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일이 잘 안풀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남 탓을 하고 싶어진다. 날씨 때문이야, 상사가 나빴기 때문이야, 오늘 입은 옷이 별로였어, 커피를 마셨어야 했는데, 밤새 고양이가 울어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어. 그런 식으로 변명을 하고 나면 어쨌든 당장은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 모든 것은 내 탓이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런 이유는 이러저러한 어떤 것들 때문이다. 이렇게 핑계대고 싶은 마음은 나약하고 때로는 비겁하다. 동시에 제대로 살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쉽지 않은 상황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칼과 나>에서는 바로 모든 일은 칼의 잘못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주인공 나는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시에 자신이 생각이 너무 많은 탓이라고 자책하고 있다. 일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많은 것들 사이에서 부유하며 주인공은 불안감에 시달린다. 마트에서 염가로 사온 칼은 불안을 점점 더 심화시킨다. 주인공의 일상은 칼로 갈라놓은 것처럼 숨겨진 이야기들을 드러내고 주인공의 불안은 잠재된 것에서 현재 눈앞에 들이밀어진 것으로 탈바꿈된다.
주인공 나의 회피와 외면, 상황 전개에 관한 불안과 기억의 뒤섞임, 인물들의 갈등과 마치 칼날이라도 스치고 간 것처럼 터져나오는 과거의 이야기까지 이야기는 빠르게 이어져간다. 짧은 이야기임에도 결말이 어찌될지 도저히 알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은 아니다. 이야기는 한 장면 한 장면이 마치 영화에 나오는 장면들처럼 명확하고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는 내용도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한다. 마침내 인물들간의 갈등이 폭발하는 지점에 도달했을 때에는 긴장하며 이야기의 결말까지 내달리는 기분이어서 즐거웠다.
다 읽고 난 지금도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남아있다. 정말로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주인공이 보고 있는 것들은 사실일까 아니면 환각일까? 정말 범인이 있다면 누구일까? 이야기는 짧지만 흥미롭고 신선한 충격을 준다. 짧았지만 재미있었고 더 긴 버전의 이야기로 보았어도 충분히 재미있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