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할수록 예리해지는 공모(비평)

대상작품: 실종 (작가: 이도건, 작품정보)
리뷰어: 나르디즐라, 4시간 전, 조회 10

아내가 음식물 쓰레기를 내놓으러 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참이고 돌아오지 않습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습니다. 아내의 부재로 나는 어제의 일을 상기합니다. 부부싸움을 했고, 나는 아내에게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그리고 나는 노트북을 켜고 배우자의 실종에 대해 검색합니다. 그러자 실종으로 인한 보험 청구에 대한 내용이 뜹니다. 아내는 보험에 든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 보험 파일을 찾아서 아내의 실종에 대해 고민합니다.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들립니다. 쓰레기 버리는 곳에서 누군가 들것에 들려 사라집니다. 잠시 뒤 도어록 소리가 들리고 아내가 돌아온 것 같습니다. 아내는 샤워하러 들어가고 나는 수건을 들고 대기합니다. 그렇지만 한참이 지나고도 아내는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물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이도건님의 「실종」은 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단순한 현실입니다.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고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는다는 현실 속에서, 화자는 불안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 불안함을 집요하게 파고 들며 여지를 만들어냅니다. 아내와 나는 무엇 때문에 싸운 걸까요? 화자가 실종 보험금이라는 단어로 유도된 상황은 왜일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내가 샤워하러 들어갔지만 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걸까요. 이런 상황들은 ‘작위적’이면서도, 왜라는 물음에 명료함을 붙여내지 못합니다.

 

가정 폭력이 벌어졌다는 상황, 그리고 실종 사고로 인한 보험금 수령이라는 검색 내용은 현실에 균열을 내며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여기서 반영된 감각은 역설적이게도 부채감입니다. 이 부채감이라는 단어가 조형하는 상황 속에서 나의 말과 행동들은 어쩐지 연극처럼 느껴집니다. 화자는 말합니다. ‘문제가 생겼더라도 이 모든 행동들이 나의 기록이 될 테니까.’ 실종의 불안을 우려하는 사람의 행동치고는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편집증적입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누차 이야기합니다. 아내가 걱정된다고.

 

이 지점에서 핸드폰이 갖는 상징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핸드폰은 소통의 매개이지만, 이 소설 내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단절의 상징으로 작동합니다. 더욱이 핸드폰은 ‘아내를 걱정하는 나’를 표면적으로만 보이게 하는 장치로써 기능합니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 상황은 발신자에겐 답답하게 느껴지는 상황이고 상대가 걱정된다는 뉘앙스를 보이게 되지만, 그게 의도이지 않을까 의심하는 지점에서 내용은 호러로 변모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은 모호해질수록 예리해집니다. 우리가 의심하는 것들이 현실일지도 모른다고 선언하는 순간 잔인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그렇지만 소설은 아무것도 명료하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거짓일까요. 알 수 없기에 잔인한 소설, 이도건 작가님의 실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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