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재해석? 혹은 한 시대에 대한 발칙한 도발 <[모에라이히] 붉은 심쿵, 검은 탄흔. 의뢰(감상)

대상작품: [모에라이히] 붉은 심쿵, 검은 탄흔. (작가: 윤주안, 작품정보)
리뷰어: 소나기내린뒤해나, 11시간 전, 조회 9

 

“나는 널 사랑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오늘… 난 널 증오하게 됐어.”

(본문.P22)

 

 

<본 리뷰는 ‘윤주안’님으로부터 의뢰를 받아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국사를 되짚을 때, 10월 유신으로부터 시작되는, 혹은 5.16군사정변으로 군부가 정권을 잡던 시기부터 제6공화국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기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격동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런 격동기가 현재에 이르러 어떻게 조명되는가를 따져보는 건 무척 흥미로운 일입니다. 누군가는 그 시대를 조명하며 인권이 유린되고 자유가 탄압받던 시기를 거론할 것이며, 또 누군가는 그런 격동기를 만들어낸 이를 각각의 면에서 조명하고 있습니다.

 

떠올려보면, 그런 시대의 시발점에는 반드시 몇몇 인물들의 결단이 자리 잡고 있기 마련입니다. 현대 창작물에서는 그런 소수의 인물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그 흐름을 바꾸는 키를 가졌던 인물들을 조명하며, 그것의 평가와 해석을 후대에 맡기는 것이 보통이죠. 그 과정은 무척 조심스럽기 마련입니다. 단순히 해당 개인에 대한 존엄을 넘어, 그 시대를 살았던 인간들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갖춰야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모에라이히] 붉은 심쿵, 검은 탄흔.>은 아주 도발적인 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사에서 가장 민감한 시기로 손꼽히는 제4공화국을 ‘러브코미디’라는 장르에 담아내는 시도를 선보이고 있죠. 당장은 이 10매 남짓한 분량에 전반적인 작품을 분석하기는 힘듭니다. 그렇기에 이 글에서는 본문을 하나의 ‘예고편’으로 간주하며,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들을 살펴보고 앞으로 작가님이 진행할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이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키워드를 두 가지로 나뉘어볼까 합니다.

 

첫째는 ‘역사’입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 작품은 제4공화국을 배경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10월 유신’이라고 명명된 친위 쿠데타로 시작되어, 독재자가 영구독재를 시도했던 때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런 제4공화국이 막을 내리기 시작했던 황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P3). 부마민주항쟁은 더 이상 지역의 분노에 그치지 않았다. 광주의 비극을 닮게 되었다.

(P10). “정희… 이건 질서가 아니야.”

(P12). “네 국민이… 지금 거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고! 네가 지키겠다고 했던 나라의 심장이, 지금 네 탱크 바퀴에 으깨지고 있어!”

 

‘부마민주항쟁’이 거론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이미 유신정권이 종막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유혈진압은 작중의 갈등으로 제시되며, 이 혼란이 결코 끝나지 않을 거 같은 느낌은 주고 있습니다.

 

(P39). 김재규의 손이 떨렸다. 그는 말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P44). 그날 밤, 총성이 울렸다. 그러나 그 총성이 향한 대상과 이유는 끝내 수수께끼로 남았다.

 

우리는 이미 이 유신정권이 어떻게 종말 되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 수장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현장에서 암살당하며 다음 독재자가 탄생하는 길을 열게 되죠. 다만 이 작품에서는 해당 역사에 대한 ‘만약(IF)’을 제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그 배경이 불분명한 암살 사건에 대해, 마치 어떤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심어 놓았죠. ‘총성이 향한 대상과 이유’라는 구절만 봐도, 마치 그 총성이 역사 속의 누군가가 아닌 다른 인물을 향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낳게 됩니다.

 

(P59).“자유 시장은 국민을 강하게 만듭니다. 국가는 탯줄이 아닙니다.”

(P63).“사람은 의존이 아니라 경쟁 속에서 살아야 하지요.”

(P66).“네 탑은 철로 세워졌겠지. 하지만 심장은 철보다 단단해. 사람들의 분노가 한꺼번에 뛰기 시작하면, 네 탑은 무너져.”

 

한편 비슷한 시기의 런던에서는, 30년대에 일찍이 사망했을 포퓰리즘의 대가 ‘휴이 롱(Huey Pierce Long Jr.)’이 살아서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를 만난다는 신선한 가정과 함께, ‘진짜 국민들이 살아가고 싶은 세상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를 보여줍니다. 물론 그 자체는 답을 찾을 수 없는 무언가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지키기 위해 그 나라를 짓밟았던’ 어느 대통령의 모습과, 자유와 경제를 갖추며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논하는 두 인물의 모습을 대조하는 것은, 이 일련의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교훈을 되짚어주는 듯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이 역사를 탐구하며 스스로의 답을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나라가 무엇인지, 더 나아가 그런 나라를 만드는 것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이죠. 그 거대한 답을 가볍게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이야기에서 보여준 하나의 대조는 독자들에게 여러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합니다.

 

 

둘째는 ‘희화(戱化)’입니다.

 

사실 작품을 읽다보며 여러 당황스러운 설정이 엿보이곤 합니다. 당장 휴이 롱과 마거릿 대처의 있을 수 없는 만남은 물론이며, 79년도에 벌어진 부마민주항쟁에서 훨씬 훗날에 벌어진 광주학살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는 것만 봐도, 단순한 역사의 채용이 아닌 왜곡에 가까운 느낌으로마저 비춰집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런 왜곡에 가까운 설정조차 웃고 넘어갈 수 있는 힘이 엿보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장르’의 힘이라는 말로 정의되죠.

 

(P13). 소년 대통령은 창가에 서 있었다.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심장까지 밟아야 한다.”

(P22) “나는 널 사랑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오늘… 난 널 증오하게 됐어.”

 

작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설정은 역시 소년으로 설정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를 사랑했던 여인으로 각색된 ‘휴이 롱’ 두 인물의 구도입니다. 사실 역사적으로도 두 인물은 ‘거물 정치인’이라는 배경과 ‘암살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결말에서 공통점이 느껴집니다. 이 작품은 이런 공통된 특징을 가진 인물들을 한 시대에 등장시키며, 연인의 관계였을지도 모른다는 골 때리는….. 아니, 파격적인 설정을 무기로 제시합니다. 이 정도면 사실 이름과 배경만 갖다 쓴 다른 인물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사실 이 작품이 시도하고 있는 ‘러브 코미디’라는 장르는 소재의 ‘희화(戱化)’를 피할 수 없습니다. 작중의 인물들은 진지한 순간에도 망가지고 삐걱거리며 그 자체로 웃음을 줘야만 하죠. 이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존 인물과 각색된 인물의 괴리감은 그 자체만으로도 독자들에게 당혹감과 웃음을 줄 수 있고, 다소 민감할 수도 있는 주제들에 대해서도 다양한 방면으로 접근이 가능해집니다. 이 작품에서는 제목에서도 제시되는 ‘심쿵’이라는 키워드가 그 역할을 하게 됩니다.

 

(P27). 자주국방의 심쿵은, 결국 국민의 심장을 짓밟는 무게로 바뀌어 버렸다는 것을.

(P37). “만약 네 손에 나라의 운명이 달린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총을 권력에 겨누는 게 아니라, 국민에게 겨눌 총을 꺾어버려. 그게 진짜 심쿵의 정의야.”

 

목소리에 사뭇 힘이 들어간 대사들도, 읽다보면 작게 실소가 삐져나올만합니다. 오히려 힘이 차 있기에 더욱 그런 면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무게감을 갖추고 탐구되는 ‘김재규’ 혹은 ‘박정희’와 같은 인물들이 ‘심쿵’이라는 신조어를 외치며 주장을 높이는 장면을 상상할 때면, 코미디언이 얼굴에 분칠한 채 인상을 쓰고 있는 듯한 익살스러움으로 다가오기까지 합니다.

 

물론 실존인물에 대한 ‘희화(戱化)’는 누군가에게 비판의 소지가 다분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역사적 인물을 망가뜨리고 희화할 수 있다는 용기가, 이 작품을 눈 여겨보게 만드는 힘이란 것도 부정할 수 업는 사실입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이 작품은 굉장히 도발적인 지점을 무기로 삼고 있습니다. 군부독재 시절의 인물을 ‘소년’으로 각색하여 등장시킨 것도 어떤 역사적 금지(禁地)를 건드리려는 시도로 비춰지는 것과 더불어, 그 결과물을 ‘코미디’라는 장르로 망가뜨리며 웃음을 주는 발칙함마저 엿보입니다.

 

물론 이 10매 남짓한 이야기를 제대로 평가하기는 이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도 이 한 편의 글은 완성된 한 편의 작품이라는 인상보다는, 어느 작품을 준비하며 내놓은 홍보용 샘플(sample)이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대사 하나하나가 마치 누군가의 명언만을 꼽아 소개하는 듯한 인상만 봐도, 한 편의 이야기의 흐름보다는 앞으로 이 작품이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소개시켜주는 데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이 기대되는지 물으셨나요?

 

물론 독자들마다 의견이 다를 겁니다. 하지만 ‘소년 대통령 박정희가 사랑하는 여인 휴이 롱과 심쿵(?)의 가치에 대해 논의하는 역사 대체물’에 대해 그 어떤 호기심도 없냐고 한다면…… 차마 그럴 수는 없다는 말만 작게 구겨두는 바입니다. 부디 앞으로 시작될 이 소설이 독자들의 마음에 기분 좋은 탄흔을 남기길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인상적인 작품 감사합니다. 앞으로 이야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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