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눈에 띄는, 그리고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재치있는 단편을 만났다. 일정한 시간 루트 속에 갇힌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낸 <당신의 시간 속에서>가 그 대상이다.
이런 류의 이야기를 좋아하다보면 자연스레 같은 장르 속 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작가나 감독이 무슨 힘을 쓴다 한들 이야기 소재 자체에서 신선함을 느끼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된다. 그러면 결국은, 연출력이 변별력이 된다.
<당신의 시간 속에서>에는 ‘나’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글을 읽고 나서 곰씹어보니 ‘나’가 분명 존재하는데도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가 아니라 1분 1초를 공격적으로 써먹던 ‘양수정’처럼 느껴진다. 스물 한 살이었던 양수정이 20대 중반이 되도록 이 ‘루트’를 못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죽고 또 죽고 죽으면서도 살아야 했던 영화 <엣지오브투모로우>의 빌 케이지, 톰크루즈도 생각이 난다.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까칠했던 ‘수정’의 행동이 카운트다운 고지를 향해 달려가는 행위였음을 알게 되자, 그때부터는 글을 읽는 나도 마음이 부글부글 들뜨기 시작했다. 덩달아 마음이 급해지고 긴장감이 형성된다. 수정에게 설득되고 나자 일없이 손끝이 부산해진다. 중후반부의 몰입도가 아주 훌륭했다.
수정은 그렇게, 지금까지 몇번이고 되풀이해왔을 대화를 또 되풀이한다. 어제와 오늘도 아니고 무한히 반복되는 좁은 시간 속에 갇혀 있는 사람이지만 생존에의, 삶에의 닿음을 위한 의지가 모니터를 뚫고 전해질 지경이다. 이쯤 되면 수정을 응원하지 않고 배길 수가 없는데, 그럼에도 글이 끝날 즈음이 되자 배드엔딩을 볼 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 것 역시 막을 수가 없다.
글은 딱 적당하게, 그것도 현명한 타이밍을 재며 끝이 난다. 이런 식의 열린 결말을 참 재미있어하는데 내 입맛에 딱 맞는 깔끔한 맛의 아이스크림이었다. 시간이 끝나고 호준은 어떻게 되었을까. 자기 손에 들린 봉투를 보고 깜짝 놀라 ‘이게 뭐지’하고서 아이스크림 매장 앞에 슬쩍 내려놓고 갔을까, 아니면 우연히 자기 수중에 들어온 봉투를 들고 우체국으로 향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아이스크림 매장 속 누군가를 확인하고서 다시 그 안으로 걸어들어갔을까. 다분히 배드엔딩의 갈래를 여러개 두고 살펴보았지만, 아마, 어쩌면 이번에는…… 정말로 이번에는 수정을 위한 해피엔딩을 작가가 점지해놓았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세 문장이 남긴 여운의 뒷맛을 헤아려 보다 보니 그런 생각이 조금은 들었다.
어떤 방향일지는 모르겠으나 상상하는 재미를 던져 주어서 좋았던 <당신의 시간 속에서>. 스쳐지나가듯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이라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