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그리아 왕국〉 감상평
판타지는 인기가 많은 장르다. 단순히 현대인에게 널리 읽히는 장르라 말하는 게 아니다. 넓은 의미로 보았을 때, 판타지는 현존하는 문학 장르 중 가장 오래되고, 또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장르다.
인간에게 바람이나 이상이 있고, 그것이 현실과 다투는 과정에서 환상은 줄곧 인간의 곁을 맴돌았다. 처음에는 더 많은 수확을 꿈꾸는 것이었고, 그다음으로는 자연을 조종하거나 달래는 것이 있었으며, 사후관이 정립된 이후에는 존엄한 죽음과 이상향을 그리는 것이 생겨났다. 그러다 어느 지역의 주신이 매우 우세하게 되자, 도시 국가들을 아우르는 신화가 발생했다. 신화는 교리로 진화했고, 교리가 세속의 권력을 일부 상실하자 그 빈자리를 인간성과 자연에의 탐구가 메꾸어 갔다. 신화적 환상의 태피스트리는 계몽과 공상의 활판으로 대체되었고, 사람들은 해저를 항행하거나 월면 뒤편의 주민과 인사하는 꿈을 꾸었다. 이제 우리는 다이슨 스피어나 테라포밍 같은 공상을 이야기한다. 광의의 판타지란 실로 인간 문명의 동반자다.
장르 정체성을 위해 좁은 의미로 돌아가더라도, 판타지는 여전히 대단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인문학의 발전과 세계시민주의로의 이행은 환상적 창작에 필요한 재료를 풍부하게 해주었고, 선구자의 유산을 물려받은 후손들은 이제 다양한 문화권의 신화적 원형들을 해체하고 재조립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성은 텍스트뿐 아니라 멀티미디어 창작물에서도 나타나며, 산업적으로도 판타지의 재생산을 돕고 있다. 인간이 꿈을 꾸고 욕망을 가지는 한, 판타지의 불사不死 신화는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정보화 시대의 인간은 여전히 상상한다. 드넓은 정보의 사해四海를 빛과 같이 횡단하면서.
판타지는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매력적이다. 상상력으로 메꿀 수 있는 부분이 많고 다른 장르에 비해 너그러이 읽히기 때문에, 작가로서는 개연성에 관한 부담이 덜하다. 그리고 독자에게는 내면을 투사할 수 있는 공간이 많고 비교적 덜 현실적이기 때문에, 독해 과정에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기에 판타지는 대중 소설로서 대단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고, 동시에 대중 소설이 아니고서는 그 장점을 활용하기 어렵다.
판타지가 대중적인 이유는 또 있는데, 그것은 바로 판타지의 핍진성은 허들(혹은 문턱threshold)이 낮다는 점이다. 판타지 텍스트를 신뢰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재미’에 있다. 그것이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없고 기존 사실에 반하든 간에, 재미가 있는 텍스트는 판타지로서 수요가 있다. 역사나 추리 장르는 (그것이 사실인지를 떠나) 무수한 “전문가”에게 자주 공격받는 데 비해, 판타지에 생물학적 특성이나 객관적 세계의 개연성을 들먹이는 것은 시간 낭비로 취급되곤 한다. 덕분에 창작하는 입장에서는 형식미나 유희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으며, 그 향유에 있어 정체성이나 계층을 가리지 않고 폭넓은 스펙트럼을 형성할 수 있다.
〈하그리아 왕국〉은 판타지 대중 소설이다. 단순히 분류상 그렇다는 걸 넘어, ‘판타지’라는 장르와 ‘대중’이라는 타겟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동시에 군상극으로서의 속성도 지니고 있으나, 일반 독자에게 유명한 기존 군상극에 비해서는 궁정 스릴러에 더 가깝다. 이러한 정체성에 의해, 〈하그리아 왕국〉은 태생적으로 ‘쉽고 재밌을 것’을 제1원칙으로 삼게 되며, 실제로도 막힘없이 읽히는 서술과 이야기의 역동성을 통해 이를 충족하고 있다.
문체에서는 이렇다 할 세련미는 없지만, 읽기 쉽다는 장점을 극단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하그리아 왕국〉의 서사로 향하는 과정은 잘 갖춰진 정원을 산책하는 것만큼 가뿐하다. 이는 장편 소설에서 잘 작동하는 좋은 안배이며,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한 현대 독자들을 효과적으로 공략한다. 간혹 문장 간 접속이 어설픈 비문이나 반복적인 오기誤記가 눈에 띄고는 하나, 이것은 검수로 해결될 수준이어서 크게 거슬리는 부분은 아니다. 일견 과소평가될 수 있는 평이한 문체이나, 〈하그리아 왕국〉은 (흠집이 있을지언정) 작은 보석들을 하나의 주제로 엮어 만든 공예품과도 같다.
위와 같이 쓰면, 〈하그리아 왕국〉의 독해가 마치 좌판에 전시된 패물을 보듯 간단하고 말초적인 것으로만 보인다. 실제로도 작품의 비전문적인 측면을 지적하는 평이 드문드문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이 작품의 세독細讀은 어원이나 민속을 다루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다. 겉으로는 호호好好하고 헤실헤실(?)1한 모습으로 답문하지만, 〈하그리아 왕국〉의 작가는 이야기라는 실에 허허실실虛虛實實을 꿰고 그 목줄의 주인(=독자)을 기다리는 무서운 사람(?)이다. 사학을 전공한 작가의 안배란 실로 은근하면서도 의표를 찌르는 면이 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바로 그 배치된 ‘요인factor’에 관한 것이다.
〈하그리아 왕국〉을 처음 접했을 때, 필자는 이것이 색다른 종류의 페르소필리아Persophilia가 아닌가 잠시 생각했었다. 강력한 제국과 서아시아 문명의 화려함은 많은 상상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큼 매력적이다. 게다가 서아시아(혹은 중동)로 특정될 수 있는 명칭들이 이러한 추측을 먼저 점화시키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본작이 고대-중세 이란의 미메시스로서 읽힐 여지가 있는지를 먼저 검토했었다.
우선, ‘샤흐라자드’는 이런 가설에 상당히 무게를 실어주는 인명이다. 샤흐라자드(아마도 Shahrazad?)라는 이름은 사산 왕조의 샤한샤 샤흐르바라즈Shahrbaraz를 떠올리게 하는데, Shahr+baraz2는 ‘제국의 멧돼지’라는 뜻이 있어 종종 멧돼지에 비유되는 샤흐라자드의 모티브일 가능성이 있다. 샤흐라자드의 행적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성, 하자르의 침입 격퇴, 그리고 크테시폰을 점령하고 왕위를 찬탈한 경험을 지닌 샤흐르바라즈과 제법 비슷하기도 하다. 비록 그 결과는 다르기는 하나, 샤흐라자드의 군사 경험을 묘사하는 데 상당한 참고가 되었으리라 필자는 추측한다.
여기에 더해, 하그리아 왕국의 종교관도 초기 해석틀을 형성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하그리아는 일신교를 국교로 삼고 그 대립항에 다신교‧정령‧마술 같은 것을 세우고 있다. 이는 고대의 다신교나 조로아스터교가 아브라함 계통 종교에 밀려나는 과정을 연상케 한다. 멧돼지baraz는 조로아스터교의 신성Yazata인 바흐람Bahram3을 상징하고, 작중에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어원으로 하는 이름이 여과 없이 등장한다. 게다가 꿈의 요소 중 하나인 불새를 ‘사특한 것’으로 취급하는 장면은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보수성과 타종교의 악마화 작업을 떠올리게 한다. 페르시아가 서아시아의 패권을 쥘 때 조로아스터교가 부흥하고, 이후 점차 이슬람화 되면서 국교가 전환되는 모습은 (설정상) 하그리아의 과거와도 닮지 않았을까 싶다.
달란트, 데나룻(디나르) 같은 화폐 단위를 사용하거나 다마스쿠스 강을 모티브로 한 다마스 강철검도 주목할만하다. 석류, 무화과, 대추야자 등의 식문화도 제법 그럴싸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결정적으로, 이란의 전설에는 호마Huma와 같은 수염수리 형태의 신수神獸가 있다. 작중의 불새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으나, 호마는 이란 문학에서 (이슬람 이전에 한해) 페르시아 군주에게 왕권을 부여하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그렇다면 필자의 초기 가설은 이렇게 일치하는 것인가? 만약 여기까지 와서 성급히 결론을 내린다면, 그는 보기 좋게 함정에 빠진 것이거나, 혹은 이후에 펼쳐질 더 넓은 모티브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하그리아 왕국〉은 독자들에게 페르시아라는 선입견을 부여하고는 돌연 캅카스로 민족적‧신화적 무대를 옮겨버린다. 이 전환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강렬한 것은 하나인데, 바로 ‘바바-야가Baba-Yaga’의 등장이다. ‘하지만 바바 야가는 슬라브 민담에 나오는 존재인데?’ 노파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필자를 포함해) 대부분의 독자는 이런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이것은 다소 뜬금없는 도약이고, 연결점이 전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보다 더 황당하게도, 불새와 바바 야가 사이에 ‘바실리사’라는 키워드를 넣으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해석틀이 또 하나 등장한다. 가령, 샤흐라자드의 신병은 ‘불새Zhar-ptitsa4를 포함해’ 슬라브 설화에 모티브가 있다든가.
슬라브 민담 중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불새와 붉은 말과 바실리사 공주〉이고, 또 하나는 〈아름다운 바실리사〉이다. 둘 사이의 연관성은 그저 ‘바실리’라는 이름이 ‘이반’만큼이나 흔하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이 우연은 불새와 노파가 병치된 이유를 그 우유적偶有的인 연결만큼이나 가볍게 설명해준다.
슬라브 민담에서의 불새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것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하고 알렉상드르 베누아가 시나리오를 쓴 발레 「불새L’Oiseau de feu」라고 여겨진다. 여기서의 불새는 ‘코셰이Koshchei’의 대립항으로 등장하며, 마법적인 힘으로 이반 왕자를 도와 코셰이를 물리친다. 대관절 이게 또 무슨 상관인가 하면, 불멸의 코셰이는 바바 야가와 접점이 있다. 〈불멸의 코셰이의 죽음〉이라는 동화에서의 바바 야가는 코셰이의 대립항으로서, 차르의 아들 이반을 돕는다. 이 꼬리를 무는 관계를 놓고 보면 필자의 가설이 조금 더 설득력 있게 보이지 않는가?
물론 이는 장황한 사기이자 터무니없는 농담이다. 이런 것을 전부 계산하고 쓰는 작가는 (아마도) 없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오해의 가능성이야말로 〈하그리아 왕국〉의 잠재력이며, 이 요인들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것이 판타지를 풍부하게 읽는 데5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예를 들어, 작중에 언급된 ‘건국왕 루스탐’은 중앙아시아 민족에 모티브를 두고 있을 가능성이 큰데, 그중에서도 필자는 (코셰이의 기원 가설과도 연관된) 쿠만을 가정하고 있다. 국조 루스탐은 동쪽 스텝 지대의 유목민족인 ‘아카샤 족’으로, 아카샤 족은 천호제Mingghan를 지닌 부족으로 묘사된다. 여기까지는 몽골의 영향이 보이지만, 하그리아의 모티브가 된 지역을 생각해보면 몽골 본토보다는 캅카스 일대의 칸국이 떠오르기도 한다. 여기서 명확하게 중동 국가와 관련된 민족은 튀르크 계통인데, 필자는 몽골에 의해 헝가리와 이슬람 국가로 터전을 옮긴 쿠만인 모티브를 약하게나마 느낀다. 이는 명백히 바이바르스Baibars의 영향인데, 유목민족으로서 중동 문명에 편입되고 왕조의 중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의 대표주자이기 때문이다.6
이외에도 건국왕 루스탐의 아내인 파라카 왕비는 우랄산맥이 모티브로 보이는 파랄산맥의 이남 지역 출신이고,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약탈혼7으로 이어졌으며, 정주민 문명에 대해 귀동냥을 한 것으로 서술된다. 작중 ‘발레키인’은 목축을 하고 소금을 사는 입장으로 묘사되므로, 암염이 나지 않고 바다가 먼 캅카스 내륙의 생활상과 상통한다. 그리고 건국왕 루스탐의 차남 아르샨이 마두금을 키거나 십호 전사들이 고기와 술을 즐겼다는 묘사는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이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가설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사특한 것’으로 여겨지는 불새나 노파 등의 신성이 하그리아 본토가 아닌 외지에서 유입된 것으로 설정되었을 가능성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슬라브 민담과의 관련성은 물론이고, 땅에서 꽃이 핀다는 묘사는 아르메니아 불새 설화와도 유사한 부분이 있다. 작중 왕가의 혈통이 앓는 신병의 양상은 거의 동일하고, 본토의 종교에 의해 요사스러운 것으로 간주된다면, 이는 혈통적 연관이나 문화 전승8에 의해 그 땅에 영향력을 가지게 된 케이스로 볼 여지가 있다.
두 번째 가설은 첫 번째 가설을 부분 부정한다. 노파에 비해 불새의 모티브는 심증에 불과하고, 하그리아는 제1신 외의 신성한 존재를 인정하는 단일신교의 양상도 보이기 때문에, 불새에 한해서는 외부 유입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만약 불새와 노파가 상극상으로 대립하는 형태였다면 첫 번째 가설에 무게를 둘 수 있겠으나, 작중에서는 이원적이기는 하되 명확한 대립 관계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작중의 신병이 한 영혼을 둘러싼 여러 향토신의 파워 게임이라면, 불새가 노파와 마찬가지로 외지의 신성으로 읽힐 당위는 상당히 축소된다.
이 길고 장황한 기만과 사술을 한 문단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판타지는 의미소에 숨은 여러 정보와 가능성을 취합하여 읽을 때 가장 재미있고 풍부하다.9 상징‧지표‧의도‧아이러니‧오해 등 무엇이든 좋다. 가지고 있는 노드와 연결고리의 수에 비례해 판타지의 독해는 그 깊이가 달라진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 행위를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작가의 역량이라 할 수 있겠다. 〈하그리아 왕국〉은 다종다양한 단어와 모티브를 꼼꼼하게 배열한 작품이고, 이에 필자는 본 작품의 잠재력이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이라고 감히 ― 그것도 자신 있게 선언한다.
〈하그리아 왕국〉의 모티브는 막연하거나 국지적인 수준에 그치지 않으며, 공시적으로는 물론 통시적으로도 많은 요인을 한 맥락으로 연결하고 있다. 일례로, 데나리우스(디나르)‧두카트‧달란트와 같은 화폐 단위는 지중해 문명권을 폭넓게 차용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또한, 도시 모술에서 명칭이 유래된 모슬린은 중동에서 보편적인 고급 면직물이라는 것 외에도 벵골의 존재10를 가볍게 주지시키는 듯하다.
대학의 묘사는 중세 유럽을 척도로 삼은 것이 명확히 드러난다. 삼학trivium과 사과quadrivium로 대표되는 자유7과와 3개의 전문 과정을 판타지 세계관에 맞게 변형한 것이 그 예이며, 14세부터 20세 정도가 대학생 평균 연령11인 점도 비슷하다. 그 외에는 임용 교수의 수가 적은 것을 이유로 들 수 있는데, 학과 다양성이 현대에 비해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중세 대학에서 정식 임용 개념이 등장한 것은 아무리 빨라도 12세기 이후로 본다. 교수를 지망하기보다 궁정학자가 되는 게 나을 거라는 이사야의 판단은, 광장이나 술집에서 무료로 강의를 하고 후원을 애타게 기다리는 중세 대학 강사의 삶을 감안하면 타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작중 시점의 하그리아는 화포가 상당한 진보를 이룬 것으로 나오는데, 미루어 짐작하자면 〈하그리아 왕국〉은 14~15세기를 중심 척도12로 삼고 있는 것 같다. 한때 동로마를 포위 공략했었던 샤흐르바라즈를 샤흐라자드의 모티브로 생각한 필자로서는, 1422년과 1453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있었던 공방전을 떠올리게 된다. 오스만 제국에 비해 이란의 화포 사용은 비교적 기록이 적은 만큼, 전쟁 패러다임과 화포에 있어서는 아나톨리아 국가를 참고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하그리아 왕국〉은 판타지 장르 평균에 비하면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모티브를 여럿 지니고 있다. 필자가 앞서 밝힌 것들을 제하고도, 오스만 공위시대를 연상케 하는 살레굽의 잔혹한 계승법 등은 중동 역사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을 방증한다. 그러나 어느 인간도 완벽할 수 없듯이, 〈하그리아 왕국〉도 완전무결한 이상적인 입방체를 그리고 있지는 않다. 창작 재료가 되는 사물이나 사건을 핀포인트로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나, 상관성‧인과성에 있어 본작의 서술은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다.
가령, 샤흐라자드 여왕은 능력 중심의 용인술을 고수하는 것으로 서술되지만, 작품이 진행될수록 그녀의 능력주의는 왕도의 혈연과 속령‧태수국의 지연에 점점 포위당한다는 인상을 준다. 과거에는 타흐마탄이나 소흐랍 같은 사례가 있었을지는 모르나, 작중 현재에 이르러 샤흐리아즈의 등용문을 넘나드는 집단은 그 성격이 폐쇄적이다. 이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인접 제국의 황자를 국서에서 폐하고 감금한 외교적 결례에 비하면 파격성이 지나치게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급진적이었던 인물이나 세력이 중앙 권력을 장악한 후 동력을 잃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선발 및 추천 제도 관련 묘사를 더해 이러한 부분을 보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외에도 하그리아의 왕권이 작중 서술처럼 안정되어 있는가의 쟁점도 있는데, 이는 다름이 아니라 외척(?)의 발호 조짐이 명확히 보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친족의 수와 권위는 치국에 있어 유리하게 작용하지만, 중앙 권력의 구심점이 소멸하거나 후계 구도가 명확하지 않을 때는 위험 요소로 바뀐다. 군상극의 장르 특성상 등장인물은 저마다의 동기와 욕망을 가지고 대적자와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묘사에 충실하다 보면 후계자 문제를 사전에 정리하지 않은 샤흐라자드의 상황은 역으로 불안하게 보이게 된다. 판타지 군상극이자 궁정 스릴러인 만큼, 본작도 재미를 위해 위기를 강제해야 한다는 딜레마를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명확해 보였던 후계 구도가 예상 외의 전개로 뒤집히고는 했던 현실의 사례들을 생각해보면,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서술상의 부조화는 샤흐라자드에게 요구되는 캐릭터성과 맞물려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연출한다. 샤흐라자드는 발달단계이론과 맞물리는 굴곡진 인간성과 영웅 서사시의 초인적 면모가 혼재하는 복합적 인물이다. 이는 독자가 감정을 투영하기에 충분히 가까운 인상을 주면서도 우월성에 기반한 매력을 어필할 수 있으나, 달리 표현하자면 이 두 가지 속성이 언제든 한쪽을 전복시킬 위험성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작품이 판타지라서 전개에 있어 유연성을 발휘할 여지가 있고, 샤흐라자드가 지닌 두 속성의 전환은 위기 곡선의 등락에 맞춰 비교적 잘 조율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독성이나 기호 다양성 등 본작에는 여러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하그리아 왕국〉에서 눈에 띄는 장점을 꼽자면, 대부분의 독자는 그것이 ‘캐릭터 구축’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하그리아 왕국〉은 그야말로 캐릭터 빌딩의 퇴적층이고, 그것을 서사 역동성으로 구부려 습곡으로 만들어 놓았다. 본작은 등장인물을 다면적으로 구축하는 데 수십 회차를 기꺼이 할애한다. 인물은 사소한 욕구에서부터 원대한 포부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드러내고, 독자는 그들 중 일부에게 몰입하거나 애착을 가진다.13 인물의 욕구는 원초적이고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독자는 자연스레 캐릭터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 그렇게 텍스트와 대화하다 보면 〈하그리아 왕국〉의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매력덩어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데 〈하그리아 왕국〉의 매력적인 인물은 앞서 형성한 인상과 함께 허망하게 사라지기도 한다. 왕권을 둘러싼 싸움은 치열하고, 욕망이 충돌하는 대경기장 속에 누군가는 목숨을 잃고 마는 것이다. 어떤 인물은 그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다 내보이기도 전에 무대에서 퇴장한다. 견고한 캐릭터 빌딩 속에 작품의 한 축을 담당할 것만 같았던 인물이 사라지고 나면, 이에 기대어 작품을 관망하던 독자는 해당 단락에서 고꾸라지고 충격을 받는다. 대부분은 상실을 겪고, 심지어는 배신당했다 느끼기도 할 것이다. 이것은 일시적인 읽기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고, 심하면 그 시점에서 작품과 결별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하그리아 왕국〉이 캐릭터를 빼앗아가는 방식은 상당히 독한 편이다. 이 작품은 인물이 생의 업보를 정리할 여유나 유언을 남길 시간도 주지 않는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망자는 그 앞에 어떤 변론도 하지 못하고 비명에 가고 만다. 죽음이 지금보다 한 발 더 가까웠던 중세의 인간사를 〈하그리아 왕국〉은 과감하고 진솔하게 드러낸다. 이것이 장점일지 단점일지는 본작을 읽는 독자 개개인의 생각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필자의 의견을 묻는다면, 필자는 이 또한 장점이라 답하겠다.
‘인물 대 인물’의 형식으로 큰 이야기를 꾸려가는 군상극에는 필연적으로 가혹해지는 지점이 있다. 이는 고전인 《삼국지연의》는 물론이고, 비교적 현대의 작품들14도 피할 수 없는 문제인데, 바로 매력적인 캐릭터를 ‘어느 시점에’ ‘극적으로’ 탈락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아주 단순한 도식인데, 인물의 매력은 작중의 영향력과 비례 관계이며, 작품 내외로 위격이 상당한 인물을 추락시키는 것은 위치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과 같다. 중요 인물이 극에서 탈락할 때 그 주변 인물은 비가역적인 변화를 겪게 되며, 이로부터 새로운 추동을 얻어 더 큰 사건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하그리아 왕국〉은 캐릭터와 역동성의 교환을 매우 성공적으로 해낸 사례에 속한다. 중심 인물의 사망은 교착 상태stalemate였던 이야기에 전환점을 줄 뿐만 아니라, 결정화된 캐릭터성을 파괴해 재구축하는 자연스러운 계기가 되고 있다. 상실은 가볍게 다루어지지 않고, 갈등과 회복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발전의 여지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죽은 인물의 영향력은 작중 인물에게도 독자에게도 오래 남아 읽기 경험에 볼륨을 더한다. 이는 오직 잘 구축된 캐릭터와 적절한 플롯 조정에 의해서만 가능한 교환이다. 정동이 강렬한 나머지 텍스트로부터 탈출할 수도 있다는 점은 안타깝지만, 이는 오히려 본작이 몰입감 있고 독자의 마음을 능히 움직인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지표일 것이다.
총평하자면, 〈하그리아 왕국〉은 ①가독성이 좋고 ②주목할만한 요인을 여럿 가지고 있으며 ③캐릭터 구축이 매우 뛰어나다. 반면, ④간혹 오자誤字와 비문이 있고 ⑤장르의 딜레마에서 비롯된 서술의 부조화가 눈에 띄며 ⑥대중 소설이기에 비교적 범속한 문체에 머무르고 있다. 본 작품은 다수의 결정을 형성하였으나 그 절반이 킴벌라이트 속에 머무르고 있는 보석 군집과도 같다. 〈하그리아 왕국〉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단점을 수정하고자 한다면, ‘작은 실수’의 발생 빈도를 낮추고 현재 문체를 구조화된 스타일로 다듬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는 완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완벽이란 수많은 작은 일들을 올바르게 해낸 것이다Perfection is lots of little things done right.” 난네코 작가는 〈하그리아 왕국〉을 상당한 시간을 들여 꾸준히 연재해왔다. 회차별 분량은 거의 일정하고, 시간을 들여 이야기와 캐릭터를 구축하는 성실성을 보여주었다. 난네코 작가는 작은 일을 꾸준히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매번 증명해왔으며, 이는 전문성과 완벽에 도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성정이다. 〈하그리아 왕국〉은 정련할수록 그 안에 감춘 보석을 더 많이 드러낼 것이다.
파트-알리 샤 카자르Fath-Ali Shah Qajar가 애용한 것으로 알려진 머리 장식aigrette. 카자르 왕조는 그들이 남긴 화려한 컬렉션과 상반되는 영락의 길을 걷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도난과 분실 등 우여곡절이 많았던 보석 컬렉션은 현재 이란 이슬람 공화국 중앙은행Bank Markazi Jomhouri Islami Iran 지하에서 보관하고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이미지가 〈하그리아 왕국〉의 한 장면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생각해 첨부한다.
작가님을 너무 오랜 시간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