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순간이동자들의 이야기에요 브릿G 추천

대상 작품: 순간이동자 (by 바르데)
리뷰어: 리체르카, 8월 10일, 조회 79

저는 초능력이 현실에 밀접하게 닿아 있는 이야기들을 꽤 좋아하는 편이에요. 마블이나 DC같은 히어로물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게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현실을 배경으로 벌어지기 때문은 아닐까요? 적어도 저에게는 그래요.

제가 이 글을 발견한 건 중단편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우측에 뜨는 랜덤 중단편 목록에서였어요. 순간이동자. 제목이 간결했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명백했죠. 조금 어수선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는데, 그 이상으로 즐겁게 읽었어요. 어떤 선천적 순간이동자들의 이야기거든요. 이런 부류의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꽤 흥미롭게 읽힐 거라고 생각해요.

주인공은 선천적 순간이동자이고, 어릴 때부터 꾸준히 원치 않는 순간이동에 노출되어왔습니다. 이 세계에서 순간이동자는 흔하지는 않아도 소속될 단체가 있고 국가적 규모의 협조가 이루어질 만큼은 보편적이에요.

화자는 정세유라는 이름의 여성이며, 장거리 순간이동 가능자로 조직에서 꽤 높은 자리에 올라 있습니다. 일본에서 대학을 나온 것 같고요. 읽다보면 드문드문 파편처럼 흩어진 정보들이 그녀를 이루는데, 초반을 제외하고는 정세유 본인의 이야기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어려운 흐름이 이어집니다. 애당초 모든 순간이동자가 겪을 법한 이야기를 주연을 옮겨가며 보여주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작중 시선은 주인공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모임에 나오는 모든 순간이동자들을 비추다가, 초반을 조금 지나고 나서는 한 여고생을 조명합니다. 그녀는 다른 순간이동자들과 다르게 특별한 존재이고, 좌표 없이 상상만으로 이동이 가능한 신인류에 가깝습니다. 자기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를 거치면서 여고생의 능력이 드러나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인물들은 자꾸만 이동하고 밥을 먹고, 또 이동하고 밥을 먹어요…다른 순간이동자들은 능력을 쓰면 피곤해져서 배를 채워야 하는 설정인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 여고생은 그렇지 않다고 해요. 일단 그래도 먹습니다. 보다보면 약간 배가 고파져요.

놀라운 능력의 여고생은 제주 출신이고, 아마도 작가님이 제주 출신이거나 제주도에 가고싶으신 모양이거나 둘 중 하나이겠구나 짐작이 갈 만큼 편향되게 제주에 관한 정보가 쏟아져 나옵니다. 여고생은 정세유가 겪었던 것만큼의 혼란을 겪지 않은 것처럼 차분하게 그려지는데,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보이는 태도가 좌표와 공간을 인식하는 체계의 다름으로 인한 것은 아닌가 조금 생각해 볼 법 합니다. 그래도 과하게 어른스럽다는 감상은 남겨야겠네요. 경험의 차이를 제외한다면 오히려 화자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캐릭터입니다.

수능이라는 현실적인 고비를 지나 당연하다는 듯이 우주여행팀에 참여하게 되면서 순간이동자의 감각은 지구를 떠나 우주로 확장되지요. 사실 거리상으로 장거리 이동이 가능한 순간이동자들 모두 우주로 나갈 수야 있겠죠. 이후가 문제지.. 그러나 이론상으로는 이동에 이동을 거듭해서 타행성에 도착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여고생은 정세유의 세계를 뒤흔들어놓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삶에서 어떤 중요한 존재가 되어버리지는 않습니다. 자기의 삶을 살아가고, 정세유를 위한 선물도 준비해주고. 이야기 전체가 명확하지 않은 묘사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독자는 화자가 어떤 일을 겪어 어떻게 지부장에 오르고 어떤 것을 준비하는지 모릅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외계 생물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어떻게 된 일인지 “정확히”알 수는 없어요. 순간이동자들의 삶에 관해서는 자세하게 서술하던 화자는 여고생과 멀어지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난 듯한 태도를 취합니다. 그래도 순간이동자의 이야기에요. 아무튼 순간이동자들의 삶 외에 다른 것들을 보여줄 생각은 없으니까요.

이야기 자체는 흥미롭고 재미있게 따라갈 법해요. 다만 아쉬운 것들이 많이 눈에 띄고, 인물들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았다는 생각을 몇 번쯤 했습니다. 이 인물은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지? 싶은 사람도 있고, 자세히 서술되지 않는 다른 순간이동자들이 그저 이름만으로 소모되고 설명되지 않는 점도 아쉬워요. 향과 솔, 준과 같은 인물들은 경청할 줄 안다는 것 외에 무슨 특징이 있을까요. 다른 인물들에게 좀 더 생기를 불어넣으면 한층 더 다채로운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도 해봐요. 물론 이 이야기는 충분히 순간이동자의 이야기지만요!

읽어보시면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거에요. 읽고 나서 분량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후루룩 지나왔고요. 흔하고 흔하지 않은 SF였네요. 즐겁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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