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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결정되어 있다. 네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본문.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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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이번 마지막 주는 감평을 쓰지 않고 흘려보낼 생각이었습니다. 우선 기존에 하고 있던 브릿G 리뷰단 34기 과정을 박수치며 마무리한 지 오래였으며, 이 작품에 제공된 호평만 가득한 리뷰와 감상평을 보니, 눈치 없이 비판이라는 목소리로 물을 흐리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이 작품이 ‘타임리프 공모전’에 제출된 엄연한 공모작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마감일까지 채 나흘도 남지 않은 이때, 뒤늦게 감평을 받는다고 한들 참고하고 수정하는 데는 너무 촉박한 시간이라는 생각도 한몫 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리뷰 공모일이 이틀 정도 남았다는 것은, 곧 다른 이의 감평을 참고하고 마지막으로 작품을 수정하는 데도 약 48시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어휘력과 문해력이 일반인 수준에서 월등히 떨어지는 제가 감히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 보잘것없는 감상문이 작가님이 작품을 향상시키는 데 작은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몇 자 적어보는 바입니다.
이번에 읽은 <멍청한 말>은 특별한 소제목을 달아서 분석하기 보다는, 이 작품을 읽으며 눈에 밟혔던 부분들을 하나씩 톺아보는 과정을 가질까 합니다. 그것을 작가님이 무시하든 받아들이든 저는 담담하게 납득할 것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첫인상은 나쁘지 않은걸?』
사실 독자로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멍청한 말>이라는 제목은 무척 강렬한 인상을 주는 편입니다. ‘멍청하다’는 수식어도, ‘말’이라는 주체도 그 어떤 것도 형상화할 수 없는 이때, ‘멍청한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능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는 지점을 만듭니다. 즉, 이 작품은 독자에게 작은 질문을 던지며 끌어당기는 영리한 시발점을 잡고 있다고 의미됩니다.
줄거리도 무척 선명합니다. 이사 온 신혼부부가 집에 남겨져 있던 낡은 의자를 발견하며 겪는 사건을 재치 있게 풀어냈으며, 의자가 ‘타임머신’이나 다름없는 기능을 하면서도 기존에 창작물에서 제시하는 ‘시간 자체의 흐름을 타고 다닐 수 있는’ 만능과는 다소 결이 다른 해석을 보여줌으로서 이 작품이 ‘시간’이라는 주제에 대한 깊은 고민을 거쳤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껴지게 만들었습니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후술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소설을 내용적 측면과 기술적 측면으로 나눠서 평가한다면, 어떤 소설은 ‘필력은 좋은데 내용이 아쉽네’라는 말이 나오는 한편, 또 어떤 소설은 ‘내용은 괜찮은데 그걸 담아낼 필력이 아쉽네’라는 말이 나오곤 합니다.
그런데 이 <멍청한 말>이라는 작품은, 냉정히 말하면 소설을 쓰는 기술적인 면에서도 제법 가산점을 줄 만한 요소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정제된 필력을 갖췄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신혼부부’라는 젊은 남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자연스럽게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그 안에서 맴도는 ‘말’이라는 것들은 나쁘지 않은 생동감을 띠고 있었습니다. 이건 만들어진다고 나오는 대사들이 아닙니다. 분명 작가님이 인물들을 떠올리고 그 목소리를 떠올리는 방식이 현실의 것을 그대로 가져오는 감각에 기반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만 그 현실을 재현하는 장면들이, 너무 작가님 개인의 주관에 함몰되어 인상을 흐린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관련 내용은 차차 설명하겠습니다.
『타임머신은 기발하다! 그래서 이걸로 뭘 할 건데?』
구성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이사 온 집에 덩그러니 버려져 있던 의자가 사실 타임머신이었다!’는 소재의 제시는 무척 참신한 면이 있습니다. 신혼부부는 평범한 일반인입니다. ‘타임머신’이라는 초월적인 도구를 손에 넣는 과정 또한 우연에 가까웠으며, 그로 인해 벌어진 일 또한 자기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는 일차원적인 일들의 반복이었습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이렇게 제 욕구에만 함몰되는 인간상이야말로, 주위에 널려 있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반증이니까요.
하지만 그 욕구를 채우는 과정에서 나오는 에피소드는 상당히 단편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과거 첫사랑을 만나며 배우자의 질투를 유도하거나, 과거로 돌아가 돈을 훔친다든가, 그 행위가 점점 심화된 나머지 물질적인 풍요를 위해 과거로 돌아가 은행(?)을 터는 지경에 이르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벌어진다니…….
앞서 적어놓은 장면들은, 그 하나하나가 소설의 중심 이야기가 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작지 않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 장면들은 모두 그 순간을 위해 존재하고 버려지기를 반복합니다. 마치 갈등이 시작될 것처럼 보이는 사건에도 다음 몇 줄에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지는가 하면, 타임머신으로 벌이는 범죄행각들에 대한 죄의식 또한 거의 묘사가 없다시피 흘러갑니다.
나름 중심으로 다룰 거라고 기대했던 은행을 습격하고 사람을 죽였다는 경중을 따지기도 힘들 만큼 심각한 범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로 인한 피해를 분명히 언급하는 데에 비해, ‘타임머신은 미래를 바꾸지 못 한다’는 편리한 말로 뭉그러뜨리며 그 죄의식까지 상쇄하는 만능으로 기능합니다. 앞서 타임머신의 해석이 무척 신선하다고 언급하였습니다만, 그 신선한 해석이 작품에 마땅히 존재해야할 갈등과 사건을 모두 거세하는 도구로 이용된다는 인상입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갈등은 주인공 ‘미루’의 남편과 친구 사이서 오고가는 감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다룬다’는 표현하자니 선뜻 망설여지는 편입니다. 냉정히 말하자면, 이들 사이서 벌어지는 핵심 사건이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남편과는 타임머신으로 돈 버는 데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사이 자체는 전반적으로 원만하게 흘러가며, 친구 ‘선애’와의 관계도 주인공이 돌반지를 훔쳤다는 작은 사건이 언급되지만, 막상 선애 본인은 인식하지 못 하기에 특별한 갈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P.165) “미루야, 내가 필요한 게 아니라. 돈이 필요한 거지?”
(P.168) “아니, 왜 이제 와서 착한 척하는 건데? 소매치기도, 은행 터는 것도 다 오빠가 하자고 한 거잖아.”
위에 발췌한 대사는, 결국 타임머신으로 비롯되어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마치 이 태도에 대해서 잘못의 비중은 ‘미루’쪽에 있는 것처럼 보이나, 뜬금없이 이 갈등을 해결한 것은 타임머신을 파기하자는 호준 본인의 결심이었습니다. 물론 독자로서는 예측할 수 없는 뒷면에서 많은 고민이 오갔겠으나, 결국 본문에서 갈등으로 빚어질 법한 마찰들은 호준이 마른침 한 번 삼키면 마무리 될 수 있는 사소한 매듭에 불과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마지막에 남편과 선애의 외도를 의심하는 사건이 등장하나, 그 또한 핵심사건 보다는, 앞서 등장했던 타임머신으로 벌였던 수많은 에피소드처럼, 그저 그 순간에 제시되는 돌부리 역할에 불과합니다. 막판에 선애가 마치 주인공이 생일파티를 눈치채고 현장에 나타난 것처럼 인식하는 것을 보아, 애초에 이들 사이에 끼어 있을 정도로 비중이 큰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우리가 이렇게 된 건 다 이것 때문이야!’라고 외치는 호준의 대사가 ‘이렇게 된 것’이 무엇인지와 더불어, 왜 타임머신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는지 그 과정을 쫓아가기 힘들었습니다. 정확히는 그 과정이라고 할 만한 흐름이 없었기 때문이죠. 피가 차갑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미루가 쏘아붙였던 ‘오빠는 왜 갑자기 착한 척 하는 건데?’라는 대사가 오히려 설득력이 있는 편입니다. 이중인격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요약하자면, 이 작품은 모든 것들이 ‘순간’에 멈춰 있습니다. 타임머신을 발견하고, 그로 인해 욕구가 표출되고, 아는 동생과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고, 생일파티를 마치면서 훈훈하게 갈등을 풀고……. 한 문장으로 요약해놓은 장면들을 이어보면 흐름이 그럴 듯해 보이지만, 막상 소설 본문에서는 그 장면들이 후속되는 장면들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오로지 ‘타임머신을 손에 넣었다’는 단편적인 아이디어에서 튀어나오는 발상들을 떠오르는 대로 전시해놓은 무언가처럼 비춰지기까지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작중에서 보이는 장면들은 표면적으로 결말을 맺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승전결이 존재하지 않고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줄거리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로도 해석됩니다.
이런 단편적인 흐름 속에, 마치 국어교과서에서 볼 법한 교훈적인 주제마저 앞서 나오니, 결국 ‘타임머신’이라는 초월적인 소재로 시작했던 이야기는 그 무게감마저 희석되며 마무리를 짓게 됩니다. 마지막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여운을 의도했던 것은 노골적이지만, 막상 그 ‘사랑한다’는 말로 귀결되는 과정이 한 데로 모이지 않으니 제게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었습니다.
미래는 결정되어 있다. 이 단단한 한 마디에 ‘사랑한다’는 말이 어떻게 울림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 점을 고민한다면 분명 이 작품은 훨씬 더 좋은 모습으로 재단될 거라 생각합니다.
『이게 정말 현실의 누군가일까?』
앞서 작가님이 이 작품의 인물들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고 호평했습니다. 다만 그 인물들이 너무 작가님 개인의 주관에 함몰되어 있다는 인상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습니다. 집안에서 발견 된 타임머신을 ‘나무위키’라는 독자적인 플랫폼을 이용해 정보를 얻는 장면이라든가, 그곳에서 얻은 정보를 너무 쉽게 믿어버리며 납득한다든가 하는 것들이 제가 느낀 주관에 함몰된 인상에 부합하는 요소였습니다. 흔히 작품에 등장하는 요소들은 모든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선을 찾는 데에 비해, 이 작품은 그런 선을 고민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사실 이런 공감에서 벗어난 장면들을 수두룩한 편입니다. 타임머신으로 은행을 털겠다는 만화 같은 계획을 세우는 주인공은 물론이며, 그 이유가 ‘좋은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라는 것도 일을 벌이는 규모에 비해 너무 사소하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작가님 본인은 이 구절을 납득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무슨 개소리야? 타임머신이 있으면 돈을 벌고 싶을 거 아니야. 은행도 털고 사람도 털고 나쁠 게 뭔데? 나무위키에서 검색도 안 해봤어? 검색 한 번이면 뚝딱하고 정보가 다 나오는데 뭐가 공감이 안 가?”
저는 이 논리가,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저도 나무위키 켜서 FC서울 경기 기록을 갱신하는 사람으로서. 그 매체가 주는 정보가 얼마나 가치가 높은지 이해합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위키’라는 매체는 비전문적인 다수가 작성하는 하나의 장에 불과합니다. 소설에서 나오는 정보가 정제되고 공감 돼야 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런 매체에서 정보를 얻는다는 설정만으로도 독자에게는 신뢰가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더 나아가, 은행을 터는 규모의 범죄를 결심하는 것도 일반적인 사람으로서는 선뜻 겁이 나는 일입니다. 비록 ‘타임머신’이라는 안전장치를 두어 이런 비판을 상쇄하려고 시도하지만, 이들이 신혼부부라는 평범한 일반인이라는 것을 강조했던 것에 비해 너무 선택이 극단적인 것도 사실입니다. 애초에 죄의식이 점점 무뎌지는 과정 자체가 너무 단편적으로 제시되었다보니, 인물의 사고가 바뀌어가는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한몫 했습니다.
(P.99) “그래서 말인데 언니. 나 코인 좀 알려주라. 응? 언니한테 이런 말 하는 게 우리 관계에 부담될 것도 아는데. 나도 적당히 전세금에 보탤 정도만 벌면 안 할게.”
(P.100) 우리의 갑작스러운 부를 설명하기에는 코인만 한 것이 없었다.
그런 공감에서 벗어난 인물에는 ‘선애’도 한 구절을 보태는 형편입니다. 그녀는 결혼을 준비하겠다는 이유로, 주인공에게 ‘코인’을 알려달라는 황당한 부탁을 건넵니다. 물론 주인공 본인이 타임머신으로 축적한 부를 ‘코인’에서 비롯되었다며 거짓말을 한 것이 원인이었겠지만, 결혼을 준비하겠다는 이유로 코인을 찾는 모습이 썩 정상적이라고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내 주변에 다들 코인으로 한탕 하는데? 돈 버는 데 그만한 게 어디 있다고?”
혹여 이 글을 읽고 계신 작가 분 주변에 ‘나 결혼 준비하게 코인 좀 땡기자’라고 말하는 여자가 있다면 흠씬 두들겨 패면서 말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신혼대출이나 맞벌이를 고민하지, 코인으로 급전 땡기겠다는 발상을 하지 않습니다. 어디 남의 집 귀한 아들 인생을 망치겠다고, 이런 시한폭탄을 맞선 자리에 풀어 놓을 수는 없잖아요. 이런 친구는 그…… 정부에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깊게 들여다보자면 미루와 호준의 행동원리 등 현실적인 사고에서 벗어난 모습들을 수도 없이 발견됩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굳이 이 글에 담아내며 허물을 들추는 것보다는, 과연 이 문제가 왜 발견되는가에 대해서 고민하는 쪽이 빠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부분은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고들이 사회생활을 겪으며 달라지는 경우가 수두룩하며, 그 사이에서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정상인의 선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만약 이 작품을 10년 정도 뒤에 다시 들춰본다면 어떨까요? 분명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쉽게 보이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소설은 쉽게 쓰고, 어렵게 돌아보기 마련이죠.』
이런저런 트집을 잡으며 분량을 채웠지만, 이 <멍청한 말>은 아주 장점이 많은 작품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생동감 있는 대사는 말할 것도 없으며, ‘타임머신’이라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소재를 다루며 100매가 넘는 분량의 소설 한 편을 내보였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 명의 ‘작가’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작가는 글을 쓰는 일을 반복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글은 습작이라는 이름으로 밀려나고, 어떤 글은 명작이라는 이름으로 비춰집니다. 하지만 그렇게 뒤로 미뤄지는 습작들이야말로, 작가로서 다시 돌아봐야하는 한 편의 작품으로 기능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쓰고 버리는 어떤 글들이야말로, 후에 쓰일 ‘명작’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거름이 된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이번 <멍청한 말>이라는 작품을 깊게 읽었던 독자로서, 작가님이 더 많은 습작들을 딛고 일어서기를 바라며, 이번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부디 공모전에서 좋은 결과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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