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에는 진부한 주제일까요?
아직까지도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다’라는 주제를 다루는 작품이 적지 않습니다. 좀비물, 재난물, 스릴러, 미스터리 등 다소 거대하고 심오한 배경을 다루는 작품에서조차, 그 안에서 망가지고 본성이 영락하는 ‘인간’의 모습을 조명하는 것이 눈에 띄곤 하죠. 즉, 우리가 가장 잘 이해한다고 믿고 있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복잡하며 절대적인 존재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은, 이미 하나의 흐름으로 잡아졌다고 정의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번에 읽은 <0과 나>라는 소설 또한 이런 인간에 대한 해석이 매력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주제적인 이야기뿐 아니라, 표면적인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인 ‘데스게임’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에도, 그 장르를 구성하는 요소가 빠짐없이 엿보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자면,
첫째, 불특정 다수의 인물이 한 공간에 모여 있는데
둘째, 이곳에 끌려오게 된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며
셋째, 서로를 죽이라는 느닷없는 규칙에 당혹스러워하고
넷째, 결국 살아남아야한다는 인간적인 본능에 움직이며
다섯째, 동료와 갈등을 겪다가 결국 진실에 도달하는
소설 구성 요소를 보면 ‘어? 어디서 본 이야기인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합니다. 당장 ‘데스게임’에 ‘미스터리’ 요소를 첨가한 장르에서 흔히 보이는, 일종의 ‘클리셰’에 가까운 설정이기 때문이죠.
다만 낯선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 작품의 매력을 폄하할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만족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클리셰’라는 검증 된 이야기를 제시함으로서,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주제면의 차이를 돋보이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죠. 심지어 <0과나>는 단편에 가까운 분량입니다. 많은 복선과 복잡한 사건보다는, 쉽게 쫓아갈 수 있는 전체적인 사건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앞선 이야기만 보면, <0과나>가 장르적 재미만 갖춘 작품으로 오해받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이 작품은 영리합니다. 장르적 구성과 더불어, 주제적 구성면에서 어떻게 이 작품을 돋보이게 만들 것인가 고민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작품의 찾아낸 매력을 두 가지로 분류해볼까 합니다. 다음 내용은 스포일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1) 그들은 게임 NPC들에 불과하다고? 정말?
‘NPC’는 ‘None Player Character’의 약자입니다. 말 그대로, 플레이가 불가능한 캐릭터를 뜻합니다만, 현재 게임에서는 ‘실제인간이 조종하지 않는 모든 인공지능(사람, 동물, 지형지물 등)’을 통틀어 NPC라 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NPC’는 ‘사람과 비슷한 무언가’입니다.
기본적으로 게임과 같은 가상세계를 실감나게 꾸며주는 것은, 그 세상 안에서 상호작용으로 이뤄지는 인물들과의 관계입니다. 비록 그들이 명령어로 움직이는 AI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화를 주고받고 도움을 나누는 과정 속에서 진짜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그 세상에 적응하는 과정을 갖게 됩니다. 즉, 게임이라는 매체의 배경은 다를지라도, 그들이 만드는 세상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많은 것이 닮아 있어야한다는 전제조건을 잊지 않는 셈입니다.
다만 이 작품은 그런 ‘닮아야한다’는 개념을 멋지게 비틀며 이미지를 제시합니다. 주인공이 내던져진 데스게임의 풍경은 사뭇 기이합니다. 사람들은 외모를 공유하고, 표정이 기이하며, 사소한 몸짓 하나에서조차 인간과 다른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심지어 ‘여기서 사람이 아닌 존재를 찾아!’라는 게임 목표는, 마치 그들이 사람이 아니라는 암시를 주는 듯합니다.
“…… 외형이 전부 똑같은 수많은 NPC들 사이에서 진짜 인간을 찾아내는 온라인 게임.”
“플레이어들은 최대한 AI처럼 행동해야 했다. 바보 같은 렉에 걸린 척, 장애물 사이에 끼여 버그가 걸린 척을 해서…….”
“…… 그럼 AI들은 인간을 어떻게 NPC로 만든 거야? 바깥은 도대체 어떤 상황인 거야?”
결국 반전으로 이 모든 것이 진짜 ‘게임’이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주인공 또한 사람이 아니며, 그동안 느껴왔던 두려움과 갈등 모두 NPC로서 실행되는 명령어라는 암시를 줍니다. 어쩌면 본인을 인간이라고 믿어 왔던 모든 과정 또한 AI로 작동되는 사고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죠.
사실 주인공이 진짜 인간이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NPC에 불과했는지는 다소 모호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만 그런 모호함이 주인공이 갈등하고 고민하며 진짜 ‘인간’처럼 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반전의 효과는 무척 명확합니다. 이 작품은 시작부터 주인공의 심리에 집중합니다. 동료들 사이서 갈등하고, 죽음의 공포를 목격하며, 두려움과 안도감을 헤매며 뛰어다녀야만 하는 모든 과정을 묘사하는 데에 공을 들이고 있죠. 즉, 작품 자체가 주인공을 ‘인간’으로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독자들이 반드시 주인공을 인간으로 느껴야만 하는 과정을 만들고, 소설이 끝났을 때 마지막 장면으로 묻는 셈입니다. 아마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지 않았을까요?
“지금까지 느꼈던 감정이 진짜라고 생각해?”
사실 ‘NPC’라는 주체를 감정을 느끼고 소통하는 인격체로 해석, 더 나아가 해당 ‘NPC’가 과거에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반전이 아주 신선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스파이크 춘소프트’의 추리게임 ‘단간론파 시리즈’에서 이미 두 가지 개념을 모두 활용한 스토리를 선보였고, 관련 개념이 핵심 반전으로 이용되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해당 게임이 출시 된 지 13년 가까이 흘렀다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오랜 시절부터 ‘게임 속에 사는 인물’에 대한 고찰이 만연했다는 걸 알 수 있겠습니다.
단간론파 신작 본 지도 오래 됐네……. 모노쿠마 우뿌뿌뿌…….
2) 결국 가장 무서운 건 우리 ‘사람’이 아닐까?
표면적으로 보이는 이야기는 명확합니다. 데스게임 안에 얽힌 NPC들의 사정이 주제로 담겨 있죠. 다만 NPC를 하나의 인격체로 해석함으로 보이는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이 원치 않는 살인게임에 던져져서 사냥꾼과 사냥감을 오가는 놀이를 반복해야한다면, 그 놀이를 반복시키는 주체가 누구일까요?
“신이 있다면 죽이고 싶었다. 나는 하기 싫은데 그들은 계속 시작 버튼을 눌렀다. 그만 죽고 싶은데 그만 둘 수 없었다.”
“…… 나는 그저 그의 바보 같은 도박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결국 의미를 부여하는 건 인간이기에 그가 어떤 표정을 지었든 나는 그것과 최대한 비슷해 보이는 내 감정을 투영했을 것이다.”
“…… 이 일이 그저 작은 게임에서 승리하냐 마느냐지만, 내겐 헛다리짚은 AI의 의미 없는 살인일 뿐이었다.”
“NPC가 NPC를 죽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멋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건 플레이어가 유일했다.”
작중에서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한 대사들만 꼽아 봐도, 그가 느끼는 무력감과 두려움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인간’입니다. 다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전제를 달기 조심스럽습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AI’이며, 살아 있는 인간이 설계한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전제로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척 흥미로운 지점을 제공합니다. 독자는 주인공의 시선에서 그를 ‘인간’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충분하지만, 그는 ‘인간’이 아니기에 사냥당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는 아이러니로 다가옵니다. 흔히 인간성이 무너지고 벌어지는 사건들은 인재(人災), 혹은 재난의 이미지로 표현한다면, 이 작품은 굉장히 독특한 인재(人災)의 이미지를 제공하는 셈입니다.
결국 주인공이 죽여 버리고 싶다며 원망을 토해내는 ‘신’은 누구일까요? 이 게임을 설계한 ‘인간’일까요? 아니면 이 게임을 조종하는 ‘인간’일까요?
3)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0과 나>를 흥미롭게 읽었던 만큼, 아쉬운 점도 간간히 눈에 띄었습니다.
가령 이 소설이 <오징어게임>과 같은 데스게임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에도, 그 게임의 방식이 원초적인 살인으로만 나타난다는 점이 그러했습니다. 세부적으로는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칼을 놓지 말아야하는 규칙들이 엿보이지만, 작가 본인 또한 피가 튀기고 칼로 찌르는 관습적인 묘사에 집중할 뿐, 그 이상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것은 특유의 주제의식이었습니다. NPC를 감정을 느끼는 인격체로 해석하는 시도는 매력적이지만, 그 시도에 함몰된 나머지 지나치게 사변적인 대사가 등장하며 흐름이 깨지곤 했습니다.
“우리가 게임을 플레이 할 때를 생각해볼까? 다른 플레이어를 찾아 없애는 것이 목표이지만 헛다리를 짚을 시 그 과정에서 수많은 NPC가 죽어나간다. 그러나 그 행위에 악의는 없다. 그냥 잘못 찍었을 뿐이고, NPC 살해에 관한 아무런 페널티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아주 간단한 게임일 뿐이다. 그리고 NPC로서 플레이어의 플레이에 휘말리는 것은 숙명이었다.”
사실 발췌한 대사 외에도 비슷한 결의 대사가 종종 등장하며, 지나치게 자세한 설명을 곁들입니다. 주인공 스스로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보자니 너무 차분하며, 바깥에서 들리는 목소리라고 하자니 작가 개인의 주관이 부담스럽게 제시됩니다.
사소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주인공의 결말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0과나>로 명명된 소설은 곧,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나’라는 답을 찾은 다음에, 결국 주인공이 무엇을 얻게 되었냐는 질문이 따라오고 말았습니다.
“나는 앞으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이건 게임이니까. 아무런 악의도 없는 게임이니까.”
“이 게임은 몇 번이나 반복 될까, 몇 번이나 리셋 될까.”
일종의 코스믹 호러라고 느낄 법한 상황은, 주인공은 결국 태생부터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렇다면 이 인물이 주인공일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저 아무것도 못 하고 고통만 받는 인물(NPC)의 독백을 들어줘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결국 앞서 이야기한 주제의식으로 연결됩니다. 다소 단조롭다고 느껴지는 장르적 구성까지 고려하자면, 이 소설이 ‘데스게임’이라는 장르보다는 주인공이 NPC라는 발상에서 시작된 소설이라는 생각도 아렴풋이 떠오릅니다.
위의 내용은 소설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저 독자로서 느꼈던 주관적인 아쉬움에 불과하다고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만 부족한 지식으로 써내려간 <0과 나> 감평을 마치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부탁드립니다.