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 의심하는거야? 공모(비평)

대상작품: 아직 살아있나요? (작가: 엄성용, 작품정보)
리뷰어: Ello, 17년 8월, 조회 107

1.

어제 쓰다 이런 저런 이유로 포기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포기하긴 역시 아까우니까 재도전 합니다.

밤에 보기엔 무서운 소설이라 ‘낮에 읽으면 좋은 작품’에 추천했었죠. 호러는 역시 어렵네요. 게다가 좀비는 아직도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나는 전설이다>나 <웜바디스> 도 봤고, 미드 <아이 좀비>도 조금 봤으니 좀비에 대해 아예 모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닙니다. 어디까지가 통용되는 설정이고 어디부터가 작품 내에서 변주 되는 설정인지 제가 눈치 채는 경계가 불분명 할 수도 있습니다.

왜 좀비가 더 유명해진걸까요? 강시나 미이라도 죽은 자가 일어난다는 기본은 같은데 말이죠. 저는 강시 쪽이 훨씬 더 무섭긴 합니다. 어릴 적에 보았던 중국영화의 영향인 듯 합니다. 모자까지 다 갖춘 완벽하고 깔끔한 복장에 팔을 들고 콩콩 뛰어다니다니…. 어쩐지 귀엽기도 하고요. 오싹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미지로 많이 접해보지 않은 좀비는 제 상상 속에서 “벌레에 물리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씩- 웃는 병희”의 모습으로 기억될 것 같네요.

 

2.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 됩니다.

 

관리소장이라는 직함이 있지만, 어차피 그냥 산장지기인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백수 생활 청산인데 쥐꼬리 월급이며 산장지기면 따질 겨를이 없었다. (중략)

[미안하다. 눈이 많이 내려서 못가겠어. 그, 먹을 거는 넉넉히 남았지?]

“삼일은 버티겠는데요.”

[뭐 아무튼, 전화는 살아있으니까 진짜 정말 급할 때만 연락해라. 하늘이 미쳤나보다. 기록적인 폭설이래. 설악산이 무슨 알프스가 됐어. 무릎까지 빠지는 건 나도 처음 본다. 이런 날 산에 오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 그냥 푹 잠이나 자.]

 

처음부터 무시무시하네요. 간신히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들어간 설악산의 산장지기. 이제야 백수 생활을 청산했다는 걸보면 젊은 사람이겠어요. 그런 사람에게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고립된 산장에서 3일이라니! (과연 여러분이라면!!)

눈 내린 산장은 그림 속에서 등장하면 아주 예쁘고 낭만적이지 않을까요. 멀리서 보면 그렇지만 실제로 3일을 핸드폰 없이 전자기기 없이 보내라고 하면 어떨까요.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기다렸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일 수록 견디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미드를 빵빵하게 채운 외장하드와 노트북이 가장 먼저 생각났으니까요. 그래도 우리 주인공에게는 책이 있네요. 그것도 두께가 10센치는 되는 SF 걸작선이! 정말 다행입니다.

주인공의 나이를 짐작해보다가 같은 상황을 두고 나이에 따라 다른 반응이 나타날 수 있겠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어요.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들은 자연과 떨어져 생활하고 자라났으니 도시의 빌딩보다 숲을 더 무서워 하는 경향이 있을거예요.

숲이 나를 집어 삼킬 것 같은 공포, 문득 신해욱의 <형제자매>라는 시가 생각 났습니다. (각주로는 전문이 보이지 않아 임의로 줄바꾸기를 수정하였습니다.) 더이상 녹색은 안정을 주는 색이 아니였어요. 동생을 집어 삼킨, 동생 없이 이삿집을 싸게 하는 그런 무서운 색이죠.

현대시에 종종 드러나는 심상입니다. 과거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지금도 기성 시인들에게는 볼 수 없는 이미지입니다.

젊은 주인공이 ‘고립된 자연’ 속에 있는 감정이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 고립되어서 “짜증이 났다.”는 감상 이외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습니다. 어쩐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거나 조난자가 있으면 어쩌지라는 상황을 가정해보고 불안해 한다던가 등의 감정에 기반한 묘사는 모두 제거 된 채로 이야기가 시작 되어서

 

“퉁”

 

하고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을 때 독자인 제가 더 놀랐습니다. 대비를 하지 못했거든요.

주인공이 좀 더 긴장하고 불안해해서 그 감정을 따라 갈 수 있었어야 했는데! 전 간이 콩알만하니까요. 주인공에게 문열지마 안돼! 라고 마음 속으로 소리도 쳐봤습니다.

… 그렇지만 주인공은 용감하고 담대하네요.

 

2.

 

주인공은 이런 말도 하죠.

저기요. 바로 닫아야 되니까 열리자 마자 얼른 들어오세요. 신발 눈 털지 말고요. 안그러면 산장 안으로 눈발이 엄청 치고 들어와요. 시간이 지나면 질퍽해진다고요. 청소하기 불편해요……. 담배 태우시면 꼭 밑창으로 제대로 비벼서 끄시고요.

설악산이라는 구체적인 지명을 제시해 준 것도 그렇고 묘하게 현실적입니다. 눈이 많이 오는 날 설악산의 산장, 청소하기 힘든 눈 묻은 신발 밑창, 나무로 지은 산장이 불에 탈까 일러주는 담배 끄는 방법까지 세세하고 구체적입니다. 이런 현실감을 잃지 않아서 더욱 무서웠습니다.

첫번째로 들어온 뭔가를 줄줄 흘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기로 합니다. 무서워서 그런거 맞습니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작가의 말에도 언급했던 ‘라쇼몽’ 입니다. 호러 소설 임에도 자진해서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던 이유죠.

간단해 보이는 사건을 두고 당사자 간의 이야기가 모두 다르게 전개 되는 매력적인 기법입니다. 모두의 이야기가 그럴싸 해보이기 때문에 진위를 가릴 수가 없습니다. ‘나’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개별의 진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주 주관적이지만 그 주관적인 사실을 듣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그 개별의 진실이 흥미를 잃으면 설득력도 당연히 떨어지기 마련이라 ‘나’에게 유리하게, 그리고 흥미를 잃지 않게 말해야 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두 명의 이야기만 진행됩니다. 등장인물이 많지 않고 사건 자체가 간결해서 이해가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주인공은 사건을 목격하지 못한 사람이라 안그래도 가리기 어려운 진위를 밝히는데 완벽하게 실패하고 맙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움직이고, 친구였다는 사람들이 서로의 머리를 터트려 죽이고, 그 와중에 죽은 사람의 품을 뒤져 값비싼 나이프를 훔치는 광경만을 보게 됐죠. 짧은 순간에 믿느냐 마느냐의 문제와 내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끌어안고 결국 ‘살아있는 사람 일 수도 있는’ 형민을 죽이고 맙니다.

짧은 순간에 인간이 감당 할 수 없는 극적인 감정을 겪은 주인공은 영고처럼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립니다.

 

3.

 

“아 들켰네.”

저 문장자체도 소름이 돋았는데 이탤릭체로 쓰여 있어서 잊을 수가 없습니다. 글자가 옆으로 누운 그 채로 튀어 나오는 것 같았어요.

손에 나는 땀은 잠시 무시하고 다시 힘을 내봅니다.

저 문장으로 인해 그동안 열심히 자신의 입장에서 대변했던 인호라고 생각하는 병희의 이야기는 거짓으로 밝혀집니다. 인물묘사로 봤을 땐 병희보다 군인인 인호에게 잘 어울리긴 했지만 거짓이었네요.

그리고 형민이 자신의 입장에서의 진실을 다시 풀기 시작합니다. 이 때부터는 긴장을 한껏하고 ‘나는 네 이야기를 믿지 않겠어, 나는 속지 않겠어.’ 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인공이 “너 뭐야. 나 의심하는거야?” 라는 말을 들었을 땐 제 심장도 같이 쿵 하고 내려 앉았습니다.

저는 형민의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형민은 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형민이 커피와 3일치의 식량을 이야기한건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야기는 처음에 문을 두드렸던 지금은 머리가 박살난 채로 산장 한 쪽 구석에 뒹굴고 있는 태찬에게 건낸 이야기였을텐데요.

어쩌면 좀비는 좀비들끼리 생각을 공유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이미 죽은 사람도 일어나서 돌아다니는 세상에 불가능한게 뭐가 있겠어요. 그렇지만 뇌를 먹어야 그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설정이 이미 있는데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고 해버리면 이 작품의 위기겠네요.

그렇다면 형민은 주인공이 한 눈을 판 사이에 태찬의 뇌를 집어먹은 걸까요?

아, 어쩌면 주인공이 이야기를 해놓고도 내 속에 생각에 사로 잡힌 상태라 형민에게 얘기 한 적이 없다고 믿고 있었을 수도 있었겠네요.

 

주인공과 형민은 둘 다 좀비가 아니었을 거예요. 나중에 형민이 죽고 주인공의 머리가 하얗게 세고 난 다음엔 황금빛 딱장벌레의 소리를 들었으니 아마도 그땐 좀비가 되어 형민의 뇌를 파먹고 있지 않았을까요.

 

4.

 

진실의 진위를 가리기는 커녕 진실보다 앞선 공포에 압도 당한 혼란스러운 마무리까지 완벽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햇님이 밝은 낮에 읽는 편이 좋겠어요. 문을 곁눈질하다 눈까지 아파질 수 있으니 탁 트인 곳에서 읽는 것까지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역시 아 들켰네 의 임펙트가 너무 강했어요. 별 것 아닌 걸 속이려다 실수 한 것처럼 간결하게 말하는 저 태도! 사실은 목숨이 달려있는 문제인데 말이에요.

악몽을 방지하기 위해 오늘은 멍멍이 고양이들과 같이 잠들도록 하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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