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세상이 온전하다’는 식으로 첫 문장을 서술하는 작품들이 존재합니다. 그들 대다수는 반어법입니다. 대표적으로는 N. K. 제미신의 <부서진 대지> 3부작이 있겠습니다. 이 작품은 ‘세상이 온전했음’을 드러내 보이다가, 이내 ‘이제는 아무것도 온전하지 못하리라’는 저주와 함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비슷한 것으로는 라디오헤드의 4번째 정규 음반 <Kid A>의 첫 트랙인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가 있습니다. 조금만 들어도 불안한 느낌을 주는 전자 음악, 트립 합과 불협화음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음반의 첫 곡으로 안성맞춤인 제목이죠.
세상의 ‘불온전함’을 극대화한 세계를 보여주는 그런 작품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라고 부르는 작품군들입니다. 요즘 와서 흔해진 느낌입니다. <프로스트펑크>나 <디스 워 오브 마인>, <데스 스트랜딩>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들에서 많이 쓰였습니다. 요즘은 특히 서브컬쳐 가챠 게임에서도 많이 쓰는 편이죠. <페이트/그랜드 오더>나 <젠레스 존 제로> 등이 ‘최후의 도시’ 등을 상정한 배경을 많이들 활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계에 다다른 세계’는 매력적인 이미지입니다. 그도 그럴 게, 언제나 우리의 세계는 한계에 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 마저도 지구 종말 시계는 자정까지 몇 초 남기지 않고 째깍거리고 있겠지요.
‘한계에 다다른 세계’ 하면 디스토피아나 아포칼립스를 연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사실 다른 게임이 생각납니다. 정확하게는 ‘이 게임 회사’라고 해야겠지요. ‘프롬 소프트웨어’와 그 회사에서 만드는 게임들입니다.
제가 직접 해본 건 <다크 소울> 3부작 뿐이긴 합니다. 이 3부작에서는 엔딩을 두고 줄곧 이 질문을 던집니다.
‘세상을 유지시키는 불꽃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다. 여기에 네 몸을 바쳐서 조금의 지속이라도 이어나가겠느냐, 혹은 그 불꽃마저 꺼버리고 세계를 끝내겠느냐?’ 이 질문은 첫 작품에 등장한 이래 변주를 거치며 3부로 이어집니다.
굳이 <다크 소울>을 언급하는 이유는, <자기 꼬리 문 큰 뱀의 아가리를 열 수 있을까>의 핵심 질문 또한 <다크 소울>의 화두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오롯하기 위해 억지로 모든 것을 착취하는 세계가 존재하지요. 그러나 그 ‘오롯하려는 본성’은 오롯한 세계와 오롯하지 못하는 세계 두 가지를 모두 파괴합니다. 그리고 이 파괴는 세계의 절멸을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순환합니다.
이런 세계의 파멸적인 순환은 작품의 제목으로 은유됩니다. <자기 꼬리 문 큰 뱀의 아가리를 열 수 있을까>에서 ‘자기 꼬리 문 큰 뱀’은 ‘우로보로스’로 순환을 의미하니까요. 그 ‘아가리를 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순환을 파괴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 점에서 작품의 내용이 <다크 소울> 3편의 어떤 엔딩과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분명 차이는 있습니다. <다크 소울 3>의 히든 엔딩과 <자기 꼬리 문 큰 뱀의 아가리를 열 수 있을까>의 결말은 ⋯ ⋯ .
이런! 알려드리면 스포일러니까 둘 다 보셔야겠네요! 하하!
작품의 개인적인 매력 포인트였던 점들만 알려드리고 감상을 닫아 볼까요.
여러 작품들에 대한 오마주가 보인다는 점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위에 이름이 언급된 <프로스트 펑크> 같은 디스토피아 시뮬레이션 작품들부터, <스.토.커.> <데스 스트랜딩>이나 <울> 같은 ‘안전 지대’와 ‘탐사 지대’가 나뉘어진 SF 작품들의 흔적이 읽혀서 좋았습니다.
이런 작품들이 SF에 속하니만큼이나, ‘SF 뽕 채워주는’ 서술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ㄱ은 부동액이 필요하다.’로 시작하는 본문과 그에 이어지는 SF 디스토피아적 세계 설정은 장르 마니아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모든 것을 조망하는 서술자의 위치입니다. 서술자는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의 플레이어 같습니다. 사람 하나를 세심하게 내려다보는 그 시선을 서술에서 느낄 수 있었네요.
한 가지 아쉬운 점만 맨 끝에 달아볼까요. 사실 별 거 아닌 아쉬움이기는 한데 ⋯ ⋯ . 이야기가 시작되었으면 하는 지점에서 이야기가 끝나버린 게 아쉽습니다. 물론 이건 누군가를 탓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