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씩 다가오는 불안감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목발을 한 남자 (작가: 클랜시 김준영, 작품정보)
리뷰어: 하늘, 17년 8월, 조회 88

취업을 준비하는 ‘나’는 친구인 P와 함께 취직에 성공한 선배를 만납니다. 선배의 지루한 자랑 및 훈계를 듣던 두 사람은 간신히 술자리를 빠져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오릅니다. 창밖을 무심하게 바라보던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목발을 짚고 다가오는 괴상한 남자를 봅니다.

‘목발을 한 남자’는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어요. 보통은 중반 이후의 내용을 발설하면 스포일러가 됩니다만 이 작품의 경우는 예측 가능한 내용이라 스포일러인 것 같지 않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이상한 사람을 보았는데 그 사람이 계속 따라온다.

이게 전부거든요. 여기서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습니다.

여기서 공포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목발 짚은 남자’는 별다른 설명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냥 이상한 모습으로 주인공을 따라오기만 해요. 심지어 패턴도 거의 같아요. 스크롤을 내리다 기겁하게 되는 공포 만화들처럼 갑자기 후닥닥 달려오거나 하지도 않고요.

그런데도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어요. 이 글은 마치 주인공의 경험을 괴담처럼 들려주거든요.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전에 선배를 만났는데, 한참 마시다 집에 가는 길에 웬 남자가 따라오는 거야. 그래서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이불 덮어쓰고 친구가 풀어놓는 썰을 듣는 느낌이랄까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의 심리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따라오는데 갑자기 무서워요.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불안하고 기분이 나빠요.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될 것 같아요. 두려운 대상을 발견하고 거기에 자기도 모르게 빠져드는 순간을 이 글은 마른 헝겊이 젖어 들어가는 것처럼 묘사합니다.

공포물에서는 항상 리듬감이 중요한데요. 귀신이 계속 나와도 하나도 안 무서운 영화들이 있고 익숙한 귀신이 나와도 무서운 영화들이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이 글의 리듬감은 무척 좋아요. 그렇게 고조되는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거기에 걸맞는 클라이막스가 기다리고 있고요. 정말로 효과적인 지점에서 딱 끊어요. 불쾌하고 으스스합니다.

여기에 더해서 여러 가지 요소들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요. 늦은 시간 추운 가을밤을 달리는 버스, 나를 두고 내리는 친구, 한치 앞을 알 수없는 불안정한 미래.. 평소와 다름없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정말로 기댈 데 없는 사람이었던 거에요. 그런 상황에서 알 수 없는 괴상한 대상을 만났다는 게 나를 더 무섭게 하는 거고요.

짧고 간단한 내용이지만 저는 이 글을 보며 무척 기교적이라고 느꼈어요. 이렇게 간단한 글일수록 기술이 많이 필요하죠. ‘목발을 한 남자’는 그런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세련된 단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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