, 신체적, 사회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극도로 보수적인 선택-확실하고 안전한 것-을 하는 것이죠.
그런점에서 볼 때, 변화를 주도하는 인물이 여자인 건 자연스러운 전개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자는 오랜시간 ‘여유있게’ 생활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과 기회가 많았을 거라 생각해요. 자신이 불만족 스러운 상황이나 이유, 해결책도 알고 있었을테고요. 다만 실천하지 못한 건 아무 의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기력증이나 우울증처럼요. 그러므로 여자가 확고한 이유나 가야할 방향성을 찾았다면 이 상황을 변화시키려고 했을 것 같아요.
반면 남자는 나름의 안정과 평화를 찾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므로 이 글에서 남자가 초반에 보이는 행동들은 매우 자연스럽다고 생각했고요. 뒷부분의 반응들도 아주 인간적인,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면에서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잘 연결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제가 깊이있게 다루지 않았던 사건을 캐치해서 그 뒷부분을 상상하시고 그걸 결말부와 연결짓는 내용에도 감탄했습니다.
저는 본래 수찬이가 지연의 출산 소식을 듣고 자살했다고 설정했었어요. 그전까지는 결혼은 했어도 어떻게든 되돌릴 기회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끙끙거리다가 그 부분에서 완전히 낙심해서 삶의 의욕을 잃었다는 식이었죠.
개인적으로 저는 로맨스를 정말 못 쓰는데요, 그래서 제 글에서도 둘이 직접적으로 어떤 말을 나누거나 행동을 보이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너무 어렵더라고요…ㅠ) 애당초 생각했던 것도 ‘로맨스’보다는 ‘가난은 어떻게 기회를 박탈하고, 욕심은 어떻게 사람을 눈멀게 하는가’ 정도 였기도 했고요.
그런데 버려졌던 로맨스가 작가님의 매끈한 솜씨를 만나, 안타깝게 방황하는 두 영혼이 구원받은 느낌입니다. 제가 방치(?)했던 두 사람이 작가님덕에 새로운 기회를 얻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 뒤 둘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읽는 분들이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적어도 제가 끝냈을 때보다는 희망찬 분위기 같아요.
연허 스님의 절 이름을 ‘회각사’로 지은 이유가 후회의 ‘회’, 새길 ‘각’에서 따와 끝없이 ‘후회를 새기고 있는’ 으로 설정했던 것인데, 이제 절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ㅎㅎ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결국 계절은 돌고 돌아 다시 봄이 오기 마련이지요. 저는 두 사람을 20년 넘게 겨울에 던져두었지만 작가님의 멋진 연결 덕분에 두 사람이 다시금 봄을 맞이하기를! 함께 응원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