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과 사주팔자 같은 단어들을 노쇠하다고 느낀다면, 우린 정말 상식적인 세상에 살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여느 불분명한 가설들도 ‘과학적’이라는 이름하에 검증하고 사회로 도입하는 과정을 보면, 그 옛날 교육와 미신으로 사람을 검증하던 시대에서 얼마나 많은 발전을 이뤘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번에 읽은 <성리학펑크 2077>은 이런 현사회의 발전 흐름을 과감히 깨뜨리고, 오히려 그 미신이나 다름없는 사상이 곧 과학으로 검증되어 도입된 세상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실 조용히 놀라고 있습니다. 양반과 포졸이 활개치는 세상과, 안드로이드가 사람을 인질로 잡고 협박하는 이야기를 동시에 담아냈다는 것만 봐도, 이 작품의 도발적인 실험이 무척 인상적으로 느껴집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이야기 그 자체보다는, 그 이야기 안에서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설정과 사건들이었습니다. 미래의 조선 사회와 로봇 연구소라는 이질적인 배경을 한 데 섞은 시작은 당혹감이 앞섰으나, 로봇이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는 선명한 사건과, 관상으로 신분이 결정되는 사회배경을 빠짐없이 전달하고 있습니다. 난해하고 이질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설정들을 사건과 반전에 녹여내며 끌어나가는 능력과 더불어, 부드러운 필력덕에 막히는 구간 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았습니다. 관상이라는 소재가 그 시절로부터 비롯된 ‘미신’에 가까운 유산입니다. 작품에서도 그 점을 겨냥하며 조소를 섞지만, 결국 사건의 해결과 반전 결말을 돌이켜보면, 이 ‘미신’이 곧 미신으로 취급될 수 없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작품에 깔려 있는 유쾌한 사회비판과 연결짓자면, 이것은 가벼운 농담보다는 해결되야하는 과제처럼 여겨지는 것이 보통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 과제에 대해 작품이 어떤 답을 내놓았는가를 생각하면… 글쎄요? 아직 확답은 못 하겠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성리학펑크 2077> 멋진 소설입니다. 사소한 곳에서 흠을 잡을 수 있을지언정, 방심하고 있던 독자들에게 힘껏 따귀를 날려줄 수 있는 힘이 있죠. 추천합니다.
ps. 대머리 비하 개그는 조금 낡은 거 같아요… 내 머리 빠지는 게 걱정돼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절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