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단순한 농담이 아니어서 문제 공모(비평)

대상작품: 그건 그냥 단순한 농담이었어요 (작가: 리리브, 작품정보)
리뷰어: 나는북, 3시간 전, 조회 7

[스포일러 있습니다]

 

이 작품의 길이는 절대 짧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이디어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한 사람이 죽었다. 한국인 교환학생은 자신이 받는 혐의는 어디까지나 언어적,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라며 결백을 주장한다.

 

작가분은 이 아이디어 하나에 천착해서 소설 한 편을 끝까지 이끌어나갑니다.

 

 

1. 작품의 구성이 약간 아쉽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이 작품은 좀 더 미묘해지거나 분량이 적었다면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이 작품은 미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초반부를 조금만 지나쳐도 화자는 신용할 수 없는 존재임이 분명해지며, 혐의는 더욱 짙어지고, 그의 해명은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리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후반부는 사실상 뻔뻔스러운 범죄자를 취조하는 심정으로 ‘그래. 어디까지 가나 한 번 보자.’하는 심정으로 팔짱을 끼고 범인이 혓바닥을 놀리는 것을 지켜보게 됩니다. 심지어 변명하는 패턴도 한 가지이기 때문에, 후반부쯤 이르게 되면 다른 분이 덧글로 지적하셨다시피 “해외 나갔을 때 유의할 영어표현 101″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만약 독자가 화자가 범인인 것을 알면서도 추리하기 위해서 그의 진술을 따라가게 하려면, 범인임을 너무나도 명백하게 암시하는 후반부 영어 문장 몇 개와 그에 대한 해명은 불필요했단 생각이 듭니다. 이미 독자는 진실을 어느 정도 유추하고 있습니다. 변명은 이제 짜증 날 뿐이죠. 아니면 뭐, 레오 같은 인물들도 사실 그렇게까지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지금도 사실 인물이 상당히 많은데, 이렇게까지 주변인이 여러 명 있을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

 

반대로 끝까지 독자가 진실을 헷갈리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해도, 내용에서 전체적으로 너무 노골적인 함의를 띤 부분들은 제거될 필요성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거의 ‘범인 확정!’ 느낌이거든요.

 

2. ‘문화 차이’라는 소재를 활용한 부분이 약간 아쉽다

 

제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화자와 케일럽은 먼 친척이지만 동성애 관계고, 케일럽이 화자에게 구강성교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화자는 땅콩 알러지가 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케일럽에게 땅콩을 먹였고 케일럽이 의식을 잃은 제이크를 성추행해서 점막으로 알러지 물질이 흡수돼 사망하게 유도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과 미국 사이 문화 차이라는 게 단순히 언어라는 부분에만 국한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동성애라는 소재를 다소 엽기적인 반전 요소로만 활용한 부분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일단 앞에서도 “우리는 친척이다. 그런 관계일 리가 없지 않느냐.”라고 발뺌을 하죠. 한국 사회의 유교적인 관점에서 볼때 동성애는 물론이고 한때 동성동본 결혼까지 막았을 정도로 근친도 혐오 대상입니다. 먼 친척이고 뭐고 일단 안면 튼 친척이라는 것부터 문제니까요. 상대적으로 개방된 미국 사회와 비교해볼 때 명백히 ‘문화 차이’인 것입니다.

 

단순히 자신이 했던 몇 마디 말들을 해명하는 것보다도, 케일럽과 자신과의 관계를 더 확실하게 부정하는 것이 혐의를 벗는 것에는 더 큰 도움이 됐을 텐데 어째서 화자는 초반부에서 정작 이 부분은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며, 지나가는 말처럼 툭툭 던진 이 이야기, 저 이야기에 더 힘들여 변명하는 것인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살인 교사 혐의를 부인할 필요성뿐만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도 화자는 자기 명예나 체면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텐데요. 애시당초 이 모든 사건은 화자가  ‘아시아인 남성’으로 대상화되어 훼손됐다고 느끼고 그래서 제이크와 불화까지 초래했고 이후 제이크를 살해까지 했을 정도로, 자신의 ‘남성성’을 수호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화자는 ‘아시안 저스틴 비버’라는 소리를 듣고도, 이후 너처럼 되기에 나는 너무 남자답단 말을 듣고도 참지 못했어요. 그런데 케일럽과 자신이 정말 동성애를 하는, 즉 게이 같은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성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게이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파티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화자는 “자기 생일 파티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예전 같을 수 없을 거야.”라고 말할 정도로 남을 생각해 주지만, 정작 자신이 받은 혐의점이나 이후 동성애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명할 때에는 초조함도 아니고 멋쩍은 기색조차 없다는 느낌이 들어서, 약간 거리를 두고 읽게 되었습니다.

 

3. 화자의 화법에서 조금 아쉬운 점

 

화자는 끝까지 능청스럽게 발뺌을 합니다. 그러나 범죄 혐의 받는 사람이 구태의연한 태도를 언제까지고 유지한다는 건 있기 어려운 일입니다. 또 범인이든 결백한 일반인이든 자신의 성적 관계에 대해서 남에게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나 참…꼭 들어야겠어? 그럼 들려줄게. 나 아니라니까 그러네.’ 보다는 “아이씨 아니라니까! 왜 나한테 이런 이야기까지 하게 만들려고 해! 안 할 거야!” 정도로 폭발하는 구간 정도는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최소한 머뭇거리거나 어떤 감정의 동요는 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읽는 내내 화자의 어조는 똑같았어요. 계속 발뺌하고, 변명하고, 말을 빙빙 돌리고, 실없는 헛소리를 합니다. 조금 얼버무린다든가 말이 급해진다든가 혹은 장황해진다든가 하는 강약조절도 없습니다. 흥분도 없습니다. 재심문까지 받고 있는 화자는 ‘어쨌든 저도 참 유감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식으로 굉장히 차분합니다. 증거를 들이미는데도 ‘하하하! 인정해요. 그러니까…’ 하는 식으로, 화자의 긴장이나 감정 상태를 유추할 수 있을 만한 단서는 쉼표의 갯수 정도밖에는 없어요. 말문이 막히거나 당황하지도 않으며 너무나도 유창합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녹음된 음성 파일은 법적 증거로 못 쓰잖아? 라면서 큰 소리로 광소하는 주인공. 그러나 유력 용의자로 몰려서 재심문까지 받고 있을 정도로 심리적 압박이 들어오는데, 거의 진상이 다 드러나게 생긴 판국에 ‘그거 증거로 못 쓰는데? 어쩔 건데?’라는 식으로 나오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술 취한 것처럼, 과시하는 마냥 즐거운 어조의 주인공이 놀랍습니다.

 

차라리 형사가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서 화자가 답변하는 형식이면 덜 단조로웠을 텐데, 지금으로서는 화자의 독백이니 어쩔 수 없이 독자에게 전달해야 하는 정보는 모두 자가 직접 말해줘야 하죠.  그러니 화자는 갈수록 과감하고 노골적이고 적나라해집니다. 쉴새없이 하하!라고 말하며 수사 상황을 형사에게 다시 말해 두 사람 다 아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또 으스대죠.

 

물론 주인공이 그냥 아주 대담한 사이코패스라면 할 말은 없습니다. 실제로 화자가 한 짓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이코패스인 게 확정난 순간부터 클로이나 케일럽을 아주 장황하게 모함하는 부분은 왜 들어주어야 하나 싶을 정도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 자신의 범죄의 트릭을 스스로 변명하듯이 폭로하는 구조라서, 후반부는 여러모로 떡밥회수가 폭발하는데 ‘아…장황하다…’ 싶은 구간도 분명히 있습니다.

 

4. 그 외의 감상

 

이건 작가님의 의도니까 제가 뭐라고 할 부분은 아니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호감 가는 구석 하나도 없는 교활하고 사악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상대방이 은밀하게,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인종차별로 ‘이니시’를 걸었고, 그 피해자였던 화자 또한 보이지 않는, 입증할 수 없는 방법으로 범죄를 계획하고 보복한 하나의 서사로 읽힙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제게는 화자가 단순한 악당으로만은 보이지 않았어요.

 

쉽게 대응하기도 어려운, 대응하면 발끈한 사람만 바보 만드는 그 미묘하고 저열한 공격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아마 오히려 주인공의 편에 서고 싶은 사람도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주인공을 대부분의 독자가 혐오스러운 거짓말쟁이로만 받아들이게 되는 부분이 다소 안타깝기도 하네요.

 

주인공은 자신과 같은 동양인이고 게이고 친척인 케일럽을 버리는 패로만 이용한 거잖아요. 뭐 케일럽도 자는 사람을 강제추행한 쓰레기지만요. 주인공은 아마 쓰리썸을 제안한 클로이도 죽였을 거고요.

 

차별받는 약자가 반드시 선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미국 사회의 아시안 혐오나 아시아인에 대한 비하 그리고 구조적인 불평등함까지 작중에서 전부 나온 상황에서 화자가 범죄자라는 걸 확신하기 전까지 우리는 화자에게 이입할 겁니다. 그런데 그 주인공만이 실은 도덕성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악당이고, 아시아인이라서 타자화되고 비하당한 두 게이는 그냥 성범죄자가 맞고, 결국 나머지 2인의 인생을 망치는 쓰레기가 된 것이 가장 얄궂은 농담 같습니다.

 

왜냐면 쟤네는 이제 진짜 외국인/동양계 성범죄자 변태들인 건데, 이건 뭐 ‘차별당해도 싸지’ 급이 되어버리거든요. 만약 배경을 한국으로 바꾸고, 멸시와 차별의 대상인 외국인이 인종차별당한 김에 한국인을 거시기하는 내용을 쓴다면 이념적으로 문제시되지 않겠습니까. 인종차별이나 퀴어혐오 등의 문제를 뺐다면 좀더 편하게 봤을텐데요.

 

사소하게 하고 싶었던 말을 이것저것 쓰다보니 어느새 장황해졌네요.

전반적으로, 흥미로운 소재와 잘 쓰인 심리스릴러였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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