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매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매우매우 스포일러 함유합니다.
매우매우 매우매우 매우합니다(?)
갑자기 타임리프에 대해 쓰고 싶어졌다. 타임리프란 무엇인가. 시간을 되돌리는 것 그 자체를 의미한다. 나는 과거로 되돌리는 것만을 한정하지만, 미래로 가버리는 타임리프도 버젓이 존재한다. 그러나 미래로 가버리는 것에 비해 과거로 되돌리는 것에는 비할 바 없는 허들이 하나 존재한다. 패러독스가 그것이다.
과거의 그 어떤 행동이라도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나비효과라는 것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내가 담배꽁초를 길바닥에 버리는 것만으로도 세계 3차대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3차대전의 여파로 내가 태어나지 못하게 될 지도 모른다. 타임리프를 도구로 사용하는 작가는 반드시 패러독스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작품 내에서 패러독스를 해소하는 방법에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지금부터 늘어놓을 네 개의 방법 외에 무언가 다른 방도가 있다면 쪽지로 알려주시기 바란다). 첫째는 <안녕, 아킬레우스>의 방식이다. 매일같이 하루가 반복되고, 하룻동안 내가 행한 모든 것이 리셋된다. 작품 내에서 무슨 짓을 했던 간에 전부 초기화 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어진다. 이렇게 나비효과는 시작되지도 못한다.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 수상작 <러브 모노레일>역시 이 방법으로 나는 분류한다.)
두번째는 니시오 이신 작 <괴짜 이야기>의 방식이다. 요컨데 패러독스를 일으킬 때마다 우주는 사건의 가능성을 토대로 분기하고, 이렇게 나누어진 평행우주가 무한히 분기해나간다는 것이다. 이 방식에서는 오히려 패러독스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다. 패러독스 그 자체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위의 방식과는 극단적으로 다르다. 나는 이렇게 패러독스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 썩 좋은 방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패러독스가 문제되지 않으면 이야기를 펼치기에는 보다 수월해질 지라도, 이야기 자체의 재미를 놓고 보면 독자 입장에서는 썩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다만 예시로 든 괴짜 이야기의 경우, 패러독스보다도 무한히 분기한 우주 그 자체가 문제였기에 나는 재미있게 읽었다.
세번째는 일본의 드라마 <프러포즈 대작전>의 방식이다. 이 작품은 오히려 패러독스를 이용해 지나간 과거를 적극적으로 수정한다. 작품 내에서 주인공이 적극적으로 과거를 수정하고, 그 결과로 시간은 다시 쓰여지고, 결국에는 첫사랑과 결혼하게 된다. 과거의 실수 하나로 세계가 불타오를 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드라마 내에서는 주인공과 첫사랑 사이에서 사랑이 싹트는 것 이외에 다른 패러독스는 발생하지 않는다. 패러독스는 주인공과 첫사랑 사이에서 핀포인트로 작동하는 것이다. 상당히 제멋대로 편리한대로 사용된 패러독스이지만,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여기에 대해 크게 딴지걸고 싶지 않아지는 것은 분명 연출과 대본의 수려함 때문이겠지.
마지막으로 이 작품,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의 방식이다. 이 방식에서는 모든 것이 정해져있다.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하는 모든 행동은 패러독스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패러독스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 결과가 먼저 있고, 타임 리프는 원인을 만들러 가는 셈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내가 어렸을 때, 수상한 남자를 보았다 -> 내가 커서 과거로 돌아간다 -> 내 어릴적 모습을 본다 -> 수상한 남자는 바로 나였다
이러한 방식은 독자가 초반 도입부에서 대강의 결말을 예측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나 역시 1. 과 2. 를 본 다음 결말이 어떻게 날 것인지 대강 예측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에서 수상한 그 어떤 작품보다도 압도적인 재미를 갖추고 있다. 그 까닭을 나는 ‘풀린 미스터리의 오묘함’이라고 부른다.
대체로 작품은 결말을 보기 위해 읽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훌륭한 도입부는 작품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하고, 강렬한 결말은 작품을 잊지 못하게 한다. 이런 말이 있을 정도로 결말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가끔 미스터리에서 이미 독자에게 결말이 주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작품은 모 아니면 도다. 지지부진하게 끝나던가, 압도적이던가. 이러한 작품을 압도적으로 만드는 것은 결말이 아니라 진행 과정이다. 작품의 초반에 독자는 어떻게 시작하는 지도, 어떻게 끝나는 지도 알게된다. 그렇지만 도입부와 결말 사이에 어마어마한 간극이 존재한다. 세상 착한 소년이 전쟁 미치광이가 된다면, ‘왜,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가 궁금해 지는 것이다.
진행과정이 무난하고 내용상의 반전도 설득력이 없다면, 그 작품은 ‘도’가 된다.
진행과정이 어마어마하고 내용상의 반전이 극악무도하다면, 그 작품은 ‘모’가 된다.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를 극악무도하게 만드는 것은 플롯의 구조에 있다. 나는 이러한 플롯을 ‘이중플롯(혹은 더블 플롯)’이라고 부른다. 두 개의 플롯 진행이 서로의 사이드 에피소드가 아니라 독립적이면서도 완성도 있는,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방식이다. 내가 이중플롯의 예시로 들기를 좋아하는 작품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이다. 이 작품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플롯과 세계의 끝 플롯을 동일한 비중으로 진행시킨다. 그리고 이 두 플롯은 서로 어떠한 접점도 없어보인다. 초반에는 그렇다. 하지만 상권의 끝에서 독자는 두 세계를 통합하는 방법에 대해 은연중에 힌트를 받게 된다. 그리고 결말에서 두 세계가 한 지점으로 수렴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중플롯의 재미이다.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는 타임 리프에 이중플롯을 얹었다. 자칫 복잡해질 수 있었지만, 작가는 초반에 두 플롯 사이의 관계를 독자에게 제시한다. 설명하지는 않지만 1과 2만 읽고나면 이 두 플롯이 대강 무슨 관계인지 알 수 있다. 덕분에 서로 다른 인물의 시점에서 복잡하게 얽힌 서사를 풀어나가는 것을 독자가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 수상작을 모아놓은 단편집 <러브 모노레일>은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이다. 그 안에 수록된 여섯 작품이 대체로 재미있다. 단편집의 얼굴이 된 <러브 모노레일>은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술술 읽히는 작품이었다. <어느 시대의 초상>은 장르문학적인 색채가 덜하지만, 재미가 덜 한 것은 아니었다. <세이브>는 취향에도 맞고 재미도 있었지만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만큼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어찌하여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는 압도적으로 재미있는가.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홀로 생각한 나날이 오래되었다. 이 리뷰가 그 답이 될 거라고는 생각치 않지만, 해답으로 가는 발판 정도는 마련했다고 자부해도 좋지 않을까?
+ 개인적으로는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도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찾아 해멘 나날들>처럼 장편으로 기획하여 단권으로 낸다면 엄청 재미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