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리뷰.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리뷰어 개인의 독서 감상에 불과합니다. 본인의 독서 감상을 해치기 싫으시다면 본작을 먼저 읽고 리뷰를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잘 쓰인 호러였어요. 타임 루프라는 소재에 코스믹 호러는 흔한 편이지만, 이런 방식으로 호러를 끌어내는 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맨 처음에는 작품 분류대로 로맨스로 읽으려고 많이 시도했습니다. 겨울에 이입할 수 있다면 비극적인 새드앤딩으로 끝나는 로맨스로 읽었을 거 같아요. 하지만 계속 엇나가더라고요.
어째서였을까요? 저는 아무리 읽어도 히로미의 캐릭터가 살지 않았어요.
겨울의 캐릭터와 갈등은 명확하게 잡힙니다. 하지만 히로미는 읽으면서 내내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기본적인 대전제의 문제인 거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일을 꿈꾼다는 대전제를 믿고 히로미도 내일을 원한다고 생각한다면 이건 내일을 찾기 위해 무수한 오늘을 헤매는, 인정받지 못할 겨울의 자기희생으로 읽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애절한 로맨스죠.
하지만 시한부를 넘겨 덤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캐릭터에게 내일이 그렇게 중요한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히로미가 생각하는 내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내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여요. 와도 그만, 오지 않아도 그만. 하지만 아마도 오지 않을까?
내가 죽는 날이 정해진 건 아니니까.
물론 우리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적 없고, 히로미는 시한부를 넘어 살아있습니다. 기저는 분명히 달라요.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같아 보입니다. 약을 먹고 버킷리스트를 작성하지만, 그 행위들은 그냥 타성적으로 보입니다. 내일에 대한 태도뿐 아니라 겨울에 대한 태도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겨울은 계속 다이나믹하게 변하지만, 그 와중에도 서로의 거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호감이 좀 있는 후배죠. 히로미의 시간은 쌓이지 않으니까요.
이전 리뷰에는 그것 때문에 씬이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히로미의 씬은 넘어가지 않는 게 맞지요. 캐릭터가 아니라 장치에 불과하니까요.
히로미를 캐릭터가 아닌 장치로, 즉 겨울이 원하는 꽃이고 겨울을 보여주기 위한 투명한 창문으로 보니까 그제야 이해가 갑니다. 꽃을 따기 위해 계속해서 벼랑에 오르다가 떨어지는 이야기고 등장인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겨울 혼자인 이야기이며 히로미는 단순히 장치로서 기능할 뿐이겠지요. 겨울의 붕괴를 보여주는 카메라로요.
그렇기에 멋진 호러였습니다.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그 부분은 취향과 관련된 문제이니 굳이 붙이진 않겠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작품으로 만나길 바라고 공모전에서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