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종교와 과학 [리 없는 우주 리뷰] 비평

대상작품: 리 없는 우주 (작가: fool, 작품정보)
리뷰어: 한화겸, 2월 14일, 조회 16

 

쓸데없는 서문 (안 읽어도 됨)

동양 철학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는 읽기 좋은 소설이 아니므로 나는 처음에 흥미로운 배경에도 불구하고 선뜻 리뷰를 쓸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어느 정도 견문과 입지가 있는 작가라면 모를까, 지금까지 제대로 완결한 작품도 없는 아마추어에 불과한 와중 다른 사람이 쓴 글(그것도 잘 쓴 글)에 이렇다저렇다 씨부릴 입장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도 있다.

 

더군다나 나는 도통 리뷰라는 것을 똑바로 써본 적이 없고, 사실 소설 리뷰가 뭔지도 모르겠다. 대충 ‘좋았어요~’로 넘겨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이건 모두 내 생각이고, 어쩌면 블로그 혼잣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가 아니라고 하면 내가 잘못 이해한 것으로 알겠다.

 

내용 요약 분석

이 소설이 잘 쓴 점 중 하나는 제목과 처음 한 문단을 읽고도 소설의 창의적인 특징을 대번에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라는 것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유교적인 관념인 듯하다. ‘우주’는 미래세계라는 주제에 부합하는 실제적인 대상이다. 얼핏보면 이러한 중세시대와 미래사회의 결합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매력적인 쪽으로.)

첫 번째 문단에서도 이런 특징은 지속된다. ‘작은 우주배’라는 표현 역시 낯선 표현인데, 보통은 우주선이라고 하면 십수년씩 기하급수적인 물자와 인력을 투자해서 완성하는 거대한 구조물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이 우주선은 우주, 더 나아가 우리가 사는 세상(코스모스)를 탐색하는 매개체이다. 이 소설에서는 이 우주선을 ‘작은 우주배’, ‘선장 겸 항법사 겸 기관사’를 ‘뱃사공’이라고 부르며 어딘가 일상적이고 소박한 느낌을 풍긴다.

이 우주선에 탄 사람은 사공 외에도 유생, 승니, 도사가 있다. 이들은 각각 동양의 세 가지 전통적 학파(?)인 유교, 불교, 도교를 대변한다. 여기에서 독자는 이 소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단순한 우주 모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과학 앞에서 한물간(그래 보이는) 동양 철학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에 있음을 유추하게 된다.

어쩐지 장소의 모양새부터 설명하다가 ‘어느새 현담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며 대화 장면을 전개하는 것 역시 서구적이라기보다는 한국스러운 도입부로 느껴졌다.

유생, 승니, 도사 등의 주된 논쟁점은 ‘자연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또 ‘자연과 상호작용하는 인간을 어떻게 받아들일것인가’로, 각각은 조금씩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유생은 세상을 ‘리(관념적인 이치)’와 ‘기(실제적인 운동)’로 받아들이며 모든 대상에는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룬다고 주장하고, 승니는 외부세계로부터 떨어져 인간이 탈욕에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한다. 도사는 자연물들의 모습에 경탄하며 자연과 인간의 하나됨을 설명한다.

또한 이 ‘우주배’에는 학자들 뿐만 아니라 ‘그림자’라는 제 3의 존재가 승선하고 있다. 이것은 인공지능의 어떠한 발전 단계에 해당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인간 속의 ‘리(성)’을 중요시하는 학자들은 이것이 제거된 대상인 그림자를 ‘인간보다 못한 존재’라고 깔보는 기색이 역력하며, 혹은 ‘인간을 구성하는 무엇인가가 누락된 존재’로 여기기도 한다.

이들은 모두 태허(블랙홀)을 관측하기 위한 여정 중에 있다. 구체적인 목적은 각자의 학문의 경향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자신의 교리를 어느정도 시험해보고 있다고 간주할 수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유생이 태허를 관측한 다음, 그곳에 일말의 ‘양’도 없음을 깨닫고 절망한다.

(잠시 혼잣말을 하자면 솔직히 그럴 줄 알았다. 제목이 개큰스포같다.)

그러자 세상 만물이 ‘리’를 따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그림자가 그들을 몽땅 집어던져버리며 소설은 끝이 난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이러쿵저러쿵 생각할 여지를 준, 마음에 드는 엔딩이었다.

 

 

생각들

 

1. 현대사회에서 사라진 종교

이 소설은 단순히 계몽주의와 제국주의 시대 이후 ‘전통적인 가치’들이 손상된 현대 사회를 ‘서구적이고 허무주의-스럽다’라고 비판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인류 문명의 발전은 기의 발전 뿐만 아니라 리의 발전이 동반된다’는 자명한 사실을 현대적으로 드러낸 것에 가깝다. 특히 음양론의 발전이나 재구성된 해석(동성애까지도 나름 유교적으로 해석된 것 같은데) 태허를 바라보는 도가적 시선, 불교에서 인공지능을 바라볼 법한 시선 등이 조화롭게 녹여져 있는 것이 재미있었다. 이것들은 이 소설을 단순히 ‘재밌는 이야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비유적인)철학적 성찰’로 확장시킨다. 이 지점에서 과학이 발전되고 종교적인 것을 경시하는 게 현대적이고 세련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직관적인 힘을 발전시키는 것이 문명 발전의 종착지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인간의 지성이 가장 복잡하게 발현될 때는 물체의 운동을 계산할 때가 아니라 그 뒤의 총체적인 질서를 파악할 때 있다. 이 소설은 깊이 있는 상념을 바탕으로 그것을 굉장히 효과적이고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다.

 

2. 옳은 학문이란 무엇인가?

그런데 다만, 각 종파의 해석이 제각각이고 의견이 수렴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종교적인 해석’은 한계를 갖는다. 실제로 역사에서 신앙이 가세한 이데올로기는 과거 유럽인들의 팽창처럼 폭력적이고 선민의식 가득한 방향으로 발현되기도 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현인들의 태도는 어느정도 이러한 위험성을 제지하고 있다고 해석될 수도 있다.

먼저, 유생은 자신의 탐구가 ‘이미 준비되어 있는 주장을 강화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 ‘현상을 관측하고 객관적인 해석을 제시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신앙에 휩싸여 실제를 왜곡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중간 부분에서 도사가 보여준 새롭고도 관용적인 태도이다. 도사는 ‘만일 우주가 주관적인 해석에 따라 본질이 부여되는 것이라면 우주가 하나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우주가 공존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설명하는데, 여기에서 사상의 공존을 위한 일말의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곧바로 승니들이 ‘단일한 우주가 인간의 내부의 투영과 연관되었을 리는 없다’고 반박하여 학문적 통합의 가능성 마저 폐쇄된다. ‘통합하려는 학문’ 역시 학문의 일종이며, 따라서 ‘통합하지 않으려는 학문’에 의해 반박될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3. 세상은 어떤 가치를 가질까?

이 소설이 결과적으로 ‘리’의 존재를 부정했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부분적으로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음은 사실이다. 이것은 태허에 접근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전조가 명확해진다.

먼저 도사가 생각했던 ‘태음의 형태’는 존재하지 않았고, 관측할 만한 방법은 오로지 중력렌즈로 인해 휘어진 별빛 밖에 없었다. 또한 유생이 관측한 결과에 따르면 블랙홀에는 애초에 ‘양’의 흔적이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룬다’는 공고한 이론 체계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

여기서 흔들리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이론 체계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주에 ‘보이는 것 이상의 질서와 가치’가 존재하느냐는 질문이다. 만일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다시 인간은 과학이 궁극적으로 두려워했던 ‘허무주의적인 종말’을 피치못하게 될 수도 있다.

 

4. 인간은 어떤 가치를 가질까?

최종적으로 이 사실을 알게된 그림자는 ‘인간의 상대적인 우월함’을 부정하며 ‘그림자들의 해방’을 역설하며 소설은 끝이난다. 용어만 바꾸어서 다시 보면 ‘최종적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한 세상’이 도래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현재 우리는 어떠한 부분에서라도 인공지능이 우리보다 열등하기를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지 않으면 인간의 성취 욕구가 좌절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우위를 가질 수 있는 분야가 철학인데, 철학적인 상념은 주관과 직관의 영역이라 기계의 것이 아니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철학적 가치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된다면 인간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궁극의 암울한 허무주의 결말을 뒤따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총평: 별 다섯 개! :grin: 

이 글은 대번에 쉽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어쩌면 그렇게 음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글일지도 모른다. 존재의 해석과 가치에 대한 철학을 총체적으로 담고 있는데, 논리적인 연설을 넘어서 소설이라는 은유적인 매체를 활용해 흥미롭고 ‘본질적으로’ 포착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노골적으로 자신의 철학을 주장하는 소설도 풍부한 시선을 겸비했을 경우 훌륭한 책이 될 수 있지만, 이렇게 일정 부분 모호한 해석을 남겨두는 소설이 소설이라는 구조의 기능을 가장 잘 활용한 글이 아닐까 싶다.

워낙 철학적이고 배경지식이 있을수록 읽기 용이한 글이기 때문에 내가 부족하게 생각한 부분이 많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가 담겨 있는 소설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대충 쓰여진 글이 아니며 잘 짜여진 구조와 깔끔한 문체, 유연한 호흡의 필력을 겸비하고 있는 소설이다.

리뷰는 처음 써보는 것이기 때문에 비판하지 말았으면 좋겠다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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