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나고 / 활짝 열린 창을 보면서도 – 황인찬, <그 해 구하기> 中,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문학동네, 2023, p.21.
이 리뷰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은 위 글과 더불어 미리 <우타로>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군 복무를 하면서 제일 서러운 일은 어떤 훈련이 있거나 상황이 벌어지면 인터넷은 고사하고 연락조차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 경우에는 지난 <우타로>를 비롯한 비인간혁명 작가님의 작품이 투고되는 당시를 여럿 놓치는 것이었습니다.
부랴부랴 읽어내려간 여러 작품에서는 작가님의 작품에서 늘 느낄 수 있듯, 도전적이거나 세련된 맛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최근에 투고하신 <연진, I may be paranoid, not an android>(이하 본작)과 <우타로>(이하 전작)에 특히 시선이 갔습니다.
전작 <우타로>를 읽기 전 이 작품이 투고되었음을 보았을 때, 처음에는 혹시 드라마 <더 글로리>의 SF적 변용일까 궁금해 했는데, 그보다는 좀 더 깊고 슬픈 종류의 관계에 대한 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가지 작품은 모두 “주남”, “우타로”, “연진”이라는 세 인물이 세 가지 축을 이루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주남”과 “연진”은 한때 제주에서 함께 자라난 인물입니다. 7년을 연애한 첫사랑이었으나 “연진”이 연구에 더 열정을 쏟게 되면서 점차 멀어진 뒤 이별했지요. 전작의 내용은 이별로부터 3년 뒤, “연진”의 법적 배우자이자 안드로이드인 “우타로”가 “주남”을 찾아오면서 시작됩니다. “연진”이 사고로 사망했음을, 본인은 그 연진이 살아온 곳을 둘러보기 위해 왔음을 고하면서 말이지요. “우타로”는 본인의 가이드가 되어주는 조건으로 “주남”에게 “연진”의 마지막 순간을 알려주겠다 제안합니다.
전작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주남”과 “우타로”는 “연진”의 죽음을 그래도 받아들였구나, 그래도 나아갈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주남”과 “우타로”가 같은 사람에 관한 기억을 갖고, 그 기억을 통해 서로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지탱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 제게 본작의 시작은 놀라운 슬픔이었습니다.
전작에서 주남과 우타로가 함께 한 사람의 죽음과 그의 빈자리를 추모하는 방식에 대해 다뤘다면, 본작에서는 주남과 우타로가 함께 연진의 존재를 다시 한 번 불러오고자 시도하는 행동을 다루고 있다 이해되었습니다. 전작의 분위기, 톤, 색채가 사람과 사람의 이별(그것이 일시적이든, 영구한 것이든)을 이겨내는 방법, 그리고 그 이별이 다시 한 번 삶 속에서 복기되었을 때 어떻게 그것을 지탱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작품에서는 실제적인 행동의 영역으로 전개되는 듯합니다.
본작에서 “연진”, 혹은 “연진”을 모사한 안드로이드는 15년 만에 “주남”을 만난다 이야기합니다. 이 “연진”은 “우타로”에 의해 제작된 것입니다. 원본 “연진”의 뇌 스캔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성된 의식이지만, 본인의 감정과 의식이 실재하는 것인지 의심하며 시스템 종료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주남” 역시 “연진”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과거의 “연진”에게 ‘죄를 짓는 기분’을 느낄 뿐입니다. “우타로”는 “연진”을 종료시키는 척하며 완벽하게 “연진”을 부활시키기 위해 안드로이드 “연진”을 속이고 그를 재시작하지요.
그러니 전작을 보았다가 본작을 보면 그 비극성이 얼마나 커졌는지 알겠습니다. 받아들이고 넘어갈 수 없었던 한 사람의 존재가 새로운, 그러나 과거의 모습과 의식을 지닌 존재를 만들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거기 연루되어 과거의 사랑을 모독하는 감각을 느끼고 있지요. 한 사람의 공백은 왜 이렇게 큰 걸까요? 왜 누군가에게 세상이었던 존재는 그렇게 빨리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요.
저는 “우타로”도 이해할 수 있고 “주남”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떠난 사람을 불러오고 싶어하는 마음도 이해할 수 있고, 잊은 사람을 묻어두고 싶어하는 마음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이 가진 비극에 교집합이 있음이 어쩌면 두 존재의 가장 큰 비극이 아닐까요.
그러나 가장 비극적인 존재는 안드로이드 “연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감각한 적 없는 것들에 관한 감각이 있고, 겪은 적 없는 것들에 관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감각과 기억이 “연진”을 자가 소멸 욕망으로 이끕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타로”가 조금은 미워집니다. “연진”이 그에게는 세상이었고, 아마 행복이었을 테고, 삶의 원리이자 진리였을 것인데, 새로 만들어낸 새로운 개체에게 세상이 되어주는 게 아니라 ‘원래 그 세상’이 되라고 요구합니다. 될 때까지 “연진”의 의식을 영원회귀 안에 가둬둔다면, 새로 만들어낸 ‘원래 그 세상’이 그것이 맞을까요. “주남”도 조금은 미워집니다. 그가 “우타로”에게 협조하는 이유는, “우타로”의 이상을 부활시키기 위해 돕는다기보다 작중 말미에서 언급된 금전적 대가가 그 이유일 것입니다. 사랑했던 사람의 의식을 돈 때문에 죽음에서 자꾸만 끌어내어도 괜찮은 걸까요?
후속작이 나오면 “주남”과 “우타로”의 심리에 대해 더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저는 이 비극이 어떻게 끝을 맺을까도 궁금해집니다. “우타로”가 세상을 다시 찾을까요, 혹은 그 “세상”이란 건 원래 없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을까요?
내용 외로는 작가님의 문체에 다시 찬탄했습니다. 테크노 버블스러운 문장과 세밀하고도 풍부한 문장들이 겹겹이 엮인 문단을 읽을 때마다 감탄스러웠습니다. 읽기 좋으면서도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제가 이런 문장을 쓰려면 또 얼마나 연습하고 공부해야 할까요? 이정표가 되는 문장들을 많이 모은 것 같습니다.
많이 몰입하면서 읽은 글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최근에 좀 가슴 아픈 일을 겪기도 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작가님의 문장 기저에 인간 감정-관계에 관한 깊은 고찰과 생각을 녹여내셨기에 이입이 더욱 쉬웠으리라 확신합니다. 지난한 복무 기간 동안 한 줄기 빛이 되는 작품을 여럿 읽을 수 있어 기뻤습니다. 단문 응원으로 보내려다가 너무 길어져 그만 리뷰로 전환하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