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좀비가 창궐한 미래의 모습을 그린 호러물입니다.
그야말로 암울한 재앙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늙은 치매 노인을 모시고 살아가는 정우라는 사람을 그리고 있습니다. 좀비물이니 당연하게도 좀비가 세상에 등장하는데, 이 좀비가 그렇게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이 작품에서의 좀비, 그러니까 좀비 바이러스는 고령의 노인에게서 주로 발병합니다. 물론 물리거나 타액, 피에 접촉하면 편견 없이 누구나 좀비로 만들어주지만, 바이러스 자체는 노인들만 공격하는 겁니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자연의 섭리 같기도 합니다. 자연계에서 먹이 사슬의 정점에 있는 사자나 호랑이 같은 포유류들은 사냥하기 어려운 성체보다는 무리에서 뒤쳐진 나이 든 개체나 새끼를 노리니까요.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아직 성장을 마치지 못한 유아와 노인들은 받는 대접이 다릅니다. 불과 2,30년 전만 해도 노인들은 노동과 경제 활동에서의 배제를 강요받고 시스템으로 지원 받을 수 있는 복지 제도에서도 외면 받았습니다. 마지막 한 줌의 재산까지 미래의 가능성에 투자하고 나면 남은 건 조용히 어두운 곳에서 그 날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전부였지요.
작품 속에서 정우는 몇 년 전 병으로 어머니를 잃고 최근 낌새가 이상한 아버지와 살고 있습니다. 사실 그는 대단히 영웅적인 인물도 아니고 재난 영화에 반드시 등장하는 발암캐도 아닙니다. 그냥 아버지와 살고 싶은 남자이며 최근에 어머니를 보낸 마당에 아버지까지 잃고 싶지 않은 평범한 아들입니다. 잘은 몰라도 1970 년을 전후로 해서 2000년 까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부모를 모시는 것이 이상하거나 칭찬 받을 일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시 젊은이였던 세대의 이미지가 ‘취업 잘 되는 시기에 살면서 쉽게 집을 사고 큰 걱정 없이 결혼도 해 놓고서 지금 너무 힘든 젊은이들에게 훈계나 하려고 드는 꼰대’ 정도로 취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물리적으로 늙어갑니다. 그리고 늙으면 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매개체가 좀비 바이러스였지만 사실 이름만 바꾸면 사람을 혐오하고 배척할 수 있는 다른 매개체는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그것이 코로나 바이러스던 메르스나 신종 독감이던 간에 우리는 삶이 힘들어질수록 어딘가 선을 긋고 그 선 밖의 사람들을 혐오하고 밀어내기 시작하지요.
이 작품 속 세상이 무섭게 느껴진 것도 그런 이유일 겁니다. 지금의 우리 세상과 너무 비슷해서요. 까닭 없는 혐오와 갈등은 결국 가족의 감소, 즉 인구의 감소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늙으면 혐오 받고 사람들을 피해 다녀야 하는 좀비가 되는 세상에 아이를 갖고 싶은 사람은 얼마 없을 테니까요. 정우가 본 사람들의 모습이 현재 우리가 사는 모습과 무섭도록 닮아있기 때문에 이 작품 속 결말이 우리의 미래가 될 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지금의 사람들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요? 차라리 어떤 악독한 바이러스의 작용으로 사람들이 서로 혐오하게 된 거라면 백신 개발이라도 기대해 볼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지금 작품 속 정우가 맞닥뜨리게 된 세상 만큼이나 암담한 미래를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늙고 병들어 땅으로 돌아가고 내가 살면서 만든 유산으로 다음 세대가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순환이 매우 난이도 높은 미션처럼 보이는 요즘입니다.
작품 자체는 분량도 적당하고 지나친 꾸밈 없이 담백한데 읽고 나면 참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어떤 이야기인 지는 브릿G 독자 여러분들도 직접 확인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되네요.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