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좀비가 등장하는 작품에서는 의사보다는 수의사가 생존할 확률이 더 높다는 글을 본 적 있습니다. 수의사는 언제나 환자에게 물릴지 모르는 직업이라 자기를 물려는 존재에게 더 익숙하다는 게 근거였죠.
그런 의미에서 이주 행성으로 떠나는 마지막 우주선에, 그것도 정규 일정이나 예약한 게 아니라 본의 아니게 막차를 탄 데다가, 심지어 예정보다 일찍 냉동 수면에 깨어났다는 작품 소개는 제게 꽤 불길하게 다가왔습니다. 그걸 뒷받침하듯 작품 첫 문장조차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다 좋았다.’인데 제가 어떻게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우주가 얼마나 생존하기 힘든 장소인지, 인간이 모르고 어떤 존재가 인간을 처음 만나 그만 ‘서툴게’ 반응하고 마는지 저는 여러 작품을 거치며 많이 봐 왔단 말이에요…. 익숙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 의태인 거죠? 그렇죠?! ‘샛길’이라는 제목도 정상적인… 계획된… 의도한 삶에서 타의로 인해 멀어지고 마는 걸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보니 최근에 안 좋은 일이 있었거나 힘들었던 것 같네요.
이렇게 다정한 얘긴 줄도 모르고 말이에요…. 아직도 왜 제목이 샛길인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리뷰 에디터의 각주 아이콘이 강아지 발바닥 모양인 것만 봐도 애틋해지는 이야기를 저는 굉장히 엄청나게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심각한 손해를 보는 건 아니어도 막상 하기엔 번거로운 일을 위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는 선장도, 그를 따르는 항해사도 좋았고, 정체도 생존 여부도 모르지만 생김새만은 익숙하게 생긴 생물을 위해서 10분도 남지 않았다고 표시된 짧은 삶을 사용한 수의사도 좋았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그 정도가 아니어도 어떤 존재의 세상을 바꾸는 건 이런 친절과 도움이겠구나 싶었어요. 계기는 무척 슬프지만, 그래서 더 가장 다정한 사람은 가장 상처 입은 사람이라는 말도 떠올랐고요.
그리고 그게 헛되지 않음을 알았을 때 드는 안도감과 즐거움이 정말 기뻤습니다…. 흑흑, 친절한 존재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울어도 행복해서 울었으면 좋겠어요.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최고였습니다. 비록 갑자기 우주선을 이탈했던 것처럼 떠나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했지만, 다시 만나리란 예감이 든다면 잠시 자리를 비운 게 아니겠어요?
도달점인 줄 알았던 모운이 새로운 출발점이 된 것처럼, 다시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된 지영의 앞날을 절로 응원하게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애도 작업은 중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