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청진요리 하는 곳 아니었어요? 공모(비평) 공모채택

대상작품: 안녕, 아킬레우스 (작가: 해도연, 작품정보)
리뷰어: 선작21, 17년 8월, 조회 104

중국집에 들어갔다고 칩시다. 뭐, 배가 고파서일수도 있고, 내가 하는 요리보다 잘 하나 궁금해서일수도 있고, 아니면 블로그에 포스팅하기 위해서일수도 있죠. 어찌되었건 우리는 중국집에 들어가서 코스요리 하나를 시켰습니다. (코스 요리 A라고만 적혀 있을 뿐, 뭐가 나오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요리는 맛있어요. 담백한 소채가 먼저 나오고, 버섯을 들기름에 볶은 요리가 다음으로 나옵니다. 우리는 이 쯤에서 짐작합니다. 아아, 여기는 청진요리를 잘 하는 곳이구나. 그럼 메인 요리는 뭐가 나올까? 소반에 담긴 두부? 짜지도 맵지도 않겠지?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주방장이 미친듯이 매운 마파두부를 들고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상이 제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감상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심하게 함유합니다! 작품을 보고 오시기를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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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죠.

타임리프는 더 이상 새롭지 않습니다. 그래요, 예전에는 새로웠겠죠. 1930년대나 그 쯤에는 말입니다. 클리셰도 뭣도 없던, 쓰면 쓰는 대로 신선하고 정립하면 정립하는대로 아름답던 시절입니다. 하지만 그 시절은 지났습니다. 70년이나 지났어요. 이제 타임리프는 모든 작가들이 우려먹을대로 우려먹은, 필력을 두고 겨루어야만 하는 소재가 되었습니다. (이 소재는 이제 라이트노벨이나 장르문학에서조차 보기 힘들지 않습니다.) 저 역시 타임리프 공모전에 제출한 입장에서 이 부분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과연 내 소설은 무언가 차별할 만한 점이 있을까? 내 소설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나? 제가 제 필력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이 없는 이상 (아마 죽기 전까지는 못 가질거라고 생각하지만) 내용에서의 차별점 – 즉 신선도를 끊임없이 생각할 수 밖에 없고, 이는 제가 다른 소설을 볼 때에도 비슷합니다. 특히 이런 종류의 소설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저는 이 작가의 타임 리프는 기존 작가들의 타임 리프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점을 끊임없이 찾고 또 없으면 야멸차게 비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마치 이 도입부처럼 말입니다.

피터는 지니가 다시 나오기를 기다리며 그에게 주어진 일을 떠올렸다. 허가되지 않은 타임루프를 발견하면 그 루프를 끊고 등록되지 않은 타임루퍼를 회사로 영입할 것. 그리고 여의치 않으면 강제로 능력을 제거할 것.

숙련된 독자라면 이 문장을 읽은 순간 소설 전체의 전개를 다음과 같이 압축, 예상할 수 있습니다.

<타임리프 능력자들끼리의 전투. 그리고 그 안에 섞인 로맨스. 지니와 사랑에 빠진 냉혹한 타임 루퍼인 주인공은 아마 마스터로 추정되는 악당과 처절하게 싸우면서 사랑을 쟁취한다…>

그래서 맨 처음에 저는 김이 빠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중단편 일일 9위에다가 리뷰도 산처럼 쌓였는데 (심지어 저 같이 리뷰로 어그로를 끌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고작 이런 거? 좀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거죠. 그래도필력이 수준급 이상이었기에 눈이 풀린 상태로도 읽기 시작했습니다. 작가가 말을 시작했으면 맺을 기회는 줘야 하는 거니까요. 방문/읽음 수치를 볼 때마다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으로서 솔직히 중간에 나가는 건 껄끄럽거든요.

그래서 그 다음에 마스터와 피터가 이야기를 하고, 작가가 핵심 설정을 이야기를 빌어서 풀기 시작하고, 몇가지 복선 – 니트로글리세린이나 일어나는 시간 따위가 나오고, 제가 그래서 이 둘은 뭐 어떻게 싸우는 거야? 하며 궁금해하기 시작했을 때, 마스터는 자신에게 하루만 더 달라고 말합니다.

우와, 싸우는 게 아니었구나. 이거 아주 로맨틱한 이야기였어. 하고, 심계항진을 흘낏 보고, 테마가 좀 겹치는데? 하고 생각을 하면서 읽어내려갈 때 바로

마스터는 카운터 아래에서 커다란 부엌칼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는 테이블에 세게 내리치며 꽂았다.

…마스터는 우리의 안일한 정신에 부엌칼을 꽂습니다.

이건 로맨틱한 사랑의 포기 따위가 아닙니다.

미친 인간들의 미친 이야기지.

그리고 그 이후는… 딱히 요약을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직접 보세요. 뭘 어떻게 요약해도 등장인물들의 광기를 묘사하긴 힘들 것 같군요. 이 곳에서 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지니와 주인공 뿐입니다. 모두 미쳐있어요. 그리고 그게 제가 리뷰의 처음에서 묘사한 ‘마파두부’입니다.

이 작품은 매우 좋은 의미로 독자에게 충격을 줍니다.

 

작가의 차별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이 작품의 작가는 차별을 하지 않습니다. 도입부와 설정으로 타임리프에서 차별점을 끌어내는 건 힘들고 지난한 작업입니다.

작가는 그래서 그렇게 안 합니다.

그냥 부엌칼을 테이블에 꽂을 뿐이지.

도입부부터 그 순간까지 독자는, 적어도 저는, 눈이 풀린 상태로 나른한 작가의 문체에 취해 아아 이 아름다운 로맨스는 어떤 식으로 내 눈물을 짜낼까 하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게 되는 겁니다. 설정에서의 차별이 아닌 전개에서의 차별. 타임루퍼를 관리하는 회사나 루퍼끼리의 전투, 루퍼와 일반인의 이루어질 수 없는 로맨스 같은 사골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좋은 뒷맛을 남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서 나오는 예상하지 못하는 일이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굳이 신선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그럼 이제 제가 생각하는 개선점을 짚어보겠습니다.

1.

오타는 항상 잡으셔야 합니다. 작품 내용에 관계도 없는 미미한 오타 약간 있다고 이 작품의 가치가 훼손되는 건 절대로 아니지만, 그래도 더 깔끔하면 좋잖아요? 조금 더 퇴고에 공을 들여주세요.

2.

핀 콜러스의 이야기가 좀 뜬금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뜬금없다고 하면 좀 크고, 작위적이랄까요. 이야기 안에 자연스럽게 섞이기 보다는, 읽으면서 “이건 작가가 넣고 싶다고 말하는게 너무 심한데?” 라고 느끼는 수준이었습니다. 설정이 자연스럽게 풀리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의심하게 됩니다. 이렇게까지 넣는 건 당연히 복선 아냐? (그리고 실제로도 복선이죠.) 그러면 정작 중요한 부엌칼 꽂는 시점에서의 충격도가 떨어지게 됩니다. 작품 전반적으로는 좋았지만 제가 위화감을 느꼈던 건 저 핀 콜러스 이야기,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는 시각입니다. 대화 처리가 더 자연스러웠다면 좋았겠네요.

 

제게는 이 두 개가 전부입니다. 나머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취향적으로야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죠. 난도질 씬이 왜 스킵되어 있느냐, 지니조차도 미쳐버렸다면 훨씬 아름답지 않았겠느냐, 기타등등… 근데 이건 진짜 취향이라서요.)

 

이상으로 리뷰를 마칩니다. 전체적으로 매우 뛰어난 이야기였으며, 저는 지금 타임리프 공모전 수준에 감탄하며 공포에 떨게 되었다, 같은 이야기로 리뷰를 끝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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