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언가를 먹는 이유는 뭘까요? 우선적으로 보면 결국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결국 아무것도 먹지 못하면 사람은 죽고 마니까요. 그리고 한 단계 더 올라가면 유희의 측면도 있습니다. 일단 먹고 살 걱정이 없어지면 더 맛있는 걸 먹고 싶어지기 마련이죠. 그리고 다음으로는 우리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 뭔가를 섭취합니다. 단백질 보충제, 저염식, 닭가슴살. 맛을 포기하고 오로지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섭취하는 식품들이죠.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이 작품은 식귀라 불리는 존재가 인간의 바람을 빨아먹고, 인간이 다른 인간을 포식하고 싶게 만듭니다. 정획히 말하자면 자신에게 ‘없는 무언가’를, 다른 인간의 신체 일부를 포식해서 얻을 수 있다는 광기를 심어주죠. 우리의 주인공 성진과 동료?인 초연은 식귀를 퇴치하고 사람들을 제정신으로 돌려놓기 위해 식귀를 만나, 직접 먹힌 후 내부를 헤집어 퇴치한다는 계획을 짭니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식귀는 어떻게 보면 좀 특이한 귀신입니다. 사람의 육신이나 영혼을 직접 포식하는 게 아닌 그 사람의 ‘바람’을 빨아먹어,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포식하도록 만들죠. 그럼 과연 이 식귀가 빨아먹는 ‘바람’의 정체는 뭘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식귀가 포식하는 건 인간의 가장 높은 욕구인 ‘자기 만족’ 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생존에 필수적인 무언가가 결핍되어 죽고 만 식귀는, 다른 인간들이 가진 고차원적 욕구에 굶주려 있을 겁니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만족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욕구 중 가장 높은 욕구죠. 가장 낮은 욕구조차 채우지 못한 식귀는 이러한 만족과 자신감 등의 고차원적 자아야말로 최적의 ‘식’의 대상일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아를 제거당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포식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주인공이 누나의 결핍을, 스스로에 대한 불안을 위로하고 달래자 식귀는 견디지 못하고 후퇴합니다. 우리 역시 살아가며 결핍을, 불안을, 모자람을 느끼곤 합니다. 그럴 때면 스스로 자신을 달래고, 자신이 모자란 것이 아닌 가지고 있는 걸 생각했으면 합니다. 모든 사람은 그 자체로 아름다우며,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해서 그게 스스로에 대해 절망하고 배고파할 이유는 되지 않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