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G는 장르 위주의 연재 플랫폼입니다. 운영 주체는 황금가지고, 실제로 많은 작가분들이 ‘해외 페이퍼백 시장에서 팔릴 법한 스타일의 종이책 대중 장르 소설’ 스타일로 작품을 쓰고 계십니다. 저도 그렇구요.
그런 만큼이나 브릿G의 중단편들의 제목과 소개를 훑어보고 있노라면, 대체로 A급 내지는 B급 느낌입니다. 아, 이건 작품이 A급이니 B급이니 수준을 가르려는 게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스타일’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나만의 오리지널리티 강한 소설로, 정공법을 따라 승부하겠어! 라고 하면 A급, 혹은 ‘아 ㅋㅋㅋ 조졌다 이렇게 패러디 소설 쓰면 대박 웃길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B급 정도로 저는 대충 ‘막연하게’ 분류하고 있습니다.
<풋고추 도둑>에 앞서 A급이니 B급이니 이야기를 한 것은, 풋고추 도둑은 저 두 갈래의 프레임에서 벗어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재미를 추구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재미의 방향성은 일반적으로 브릿G의 소설들이 추구하는 ‘장르적 재미’와는 결이 다르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네, 저는 처음 작품을 고를 때만 해도 제목 보고 들어가긴 했습니다. <풋고추 도둑>이라니, 재밌는 제목 아닌가요? 간결하고 유쾌한 것이 이 소설을 짓다가 어딘가 미소를 짓기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풋고추 도둑>은 이 역할을 흡족하게 수행해 주었습니다.
간략하게 내용을 말하자면 <풋고추 도둑>은 W라는 풋고추밭의 수위가 Q라는 풋고추 도둑을 잡는 내용입니다. 그게 답니다. 그게 다라서 아쉬워서 조금 더 이야기를 진행하거나 다이나믹한 부분(꼭 액션 등의 행위적인 부분이 아니라, 호러나 로맨스적인 감정적 다이나믹함을 포함해서)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충분히 어휘의 활용은 다이나믹하지만요.
<풋고추 도둑>의 첫 문장을 읽다 보면 오는 감이 있습니다. ‘아, 낡았다.’ 단어 자체만 보면 ‘낡았다’는 말이 부정적으로 느껴질 지 모르겠으나, 저는 ‘올드하다’ ‘오소독스하다’ 혹은 ‘레트로하다’ 정도의 뉘앙스로 말한 것입니다. 낡았습니다. 하지만 낡은 만큼이나 품격이 있죠. 경망스럽게 유행을 타지도 않구요.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며 박태원이나 김유정의 근대소설 단편을 읽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유머러스하고 오소독스한 느낌입니다. 그러나 그 느낌이 싫지 않고, 유쾌합니다.
고작해야 <풋고추 도둑>을 잡는 일일 뿐인데 왜 이 단편은 유쾌한 것일까요. 저는 그 점이 <풋고추 도둑>의 발랄한 어휘 선정과 문장 구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부러 지금 잘 쓰이지 않는 어려운 고어를 쓰고, ‘차 한 잔’ ‘사료하면서도 ~ 사료라는 것을 다시 하여 보면 ~ 사료하며’ ‘또 ~ 또또 ~ 또’ ‘계 문 강 목 과 속 정 인간종 한 개체’ 등의 어휘를 자꾸만 반복합니다.
얼핏 ‘웹소설에서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라고 따질 수는 있겠습니다. 네, 좁은 모바일 화면에서 그러면 읽기 힘듭니다.
하지만 이건 웹을 작정하고 노리고 집필한 작품도 아닙니다. 이 어처구니 없고 잘 안 쓰는, 그러나 자꾸 반복되는 어휘들 덕택에 작품은 유쾌해집니다. 우리 말의 아름다움을 잘 활용한 느낌이랄까요.
네, ‘장르 소설’은 개념상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만큼이나 브릿G 환경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소설이었고, 저는 재미있었습니다. 본래 리뷰 작성 허가를 받고 집필하려고 했습니다만, 마감이 바빠서 이렇게 멋대로 리뷰를 쓰게 되는 것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